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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Nov 19. 2015

줄리언 반스의 에우리디케, 팻 캐바나

작가를 짓다 - 12화


작가들은 자신이 쓰는 작품을 통해 어떤 범주에 갇히기 마련이다. 어떤 작가는 추리소설 작가로 불리고, 어떤 작가는 리얼리즘 문학의 대가로 불리고, 또 어떤 작가는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라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도저히 이런 카테고리에 집어넣을 수 없는 작가들도 간혹 등장한다. 멀리는 플로베르가 있을 것이고, 가까이는 오늘 소개할 바로 그 작가, 줄리언 반스가 있다.


줄리언 반스는 1946년 잉글랜드 레스터에서 태어난다. 반스의 부모님은 둘 다 프랑스어 교사였다. 이런 영향 때문에 줄리언 반스는 일찍이 프랑스어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국 작가가 된다)


줄리언 반스는 청년기에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지하철을 타고 런던 시립 학교로 통학을 하며 교육을 받았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의 첫 소설 『메트로랜드』는 이 런던 지하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무튼, 반스는 이 시기부터 열성적인 독자로서 다양한 작가의 책을 접했다.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가 지금 반스의 모습을 보면 퍽 겸손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반스는 이렇듯 독서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스포츠 역시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럭비팀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12세 때는 38kg 교내 권투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반스의 권투 실력이 대단했구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내막을 살펴보면 이렇다.


반스의 학교에서 교내 권투 대회가 열렸다. 소식을 들은 반스는 가장 경쟁이 덜할 것 같은 38kg급에 등록을 한다. 경쟁이 덜하면 운 좋게 챔피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는데 이런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도 한 아이가 있었다. 결국, 38kg급 경기에는 반스와 다른 아이 두 명만 등록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첫 경기이자 결승전을 치렀다.


반스는 한 번도 권투를 해본 적이 없어서 크게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도 다른 아이는 반스보다 더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반스는 경기에서 승리하고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며 반스는 청년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반스는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가며 어떤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그 작업은 바로 <옥스퍼드 영어사전 증보판>의 편집 작업이었다. 반스는 편집부원으로 들어가 증보판 네 권의 부편집자가 되었다. 여기서 반스가 하게 된 일은 단어의 정의를 쓰고 역사를 연구하는 일이었다. 이때 반스는 1880년대 이후 언어 가운데 'C' 부터 'G'까지의 단어를 다뤘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사전은 읽기만 해도 세상을 등져버리고 싶을 만큼 지겨운데 그것을 만드는 일이 지루하지 않았을 리 없다. 반스도 마찬가지였는지 재미를 찾기 위해 개인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그 일은 바로 <옥스퍼드 문학 안내서>라는 책을 집필하는 일이었다. 이 책은 옥스퍼드 대학을 거쳐 간 모든 인물을 설명하는 그런 책이었다. 옥스퍼드 대학이 워낙 명문대인 데다 졸업생의 면면도 화려해서 이 작업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반스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판되는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이 책을 만들며 작가의 꿈을 서서히 키워 나간다.


이 시기 반스는 시인 크레이그 레인을 만난다. 그는 반스에게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를 소개해주는데 이것을 계기로 반스는 저널리스트 활동을 시작한다. 마틴 에이미스와의 연결을 통해 반스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기고했고, <뉴 스테이츠먼>의 편집 일을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 이후 반스는 프리랜서 기고가로 <뉴 리뷰>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옵저버>에 TV 프로그램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스는 이렇게 기고 활동을 하면서도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스는 변호사 자격증을 얻고도 개업을 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보면 반스는 특별히 소설 작가가 되고자 했던 마음은 없어 보인다. 대신 반스는 든든한 변호사 자격증과 함께 논픽션 기고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그런 그의 활동은 훗날 <뉴요커>의 런던 통신원 활동으로 이어지는 등 반스는 뚜렷한 자신의 글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런 그가 첫 번째 픽션 작품을 쓰게 된 것은 1980년이었는데 바로 전해인 1979년. 반스는 운명적 만남을 결실로 이루게 된다. 그 운명적 만남은 반스를 픽션의 세계로, 그를 영국의 차세대 대문호의 자리로, 그리고 그를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국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반스의 운명적 만남의 주인공은 레이먼드 카버의 편집자였던 고든 리시나, 제임스 조이스의 책을 출간해준 실비아 비치처럼 편집과 출판일을 도와주기도 했고, 톨킨의 조력자 C.S 루이스처럼 끊임없는 격렬 해준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스티븐 킹의 아내 태비사 스프루스처럼 반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반스를 돌봐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 반스의 삶과 문학에 있어 영원한 동반자였던 그 사람은 바로 반스의 아내 팻 캐바나다.

팻 캐바나는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로 이름 높은 이였다. 그녀는 작가도 탄복해 마지않는 탁월한 문학적 감식안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으로 수많은 문인을 발굴, 후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작가가 아님에도 영국 문단의 별이라 불렸는데 그녀를 향한 작가들의 찬사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 중 몇 개를 소개해보면 영국의 계관시인 앤드루 모션은 '외모부터 태도와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까지 티끌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던 사람."이라고 말했고, 로버트 해리스는 "예리한 조언과 열정과 건조한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이라고 평했다.



이렇듯 팻 캐바나는 영국 문단에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인물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반스에게도 없어는 안 될 인물이었는데 두 사람은 1979년 결혼을 한다. 그리고 반스는 다음 해 1980년. 34살의 나이로 처녀작 『메트로랜드』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처녀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하게 문단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이후 반스는 격년에 한 번씩 장편을 발표할 정도로 꾸준한 활동력을 과시하는데 『메트로랜드』를 시작을 『나를 만나기 전에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내 말 좀 들어봐』, 『고슴도치』, 『잉글랜드』, 『사랑, 그리고』 등 훌륭한 작품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런 반스의 활동과 작품들이 반스의 재능 만으로만 탄생한 것으로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옆에는 팻 캐바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팻 캐바나는 반스에게 있어 문학적 동료이자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문학 에이전트였다. 그리고 반스의 아내로서 그의 삶을 안정되게 지켜주는 역할까지도 완벽히 해냈다. 그런  팻 캐바나가 있었기에 반스는 안정적으로 발전하며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꾸준한 작품 활동과 유수의 무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더는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로 큰 성취를 이룬 반스는 2008년 10월 21일. 자신이 이룬 모든 성취를 다 합쳐도 당해낼 수 없는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일은 바로 팻 캐바나의 죽음이었다.


팻 캐바나는 어느 날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반스는 아내를 돌보기 위해 매일 밤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그녀를 보살폈다. 그렇게 병원에 다니며 스치는 사람들의 표정에 반스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반스의 이 생각은 37일 만에 현실이 되어 팻 캐바나는 뇌종양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반스의 세상 역시 180도 바뀌어 버렸다.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팻 캐바나의 장례를 마친 반스는 인터뷰 등 외부활동을 모두 끊어 버렸다.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던 지인들은 반스의 상태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반스는 이 시기에 자살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이때 반스는 몇 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그 시간 후에도 아내 없이 살아갈 수 없다면 자살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반스는 자신이 정한 유예기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모든 면에서 아내가 그립다"고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며 결국 자신은 아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반스는 자살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반스는 자신이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반스는 자신이 자살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은 일이 된다고 믿었다. 결국, 그녀를 두 번 죽이게 할 수 없었던 반스는 자살을 포기하고 대신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그녀가 바랐을 모습으로 살아가길 결심한다. 그래서 반스는 인터뷰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 대신 늘 하던 대로 아내에게 선물할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출간된 작품이 바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 작품으로 반스는 맨 부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는다. 물론 수상 자체는 반스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새로 쓴 작품을 보고 즐거워할 팻 캐바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반스는 무척이나 기뻐했을 것이다. 결국, 팻 캐바나는 생전뿐 아니라 세상과 이별을 한 후에도 반스의 동료이자 아내로 남아 그의 무학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해서 다 무엇하겠는가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반스가 조금 덜 좋은 작품을 쓰거나, 혹은 아예 쓰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반스는 아내와 하루라도 더 지낼 수 있다면 그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반스가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이 비극의 마음을 담아 반스는 팻 캐바나 사후 5년이 지난 시점에 회고록이라 볼 수 있는 작품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반스답게 일반적인 회고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팻 캐바나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을 쓰면 인상을 찌푸릴 것으로 예측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반스는 이 작품에서 상공, 지상, 지하라는 공간을 가져와 이야기를 풀어낸다. 상공과 지상의 이야기는 픽션으로 반스 자신과 팻 캐바나가 만나 상공에 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반스는 비로소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담는데 이 이야기는 반스 자신이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때 반스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신화 속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가져와 풀어낸다.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저승이 있는 지하로 한없이 내려가는 인물이다. 오르페우스는 지하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신 하데스를 만나 그를 설득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맡는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 에우리디케를 보면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지하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걱정과 궁금한 마음을 참아가며 지상에 가까스로 다다랐는데 마지막 순간 결국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깊은 지하 속으로 사라지고 오르페우스는 슬픔에 잠긴다.


반스는 이러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반스의 이야기는 이 신화 속 이야기처럼 비극적인 감정이 절절히 담겨 있는데 모든 에피소드를 전할 수는 없기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줄리언 반스와 그의 조력자 팻 캐바나의 이야기를 마쳐볼까 한다.


팻 캐바나가 죽은 지 4년이 가까워져 오던 어느 날 늦은 밤.
반스는 11시가 조금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다 도착할 때쯤 택시 기사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는 경쾌한 목소리로 반스에게 물었다.
"아내분은 주무시고 있겠네요?"
반스는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른 끝에 대답했다.
"그러면 좋겠네요."




반스 하우스의 입주자들.

첫 번째 입주자는 댄 캐바나로 정해봤다. 낯익은 이름이라 생각될 텐데 팻 캐바나의 동생이나 부모는 아니다. 이 이름은 반스가 필명으로 사용했던 이름이다. 반스는 결혼 후, 댄 캐바나 라는 필명으로 『더피』를 비롯한 네 편의 추리 소설을 발표한다. 사람들은 반스가 아내의 성을 빌린 '댄 캐바나'라는 필명을 사용함으로써, 그녀의 우산 아래에서 자신의 다양한 문학을 펼쳐 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팻 캐바나가 죽어버린 지금, 댄 캐바나 라는 이름이 반스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반스로 하여금 자신의 아내를 그들이 가장 친근히 여겼던 책이란 매체로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책장에 꽂힌 댄 캐바나의 이름은 분명 반스에게 큰 의미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입주자로 결정해보았다.


두 번째 입주자는 바로 플로베르.

플로베르는 프랑스 출신의 19세기 소설가다. 반스는 그의 작품을 굉장히 사랑했었다. 그래서 그는 『플로베르의 앵무새』라는 아주 독특한 구성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으로 반스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프리랜서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물론 반스는 프리랜서 기고 일을 좋아했기에 금전적인 문제는 배제하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이 작품은 영국에서 '제프리 페이버 기념상', 독일에서 '구텐베르크 상'을 받게 해준다. 이런 수상의 영광 말고도 이 작품은 반스가 일반적인 소설만 쓰는 작가가 아닌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펴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게 해주었다. 그래서 반스의 뮤즈, 플로베르를 두 번째 입주자로 선정했다.




마치며.

지금까지 줄리언 반스와 그의 아내 팻 캐바나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반스는 아내에게 바치는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반스는 이 문장을 풍선과 바구니라는 전혀 다른 것이 연결되어 하늘을 가르는 열기구를 표현하며 말하고 있다. 이 문학적 표현처럼 바스는 캐바나라는 다른 존재를 만나 분명 더 멀리, 더 선명하게 세상을 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반스와 팻 캐바나가 만든 좋은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완벽한 한 사람이라는 존재보다 각자 있을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빈틈 있는 존재와 존재의 만남이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정의는 누구에게라도 적용되는 정의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뭐 이리 만들어졌지? 라며 자신이란 존재에 한숨을 내쉴 때가 더 많겠지만, 우리 자신처럼 아무것도 아닌 다른 한 사람과 만나면 우린 세상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은 더 안심하고, 조금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싶다. 물론 그 여유의 시간에 줄리언 반스의 훌륭한 작품들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반스 하우스 입주자 여러분께.’


아내가 죽은 후에도 많은 이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여기 반스 하우스에 오신 여러분들도 제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문학은 대체 무엇이냐고.

저는 그 질문에 전에 쓴 책의 한 부분으로 대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일들에 대해선 예리하게 기억한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 우리가 함께 본 연극.

그녀가 마지막으로 마신 와인, 그녀가 마지막으로 산 옷.

마지막으로 떠나 있었던 주말.

우리집 침대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잔 침대.

마지막 이것, 마지막 저것.

그녀가 마지막으로 읽고 마지막으로 웃은 내 글.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글.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때.

그녀가 집에 왔을때 내가 틀어준 마지막 음악.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한 온전한 문장.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이것이 여러분의 질문에 전할 수 있는 저의 유일한 답장입니다.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2015 가을 개편>

'작가를 짓다' 12화   

(방송 듣기)

https://goo.gl/3400MM


<참고자료>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다산책방

『작가란 무엇인가 3』 다른

『플로베르의 앵무새』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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