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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r 07. 2016

1화 | 이사

어제는 비가 몹시 왔다.

 

나는 비 오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큰 창이 내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만 좋아한다. 조금 벌어진 걸음걸이 때문에 아무리 안짱다리를 해보려 해도 빗물이 바지에 몹시 튄다. 게다가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유일하게 발전하지 않는 기기인 ‘우산’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은 편이다.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닌 나는 이삿날 비를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게 겪었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이런 말을 했다. 

“비 오는 날 이사를 하면 재수가 좋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른들의 말을 걸러 듣지 않는 나이였음에도 그 말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빗방울이 꼬리에 복(福)을 달고 내리는 것도 아닐 텐데 재수가 좋아질 리 없었다. 이 말은 온갖 경사에 모두 통용되기도 해서 결혼식 날을 잡던 작년까지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비가 몹시 왔다. 자동차 창문으로 비를 바라보던 내가 중얼거렸다.

“비 오는 날 이사를 하다니, 아이들이 재수가 좋으려나 봐.”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그들도 나처럼 발끝에 물이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올 때 까지 비는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 나와 아이들은 자동차 창문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리는 아주 짧은 시간만 빗방울을 스치며 문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새로 설치한 중문을 열고, 현관문을 닫고, 새로 설치한 중문을 닫고. 케이지 두 개의 문을 열었다. 등을 잔뜩 움츠린 아이들은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소파 밑으로 뛰어갔다. 

바닥도, 모양도, 공기도 어색한 새로운 집에서 아이들은, 이삿날이라면 당연히 먹어야 하는 기름진 음식(쥬시캔)과 시원한 물을 나눠 마셨다. 그리고 몇 번의 울음으로 새집에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는 비가 몹시 왔다.

그 꼬리에 정말로 복(福)이 얼마나 달렸는지. 

비와 함께 로맹과 에밀이라 이름붙인 두 아이가 함께 왔다.


Written by Dalmoon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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