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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r 26. 2024

망각과 기억의 봄

#47. 망각과 기억의 봄

8월 20일. 이날을 체코의 사람들은 ‘봄’이라 부릅니다. 한여름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8월의 어느 날. 그날을 왜 봄이라 부르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한 번 만나보도록 하죠.


1968년이었습니다. 8월 20일. 소련의 군대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군대의 탱크를 이끌고 프라하로 향했습니다. 바츨라프 광장. 우리로 치면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그곳에 그 거대하고 차가운 것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목적은 간단했습니다. 체코 사람들이 꿈꾼 자유의 의지. 그것을 꺾고자 하는 것이었죠. 소련은 체코에서 시작된 자유 의지가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 퍼지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프라하의 시민들은 그런 차가운 쇳소리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인간 벽을 만들어 광장에 섰습니다. 그들은 그저 봄을 외쳤습니다. 자유란 이름의 봄을 목 놓아 외쳤습니다. 그 목소리엔 어떤 폭력도 담겨있지 않았죠. 한 소년은 탱크 포신에 꽃을 장식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프라하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친 포탄 소리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유로의 열망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그렇게 짓밟히고 말았죠.

소련은 그것으로 모든 것을 끝냈다 믿었습니다. 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이 그리 쉬울까요. 자유의 의지는 무너졌을지언정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1977년, 바츨라프 하벨을 비롯한 체코의 지식인 243명. 그들은 자유를 잊지 않은, 봄을 기억하는 체코 시민들과 함께 자유와 인권, 그리고 봄을 외쳤습니다. 그때보다 더 간절히,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 외침은 체코의 진정한 봄을 가져다주었는데요. 그 모습을 기억하는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망각에 대한 기억의 승리다.”


그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잊은 자에게 봄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봄은, 기억하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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