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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r 27. 2024

잔인한 달, 4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한 부분입니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칭하며 시를 시작하고 있죠. 만물이 소생하고 무채색의 풍경이 여린 초록과 노랑, 빨강으로 칠해지는 4월. 그 계절이 왜 잔인하다고 했던 것일까요?

그건 어쩌면 생명의 탄생, 새로운 시작, 그리고 긴 잠의 끝에서 눈을 뜨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웅크린 나무의 새싹과 꽃은 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겨우 녹음 땅을 뚫고 해를 향해 고개 들어야 하는 풀잎도 마찬가지죠.

겨우 내 긴 잠을 자고 일어난 동물들은 어떤가요.

그들도 제대로 몸을 풀려면 스트레칭만 일주일을 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크게 다르진 않죠. 부족한 실내 활동으로 굳어버린 몸은

봄의 시계에 알람을 맞춰놓는다 한들 곧장 일어나지질 않습니다.

어이구, 어이구 타령을 몇 번이나 해야 겨우 현관 앞까지 갈 수 있죠.

그렇게 봄의 나라로 문을 열고 나선 후에도 위기는 계속됩니다.

춘분을 기준으로 낮의 길이가 급변하는 바람에 우리의 신경계와 내분비계는

적응에 애를 먹게 됩니다. 덕분에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량은

겨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잠이 부족해지고

또 어쩔 수 없이 춘곤증에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봄은 즐겁지만 피곤한, 좋지만 졸린. 그런 잔인한 계절입니다.

그럼에도 이 짧은 계절을 놓칠세라 마음이 급해지는. 그런 잔인한 계절입니다.

그러니 올봄의 길목에서는 마음 더 단단히, 몸 더 가볍게! 풀면서

봄을 즐길 준비를 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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