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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r 28. 2024

물의 여정


물은 우리에게 두 얼굴을 보여주곤 합니다. 한쪽의 얼굴은 너무나 상냥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만,다른 한쪽의 얼굴은 거칠다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여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하죠.


그런 물의 거친 얼굴을 피하고자 우리는 집을 짓고, 그 위로 지붕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네모반듯하게 지붕을 올렸더니 세찬 빗방울이 벽과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지붕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지붕의 끝을 길게 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처마라 부르기로 했죠.


땅에서 하늘로, 구름에서 다시 땅으로 향하는 물의 여정. 그것을 피하고자 우리는 처마를 만들었습니다.

길게 늘어진 처마는 아무리 세찬 빗줄기도 편안하게 안고 미끄러져 나무로 만든 벽과 창호로 만든 문이 상하지 않도록 해주었죠. 그런 처마 덕에 우리는 물의 여정을 그저 편안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비 오는 소리가 너무 좋아.”라는 한가한 말도 아마 이때쯤 생겨나겠죠.


하지만 고층의 아파트가 주된 거주 시스템이 되면서 우리는 처마를 지웠습니다. 아무리 처마를 길게 늘여도 아파트 전체를 비로부터 보호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 비가 오면 그것이 방에 들어올까 겁나 창을 꼭 닫습니다. 그러자 빗소리도 닫혀버리고 말았죠.


그래서 이제는 물의 마지막 여정. 그 길에 동행할 길이 묘연해졌습니다. 그것이 아쉬운 일이라는 사실 또한 이제는 잊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 여정의 소리가 생각나는 건. 창문을 약간 열어두고 그 소리를 들어 드려놓는 건. 우리의 감각 어딘가에. 물의 여정. 그것을 따라간 기억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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