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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08. 2024

기억의 문


파리의 개선문은, 직접 가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죠.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광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인데요. 실제로 나폴레옹은 그곳을 행진하며 자신들이 쟁취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죠.


하지만 긴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건축물에는 태어났을 때 품었던 기대와 달리, 정반대의 기억이 새겨지기도 합니다. 파리의 개선문 역시 다르지 않았죠. 2차 세계대전 당시, 거침없이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은 프랑스의 영광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개선문을 행진했습니다. 아직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억하는 프랑스인과 개선문에 치욕적인 상처가 씌워진 역사적 사건이었죠.


이렇듯 어느 한쪽의 좋은 기억은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는 악몽처럼 남기도 하는데요.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던 로마의 티투스개선문에서도 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국의 승리와 영광을 위해 로마 황제는 그 무엇보다도 웅장하고 위엄 넘치는 개선문을 주문했죠. 그 결과 티투스개선문이라는 로마 제국의 힘에 어울리는 거대한 개선문이 완성되었습니다.


그곳을 보고 지나며 로마 제국 시민들은 저마다 기쁨이나 벅참, 자부심 같은 것을 기억의 한편에 저장해 두었겠죠. 그렇다면 제국의 반대편에 있던 이들은 어땠을까요?

그곳에는 로마 제국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또 다시 빼앗겨야 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에 힘에서 밀리며 설 곳을 잃었고, 개선문은커녕 작은 방문 하나 지킬 수 없는 상태로 고향을 떠나 방랑해야 했는데요. 티투스 개선문에서 그들의 기억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는 이렇듯 기억과 기억의 충돌로 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로 정면에 쓰인 승자의 기억만을 간직하곤 하는데요. 그런 기억의 단면만을 바라보다 보면 편협과 오해, 왜곡과 같은 단어들로 잘못된 기억이 새겨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조금 멀리 서서 단면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 그런 태도를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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