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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pr 05. 2024

부엌 냄새


살다 보면 아무리 애써도 잘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사과를 한다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일,

그리고 토라진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 일 같은 것들이 그렇죠.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떠나버린 어머니의 부엌 냄새를 되돌리는 일.

그것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되질 않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풍기는 적당한 습기와

거기에 배인 엄마의 음식 냄새를.

그 기억은 얼마나 힘이 세고 얄궂은지,

아무리 애를 써봐도 잊히지 않고 코앞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머니 박완서 작가의 부엌을 그대로 물려받은 호원숙 작가에게도

그 냄새는 잊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서 어머니가 했던 대로 재료를 썰고 볶고, 끓이며

그날의 냄새를 찾아 나섰죠.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엄마의 부엌.

그곳의 냄새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던 그때의 기억을 슬며시 떠올릴 순 있었죠.


그 아스라한 풍경은 어쩌면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그리워할 줄 아는, 여전히 기억을 걸을 준비가 된 나를 위한 선물.

오늘도 그 선물을 받기 위해 어머니의 부엌에 섭니다.

그리고 요리합니다.

비록 지금의 냄새가 그때의 냄새와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억 속 그 냄새는 여전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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