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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y 16. 2024

여행하다 죽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1. 베이커 스트리트


두꺼운 커튼이 반쯤 쳐져 있는 창문.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주황의 불빛.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고함소리. 

어? 이건 또 뭐죠? 



신기하게도 이곳 사람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총소리 였을까요? 신고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쩐지… 여행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 같지는 않으신가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문 앞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제복을 입은 경찰이 서있으니까 여차하면 저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그만이에요. 


그럼 심호흡 한 번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힘의 상징이 말에서 증기로 바뀌었을 무렵. 모네는 생라자르 역에 서서 새시대의 괴물 같은 힘을 그렸습니다. 그 힘은 너무나 압도적이고 지나치게 상상력이 강해서 순식간에 우리를 도시로, 새로운 생의 공간으로 옮겨주었습니다. 그 속도에 취한 사람들은 지하로도 길을 내기 시작했는데요. 마치 판타지 소설 속 드워프처럼.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픈 욕심의 눈빛을 한 채.  

지하를 파고 또 팠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지하의 길에는 증기 없이도 질주할 줄 아는 강철 더미가 빠르게 오갔습니다. 그 강철 더미는 거칠지만 공정한 성격이어서 부자든 가난한 이든,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강철 더미는 기존의 속도와 시간의 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도시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속도를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부든 명예든 범죄든. 가리지 않고 말이죠. 


그렇게 발전과 혼란의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자 런던 사람들에게는 믿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의 사각. 그것마저 채워줄 수 있는 안티 히어로가 말이죠. 



그들의 목적지는 모두 같았습니다. 베이커 스트리트. 세계 최초의 지하철 역이죠. 이곳에서 내리면 우리는 오늘 여행할 장소의 주인이 누군지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제는 탐정의 상징으로 불리는 모자와, 파이프 담뱃대를 문 한 사람의 실루엣이 역사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죠. 


그는 급격한 도시화로 범죄가 들불처럼 퍼지던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범죄를 해결하는데 모든 능력치를 쏟아 부은 듯한 그는 지구가 자전하는지 공전하는지 같은… 범죄 해결 이외의 지식은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한 인물이었죠. 게다가 성격은 얼마나 고약하고 이기적인지, 그의 곁에 머무는 이들은 한 손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이 필요한 이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 그와의 모험을 기꺼이 함께하고픈 이들의 수는 이 도시의  모든 손가락을 합쳐도 다 헤어라릴 수 없을 정도죠.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걸음을 조금 빨리 해야 합니다. 역사 내의 흥미로운 벽화를 구경하느라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먼저 온 손님들 때문에 그를 마주할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르니 말이죠. 



우리는 메릴번로 출구 방향으로 나설 거예요. 이 출구의 앞에는 파이프 문 탐정의 동상이 서있는데요. 여기서는 사진을 몇 장 찍고 가셔도 좋을 거예요. 이 탐정의 동상은 세계를 모두 뒤져도 세 개가 전부니까 말이에요. 


사진을 다 찍으셨다면 지도를 펴고 베이커 스트리트 221B를 찾아봅시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1800년대 인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클래식한 방식으로 길을 찾는 것도 괜찮은 여흥이 될테니까 말이죠. 



“어디보자…” 

흠… 그런데 대체 어디있는거죠? 베이커스트리트 221B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주소를 하나만 대라고 한다면 압도적으로 1위를 할것만 같은 주소. 그건 바로 베이커스트리트 221B 입니다. <주홍색 연구>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한 이 주소는 베이커스트리트라는 실존하는 거리에 221B라는 허구의 숫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주소 입니다. 그렇기에 지도에서 이 주소를 찾는다면 영원한 미궁 속에 빠져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지금은 베이커스트리트 239번지로 향해야 합니다.


베이커스트리트 239번지. 초행이라 해도 이곳을 지나치지는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 집 앞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제복을 입은 경찰이 늘 서있고, 현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의 집을 구경하고자 웅성이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유명 인물이 살았던 건물에 부여되는 블루 플래크가 붙어 있기 때문에 길눈이 어두운 이방인이라도 목적지를 놓칠 수는 없어요. 그럼 대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살았던 집인지 블루 플래크를 들여다볼까요? 


1881년에서 1904년. 

자문탐정. 

셜록, 홈즈. 


블루 플래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맞아요.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의 집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블루 플래크 라는 것은 실존 인물이 살았던 곳에 붙는다는 것인데, 영국 정부는 셜록 홈스라는 가상 인물에게만은 예외를 허용해주었어요. 그리고 1930년에는 ‘베이커 스트리트 221B’라는 가상의 주소 역시 허용해주었죠. 그 결과, 이곳은 세상의 모든 셜로키언들의 성지가 되었는데요. 오늘은 우리도 레인코트와 탐정 모자를 쓰고 이제는 박물관이 된 그의 집을 방문해보도록 하죠. 


아, 탐정 모자는 없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집의 1층에서 구할 수 있으니까요. 



<셜록 홈스>원작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홈스의 집 1층에는 허드슨 부인이라는 집주인이 산다는 것을 기억하실거예요. 하지만 허드슨 부인에게까지 공간을 마련해줄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1층은 기념품샵처럼 꾸려져 있어요. 이곳에서 가장 인기있는 물건은 역시나 셜록 홈스의 탐정모자, 그리고 담배 파이프일텐데요. 실생활에서 쓰고 다닐 자신이 없다해도 여기서만은 용기를 내어 모자를 써봐도 좋을 거예요.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현실의 끈을 놓고 빅토리아 시대로 미끄러져 들어가니까 말이에요. 


기념품샵을 충분히 구경하고 모자까지 멋지게 썼다면, 이제 셜록 홈스가 사는 2층으로 올라가보도록 하죠. 


“아늑한 침실 두 개와 통풍이 잘 되는 넓은 거실, 쾌적한 가구, 빛이 잘 드는 커다란 창문 두 개가 있는 집이었다. 집은 흠잡을 데 없거니와, 하숙비도 반씩 부담하면 저렴한 편이어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흥정을 마치고 계약해버렸다.”


셜록 홈스 <주홍색 연구>에 나온 이 집의 첫 인상은 홈스의 모든 기록이 그렇듯, 왓슨이라는 조력자에 의해 알 수 있습니다. 왓슨은 잘 알려진 것처럼 셜록 홈스의 모험을 기록하는 인물이자 셜록의 모험을 돕는 인물, 그리고 무엇보다 셜록이라는 냉철한 인물의 마음을 인간적으로 끌어 안아주는 위대한 인물이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의 월세를 나눠내는 필수불가결한 생활의 동반자이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당시 런던의 임대료는 만만치 않았다고 하죠. 물론 두 개의 방, 식사 제공, 집에서 화학실험과 권총 쏘기가 가능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 비싸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에요. 



이제 진짜 두 사람의 집을 구경해봐요. 이 집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우선 시선을 빼앗기게 됩니다. ‘빅토리아 풍’이라는 스타일이 있을 정도로 이 시대의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그런 분들이라면 영원히 머물고 싶은 집이 이곳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셜록이 의뢰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등장하는 두 개의 의자는 딱히 의뢰할만한 일이 없는 분들이라도 한번은 앉아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데요. 


당신에게 이 의자가 허락된다면. 당신은 셜록 홈스에게 어떤 질문을 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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