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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02. 2016

『걸 온 더 트레인』X『나를 찾아줘』

어크로스 더 유니북스


기차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선로를 내달린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원하는 곳으로 핸들을 돌리면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갈 수 있지만 기차가 갑자기 핸들을 틀어버리면 결과는. 이탈과 망가짐 뿐이다. 이런 기차의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기차에 오른다. 정해진 선로를 안정적으로 달리며 창밖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즐기기 위해. 그런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여기 몇몇 남녀가 있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기차에 오르며 각자 바라는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진정 안락한 삶은 기차선로 위가 아닌, 선로 밖에 자리 잡은 잔디밭과 이층집에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 채 말이다. 


<걸 온 더 트레인> 이 작품에는 레이첼을 중심으로 레이첼의 전 남편인 톰, 톰의 현재 아내인 애나, 그리고 레이첼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톰의 이웃집 부부 스콧과 메건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결혼이라는 기차에 올랐지만, 불륜, 알코올 중독, 그리고 살인이라는 이유로 선로를 이탈한다. 


첫 이탈자는 레이첼이다. 레이첼은 결혼 후, 심한 의부증에 시달린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웠던 몸매는 살로 뒤덮이고, 속은 알코올로 가득 차버렸다. 레이첼의 남편 톰은 그런 그녀와 이혼 후, 애나와 새로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다. 레이첼은 한때 자신의 집이었고, 현재는 톰과 애나가 어린 딸과 함께 사는 집을 기차로 출퇴근하면서 매일 두 번 마주친다. 스쳐서라도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톰의 집 이웃에 사는 부부에게 시선을 던진다. 


레이첼이 바라보는 부부는 스콧과 메건 이다.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두 사람의 일상. 하지만 그것은 기차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두 사람의 싸움 소리를 듣지 못한 레이첼의 착각일 뿐이다. 그들의 안락해 보이는 결혼 생활은 메건이 살해당하면서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레이첼은 기차를 타고 다니다 메건이 낯선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을 떠올리고 스콧에게 그 사실을 전하며 스콧 부부는 물론이고 몇 집 건너 사는 전남편 부부의 삶에 다시금 끼어들고 만다. 


폴라 호킨스의 첫 서스펜스 장편 소설인 이 작품은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폴라 호킨스 작가는 이 작품에 몇 가지 영리한 장치를 심어 두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의 이동이다. 작가는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을 레이첼과 애나, 그리고 메건의 시점을 바꿔가며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1인칭 방식의 서술은 한 인물이 가지는 시야의 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런 시야의 한계에서 오는 궁금증을 다음 장에서 다른 인물의 시야로 밝힌다. 이 작품은 이런 방식을 반복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아직은 어두운 방의 불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다음 장을 어서 넘기고 싶어진다. 이러한 작품의 기교 덕분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전반부와 달리 메건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페이지는 손쉽게 넘어간다. 


작가가 심어둔 두 번째 장치는 ‘기차’다. 작가는 겉으로는 기차를 소재 정도로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레이첼이 기차를 타고 두 부부를 관찰한다는 것 외에 기차가 하는 역할은 크게 중요하게 나오지 않는다. 이때 작가는 기차에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부각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선로를 따라 달리는 안정적인 기차의 이미지를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비시키고, 인물이 기차에 타고 있을 때(전반부)와 내렸을 때(후반부)의 극명한 현실적 대비를 보여준다. 이렇게 기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결혼’이 새하얀 웨딩드레스로 대변되고, 힘찬 결혼 행진곡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작가는 기차의 투명한 창을 통해 관음과 의심의 키워드를 녹여내기도 하고, 끝없이 움직이는 기차를 땅에 박힌 이층집과 비교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기차’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걸 온 더 트레인> 이 작품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흥미로운 전개방식과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결혼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하기에 더욱 가까운 이야기를 전달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매일 똑같은 통근 길의 지루함을 없애는 데에는 현실감 있는 살인 이야기만 한 것이 없다”는 <코스모폴리탄>의 평처럼 이 작품의 사건은 현실과 가깝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서스펜스의 요소와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등장인물 외에 사건을 풀어나가야 하는 경찰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사건을 풀어낼 만한 충분한 증거와 요소들이 있었음에도 경찰들은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로 인해 사건의 해결은 더디게 되고, 결국 사건의 해결을 등장인물의 손에 맡기는데 이 점에서 리얼리티가 크게 손상되는 편이다. 그리고 인물의 내면이 극명히 드러나야 할 부분에서도 지나치게 일반적인 서술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독자들에게 잔뜩 모아둔 긴장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걸 온 더 트레인>의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결국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결혼'이다. 작가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를 통해 일어나는 생활이 과연 기차의 선로를 달리는 것처럼 안정적인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의 폭발로 만들어진 우주에는 아주 비슷한 소설이 한 편 있는데 바로 길리언 플린 작가의 <나를 찾아줘>이다. 불륜과 의심, 속임수와 파괴 등 결혼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키워드를 통해 결혼 생활의 어두운 면을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다. 만약 <걸 온 더 트레인>에 이어 <나를 찾아줘>를 함께 읽는다면 책장을 덮은 후 이러한 질문이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이 기차에 몸을 실어도 되는 것일까?

답은 없다. 

다만 기차가 떠나기 전, 기차의 행선지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스스로의 이야기로 결정했길 바랄 뿐이다.


Written by Dalmoon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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