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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03. 2016

『돌의 연대기』X『드리나 강의 다리』

어크로스 더 유니북스

돌보다 강한 것. 그런 것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지루하고 성실하게 부딪치는 파도가 그랬고, 현재에는 몇십만의 숫자는 우습다는 듯 파괴하고 마는 거대 무기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떠올릴 때면 '돌'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정답은 돌의 속성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 돌은 무수히 많은 파도를 맞으면 깎이기 마련이고, 가공할만한 위력의 무기와 부딪치면 모래로 변하고 만다. 하지만 파괴를 목적으로 둔 강함에는 단단하다는 표현을 붙이기가 어색하다. 돌처럼 파괴의 속성이 전혀 없는 것에만 어울리는 것이 바로 단단함 이라는 표현이다. 

 

여기 그런 돌로 만들어진 도시가 있다. 모든 것이 돌로 만들어졌기에 무엇보다도 단단한 도시. 단단하기에 누군가의 공격을 피하지 않은 채 온몸으로 받아들였고, 앞다투어 꽂아대는 깃발을 견뎌야만 했던 도시. 포탄이 떨어지고 피가 강이 되어 흘러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돌의 도시.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의 『돌의 연대기』는 그런 돌의 도시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자신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더 잘 알려진 작가라 불리는 알바니아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 『돌의 연대기』는 그의 고향 마을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돌의 도시는 석재 건축물로 이루어진 도시인데 『돌의 연대기』는 이 익명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역사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실제 알바니아의 역사가 어땠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알바니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침공을 당했고, 이어 그리스의 침공을 받게 된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가 재탈환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내 연합군에 항복을 해버리고 알바니아의 소유는 독일에 넘어가고 만다. 독일은 마지막까지 버티다 알바니아에서 깃발을 뽑고 철수를 하게 되는데 이 복잡한 침략의 역사가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공간과 시간의 배경을 알아봤으니 이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정답이고 나머지는 오답이다. 분명 소설은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말하는 이의 입이 군인이나 정치가, 혹은 혁명가의 입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 전부를 이끌어 가는 것은 다름 아닌 한 소년의 입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년은 이름도 나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이름이나 나이를 파악하기 힘든 돌의 특성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소년의 말투나 생각, 그리고 친구들과의 행동을 보면 소년이 아직 전쟁이란 것을 제대로 인지할 능력이 없는 나이의 어린 소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의 눈에 비친 전쟁과 포화, 끝없는 공습은 조금 규모가 큰 놀이에 불과하다. 소설을 살펴보면 매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공습에 대비해 마을 사람들이 소년의 집 지하실을 방공호 삼아 찾아오는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이동하는 이 순간들을 소년은 천진난만하게 즐기고 있다. 많은 사람을 받을 수 있는 거대하고 단단한 자신의 집 지하실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한곳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독자들은 소년의 미소 위로 지금도 폭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새 소년처럼 전쟁을 비극의 사건이 아닌 놀이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놀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주인공 소년은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시선으로 말하는 역할도 하지만 주변의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전달해주는 역할도 한다. 목숨을 내놓는 일이 있더라도 마을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인들과 어떻게든 가족을 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는 부모들, 스스로 믿는 이념을 지키려 전쟁의 가운데 뛰어드는 청년들까지. 돌의 도시에 사는 어른들은 하루라는 평범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전쟁에 맞선다. 그런 그들의 행동은 주인공 소년의 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소년의 동화에서 어른의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그런 현실마저도 마술적 진실을 믿는 신앙(마법의 뭉치를 두려워한다거나 닭 뼈로 점을 치는 등의 행동)과, '등화관제'라는 말을 처음 들을 정도로 전쟁과 연이 없었던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행동이 아이러니한 유머를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 특유의 유머는 전쟁의 상황이 극으로 치달을수록 현실과의 간극이 깊어져 진한 웃음을 짓게 한다.


이렇게 돌의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은 몇 번이고 바뀌는 화폐와 깃발의 색깔 속에서 묵묵히 하루라는 평범한 삶을 지켜나간다. 소설 『돌의 연대기』는 결국, 한 소년의 순수함과 가족의 저녁 식사 연기를 지키는 데는 강렬한 창의 파괴력보다 단단한 방패의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흔들리지 않는 돌의 도시를 보여줌으로써 대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듯 지속을 넘어 영속의 속성을 가진 공간을 매개체로 태어난 소설이 또 하나 있다. 이보 안드리치 작가의 『드리나 강의 다리』가 바로 그것인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작가의 조국 보스니아의 400년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드리나 강의 다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돌의 연대기』와 구조는 물론이고 메시지 역시 흡사한데 그 이유는 두 소설 모두 무너지지 않는 공간(돌의 도시와 드리나 강의 다리)을 보며 사람들은 위안을 받고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을 살아간다는 것. 시간의 의미가 진하게 배어있는 이 말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반드시 흔들림 없이 발 디딜 땅과 도시가 필요하다. 


이 소설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공간이 내게 허락되어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 소설은 저절로 발밑을 둘러보게 한다. 


Written by Dalmoon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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