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06. 2017

내년의 오늘을 위한 핑계

Essay Serial

12달 전. 이런저런 다짐을 했습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말이죠. 대부분 다짐의 시작은 ‘나는’ 이었고 끝은 ‘~하겠다.’ 였습니다. 다짐이라는 것은 개인이 개인에게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당연히 그랬겠죠. 그런 이유로 12달이 지난 지금 ‘나는’ ‘~하지 못해서’ 씁쓸히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나라는 개인에게만 국한된 일입니다. 내가 나에게 다짐한 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타인이 씁쓸해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술잔을 비워주지는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일까요? 제 1년의 마지막 날은 지극히 개인적인 날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공에 홀로 기뻐하고 과에 홀로 아쉬워하는 그런 날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다짐을 했다면 말이에요. 예를 들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눈이 오게 하겠다.”라든지 “철새의 개체 수를 작년보다 1.5배 늘리겠다.”라든지. 이런 다짐들을 했다면 성공이든 실패든 1년의 마지막 날이 조금 덜 개인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늦봄에 했던 그 모임 기억나? 그때 너무 마셨잖아. 그때 한 두어 병만 덜 마셨더라도 병을 분해하고 재활용하는데 석유를 덜 썼을 거 아냐. 그랬으면 공기도 예전보다 좋아졌을 테고 철새도 늘었을 텐데 말이야. 또 혹시 알아? 오존층이 덜 파괴되어서 북극의 얼음량이 늘고 덕분에 추운 바람이 불어와 오늘 눈이 왔을지 말이야. 정말 아쉽단 말이야. 우리가 그때 그랬다면 정말 괜찮았을 텐데. 안 그래?”


이런 대화를 하며 첫날의 다짐을 조금 덜 개인적으로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헛헛한 생각을 하는 중에도 관성에 이끌려 내년의 다짐을 몰스킨 노트에(내년 다짐 중 하나가 ‘스웩을 위해 몰스킨 노트를 쓰겠다’ 입니다.) 끄적이고 있습니다. 여러 다짐이 있지만, 책에 한정해 이야기해 보자면 ‘작은 서점에 어울리는 큐레이션 만들기’ 혹은 ‘파리 여행 에세이 쓰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역시나 지극히 개인적인 다짐이죠. 그래서 이런 개인적인 다짐 앞에 큰 제목을 하나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작은 서점에 어울리는 큐레이션 만들기’ 앞에는 ‘동네 서점의 활성화’ ‘파리 여행 에세이 쓰기’ 앞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가득한 도시 만들기’ 이런 식으로 말이죠. 개인적인 다짐이 이렇듯 큰 제목 밑으로 들어가니 왠지 마음이 편해집니다. 내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함께 애써줄 테니 말이죠. 만약 나라는 개인 작은 서점을 위한 큐레이션을 제대로 못 한다 해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동네 서점의 활성화’를 위해 훌륭히 애를 써줄 것이고, 쓸모없는 것들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제가 파리 여행 에세이를 완성하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는 애써 목표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저 나라는 개인은 할 수 있는 만큼의 행동을 통해 조금 거들면 그만일 것입니다. 


<첵 읽는 라디오>도 이런 식으로 다짐을 해볼 수 있겠죠. 기왕이면 가장 큰 제목에는 ’도서 문화 발전’이라고 넣어보죠. 그 아래 제목에는 ‘한국 작가의 발견과 홍보’ ‘양질의 인문서 출간 증가’ ‘제 3세계 및 해외 신진 작가의 번역서 출간’ 등을 마음껏 붙여 봅니다. 이제 그 아래 개인의 다짐이 들어갈 것입니다. 누군가는 한국 소설을 집중해서 소개할 것이고 누군가는 인문서를 다양한 주제로 파볼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제3세계 작품들을 이야기 나눌지도 모릅니다. 이 작은 곳에서 펼쳐지는 몇몇 사람의 목소리는 그 정도 크기의 제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다면 분명하게도 훨씬 좋은. 그런 제목이면 충분하겠죠. 




작가의 이전글 '담담 놀이터' 3화 | 귀신의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