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집어던진 의자

어느 만큼은 피해자로 사는 인생

by 홍선생

어제 어느 신문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군대 입영을 위해 받은 신체검사 및 정서검사에서 아이가 지적장애 경계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어느 부모의 이야기였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만연한 분노조절장애와 ADHD, 우울증과 공황장애.

어쩌면 모두가 마음의 병을 앓고 사는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현대인의 병은 깊어간다.


아이가 단지 좀 느린 줄 알았다는 부모.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 혼자 밥을 먹고 대학에서도 어울리는 친구가 없다해서 좀 적극적으로 생활하라고 했다는 부모는 검사 결과를 받고 놀랐다고 했다. 그동안 19년을 홀로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했다고.


경계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경우의 수에 따라, 환경에 따라, 관계의 점성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해 우리반에도 있었다.

유독 친구들과 관계형성이 어려운 녀석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에서 보내고, 점심시간이면 선생님들과 돌아가며 상담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허풍이 있어서 또래 남자 아이들은 녀석을 무시하는 분위기였고,

학급에서는 녹아들지 못해서 여자 아이들도 소속감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이는 모자라고 부족한 공부지만 수업 시간에 허튼 행동을 하지 않았다.

수업의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늘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고 눈을 맞추는 아이였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졸거나 자는 일도 없었다. 어쩔 땐 너무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유명아(가명), 샘만 빤히 보는 거 아니지? 샘 설명도 듣고는 있는거지?"

하고 물으면 큰 소리로 "그럼요. 제가 댜 듣고 있어요!" 하고 되레 큰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야야~! 듣긴 뭘 들어. 이해도 못하면서" 하며 면박을 주곤 했지만 유명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듯 했고, 부모님 상담 때는 아버지가 안계시고 어머니는 우울증 약을 드시고 형이 하나 있는데 군대가고 없어서 유명이 혼자 엄마와 보낸다고 하셨다.

그래도 어머니 말씀을 끔찍히 잘 듣는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유명이 마음 속의 분노는 예상치 않은 날 찾아왔다. 아이들이 간혹 놀리거나 무시하는 말을 해도 따끔히 눈치주고 혼내면 그대로 자기 기분은 수그러드는지 점심때는 와서 "저 그런 애들 말 신경 안써요~" 하며 너스레를 떨던 녀석인데. 그 날은 달랐다.


오히려 별일도 아니었다.

학급회의를 할 때였다. 학급 체험활동으로 어디를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의논주이었는데

별안간 우당탕 벌어진 일이었다.

"야이 씨발놈들아!"라고 소리를 치던 유명이는 벌떡 일어나서 책상 위의 물건을 집어던졌다.

옆에 있던 아이들도 놀라서 일어서 버렸고, 여자 아이들은 벌써 괴성을 지르며 저만큼 무리지어섰다.

"유명아 왜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물었을 땐 이미 유명인 복도로 뛰쳐나가는 중이었다.

가장 덩치가 컸던 우리 반 반장을 불러 도움을 청했다. "가서 유명이 좀 ~"

반장 녀석이 나름 책임감에 나가서 유명이를 진정시킨다고 잡았는데 그게 더 큰 도화점이 되었다.

유명이를 잡는 반장의 손을 뿌리치다가 유명이는 반장 아이의 팔을 비틀었고 반장도 화가 났다.

이러다가는 학교폭력이 될 수 있었다.

"너, 들어가"

반장을 들여보내고 화가 잔뜩 난 유명이와 내가 복도에서 마주봤다.

"유명아 샘하고 얘기해. 크게 심호흡하고 조금만 천천히 응?"

하는 순간에 유명이는 다시 교실로 박차고 들어가더니 의자를 하나 갖고 나와서 머리위로 쳐들었다.

남자 아이들 몇이 나와서 말리느라 뛰쳐나왔지만 이미 의자가 던져졌고.

당황한 내가 아이들에게 날아드는 의자를 막느라 의자를 정면으로 맞았다.

"악!" 소리를 지르며 나는 의자와 함께 내동댕이쳐졌다.

그 순간 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옆 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나와 유명이를 에워쌌다.

"미친 놈 아냐?"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영문에 아이들이 유명이를 몰아세우고 욕했다.


놀란 내가 일어서지 못하고 서 있는 유명이를 봤을 때 유명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분명 나보다 놀란 눈이었다. 분명 그러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만큼이나 놀란 유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명이는 손이 바르르 떨렸고, 일단 우리는 이 자리를 수습해야 했다.

나는 혼자 설 수 없어 반장의 부축을 받아 보건실로 이동했고, 유명이는 옆 반 남자선생님의 호출로 끌려가다시피 교무실로 인계되었다.


나는 그 일로 발목 인대가 나갔고, 의자가 치고 간 자리에 찰과상이 오래 남았다.

바로 유명이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유명이는 졸업할 때까지도 그 날 왜 그랬는지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니, 군대에서 휴가나온 형이 이것저것 잔소리릃 하며 무섭게 유명이를 몰아세웠고 말대꾸를 하다가 유명이가 형한테 많이 맞았다고 했다. 어머니 말씀은 휴가나온 형도 우울증 약을 먹는 중이라 자신은 말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유명이 형이 휴가나오는 일정을 꼭 알려달라는 당부를 끝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마쳤다.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와 형의 우울증, 다소 부족하고 어눌한 유명이의 표현력.

누구에게 이 무질서의 잘못을 물어야 하는가.

던져진 의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유명이를 문제삼고 싶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내 입장과 유명이의 상황을 받아들여줬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릴 때마다 아이들은 유명이를 비난했다. 나를 위함이 아닌, 그저 유명이에 대한 불편함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나 또한 유명이의 방패가 되어줄 수 없었다.

"이녀석들이 수업하기 싫으니까 괜히 샘 다리 핑계댄다. 암시랑도 않으니 우우거리지 말고 고만해라."

진지함으로 맞설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짚으면 짚을수록 유명이는 작아지고 없을테니까.

그런데 유명이의 이런 폭력성은 마치 그 날이 시작이었다는 듯이 간간히 터졌다.

의자를 집어던진 후에는 책상을 발로 차서 점심시간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수업 시간에 자신에게 욕을 했다며 아이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건마다 실제 누군가를 때리지는 않았다.

어머니께 상담이나 치료를 말씀드렸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상태나 형의 질환에 비하면 유명이는 그렇게 심하진 않다고 집에서는 잘 지낸다고 하셨다. 그 이상을 권할 수도 강요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유명이는 3학년이 되었고, 졸업을 했다. 그 후 한 번도 유명이를 지역에서 보지는 못했다.


문득 오늘 유명이가 떠올랐다. 군대는 갔을까. 유명이도 이런 검사를 하며 자신의 상태를 진단해 보긴 했을까.

유명이의 슬픔과 분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조는 설움, 그마저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유명이가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를 떠나지 않았고, 학교를 졸업했고,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다. 도리를 알았고, 공교육을 받았고, 정도를 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유명대학에 가서 높은 학력을 뽐내며 사회의 명예와 권력을 탐하고 도리를 잃고 이익만 탐하는 정도를 넘는 인간들이 많다. 유명이는 자신의 그릇을 넘치지 않게 찰랑이며 노력한 것이다.

유명이와 함께 했던 그 날의 대치. 아직도 그 복도에 서면 생각난다.

유명이가 나를 바라보던 눈. 미안함이 가득했던 눈.


아름답다는 우리 말에 "아름"은 "나"를 의미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나답다"는 것이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가졌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유명이가 오늘, 어디서건 아름답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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