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학창시절 선생에게 엄청 맞았다는 중년의 에피소드를 들었다.
우리 때는 엄청 맞았지.
요즘 애들도 보면 꼴통들 한 대 쥐어박아야 정신을 차리는 놈들 많아.
나는 체벌해. 누가 뭐래도 난 정당하게 반박할 수 있어.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건넌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삼겹살을 집던 젓가락이 멈췄다.
담임에게 말대꾸했다고 뺨을 10대도 넘게 맞았다는 그 중년 교사는
그러고 나서 자신이 절대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자기가 지금 교사가 되어 있다며
함께 둘러앉는 동료인 듯한 사람들에게 영웅담처럼 말했다.
자기소개서를 써 오라고 했는데 원서 마감을 코앞에 두고 겨우 써 온 놈이 그날 야간자습을 튀었다.
너무 화가 나서 불러다가 나도 10대 넘게 뺨을 때렸다. 뭐 다음 날 불러서 잘 얘기했고, 민원은 없었다.
대학간 놈이 지금도 연락 오면 그 때 맞았던 얘기를 한다.
괜찮은 걸까.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할 만큼 그 아이에게 그 날은 기억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것이다.
그게 괜찮은 걸까.
민원이 없도록 아이와 얘기가 잘 끝났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대학을 잘 갔고 나와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니 문제가 아닌걸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뺨을 여러 대 맞을 만큼 잘못했으니, 맞아도 싼 일은 있는걸까.
우리는 아이들을 만나는 어른이다.
어른인 교사가 아이를 상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이해를 못한다고, 건방지다고, 규칙을 어겼다고 때려서
그것이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교사인가?
물론. 나도 체벌을 했다.
학교에서 담배를 핀 녀석들이 3명. 똑같은 실수로 3번이나 적발되었을 때였다.
나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5대씩 때렸다. 그리고 어디 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마냥 안티푸라민을 구해다가 하교전에 불러 의자에 앉혀놓고 허리를 숙여 발라주며 욕을 했다.
"정신나간 놈의 시끼들. 대놓고 들키라고 핀 거지 그게 실수냐? 나랑 한 번 붙어보자 이거지? 어디 계속 해 봐라. 니놈의 시끼들은 계속 피고, 나는 계속 잡으러 다니고, 또 종아리 핏줄나게 회초리로 맞고. 이게 담임이랑 반 학생이 학교에서 꼭 해야 할 짓이냐?"
한 녀석은 할머니와 사는 놈이었고, 한 녀석은 학교 일짱인데 아버지한테 맞고 사는 놈이었고, 한 녀석은 말 그대로 두 녀석의 꼬붕이었다. 실실 쪼개며 교복 바지를 걷어올리며 "아~ 샘이 때려도 하나도 아프지도 않다니까요." 하는 말에 욱해서 꽤 아프게 때렸다.
"기억해라. 따끔거릴 때마다. 홍쌤이 진짜 실망했다는 것을."
물론 녀석들은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래도. 교내에서 피다가 걸린 건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다. 교사가 학생을 체벌할 때 회초리라는 체벌을 목적으로 할 때와 개인의 감정이 실린 손찌검을 하는 것은 같지 않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둘 다 아이에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이다.
하지만. 누구의 감정을 먼저 바라보느냐는 중요하다.
내가 내 감정에 치우쳐 아이에게 휘두르는 손찌검은 체벌이라는 교육적 지향점을 가질 수 없다.
사람이 손으로 뺨을 때리는 행위는 상대에 대한 모멸과 멸시, 증오와 분풀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감정보다는 상대가 가지는 마음을 흔들어 놓아야 겠다는 내가 선 위치를 명확히 하면
회초리는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의 메세지를 담을 수 있다.
이제는 다 자라 군대도 갔다오고, 결혼한 녀석도 있다.
돌잔치를 하는데 선생님을 초대해야 하는지 망설였다는 녀석의 연락에 나는 카톡으로 "안부를 전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전했다. 이제는 그 놈도 나도 어른이 된 지금.
아이는 자랐는데 나는 더 자랐는지 궁금하다.
옆자리 저 철없는 교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는 멈췄던 젓가락질을 계속했다.
폭력의 체벌은 괜찮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철들지 못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