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아기는 이유식 세끼를 시작했다. 어른들처럼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연습을 시작한 거다.
6:30-7:00 이유식1 150g
8:30 분유1 160-200ml
10:30-11:00 이유식2 150g
13:00 분유2 130-150ml
15:30 이유식3 150g
17:00-17:30 간식+분유 160ml
18:30 분유4 120-150ml
아침부터 저녁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스케줄은 말할 거리도 아니다. 아기가 먹은 것을 온 사방팔방에 발라놓은 덕에 나는 아기 씻기고 먹은 자리 닦고 설거지하고 나면 다시 다음 먹을 시간이 돌아오는 대환장파티를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집에만 있는 건 나도 갑갑하고 아기도 놀기 지겨워하니 낮잠을 자고 끼니 한 번을 해결한 타이밍에 하루 두 번 유아차를 태워서 동네, 마트, 카페 같은 곳을 순회 다니곤 한다. 이것도 1시간 안팎으로 아기 컨디션을 맞춰가며 겨우겨우 다니는 거지만.
그러니 사람이 어떻게 집 근처만 순회하고 살아? 요즘은 날도 좋고 마침 남편도 평일에 집에 있으니 조금 멀리 놀러 갔다 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아기가 태어나기 전 나와 남편은 시간만 나면 가까이는 근교 카페부터 전국 방방곡곡 안 가는 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기 태어나고는 조금 줄었지만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왕복 7시간 거리도 떠나곤 했다.
그런데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니 그리고 지금처럼 이유식 세끼에 분유와 간식까지 챙겨야 하는 시점이 되고 나니 자신감이 훅 줄어 여행다운 여행은 다니지 못했다. 오늘도 결혼기념일이었는데 2박 3일 코스의 여행을 이리저리 고민해봐도 끼니를 다 챙겨가며 여행다운 여행 기분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이유식을 바리바리 싸가도, 여행 가는 업체에서 사다 먹여도 심란하고 아기의자와 기저귀 갈이대를 찾아 검색하는 것도 아기 이유식 먹일 곳 없어 헤매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였다.
결국 이동시간 1시간 내의 거리로 당일치기를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웃렛을 포함한 코스로 아기 끼니와 기저귀 문제도 해결하게로 했다. 오후 낮잠을 이동하는 차에서 재우고 이유식과 분유 수유 한 번을 밖에서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기가 있기 전에 아웃렛이란 가끔 아이템을 싸게 건져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있는 시점에 아웃렛이란 유아차를 밀고 다닐 수 있는 환경과 후기 서칭에 시달리지 않아도 아기의 편의를 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됐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아기는 다행히 잘 잤다. 아기가 깰 때쯤 도착한 관광지에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며 가을을 즐기다가 곧 아웃렛으로 이동했다. 수유실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해결한 뒤 잠시 쇼핑하며 걷다 보니 비슷한 이유로 아웃렛에 아기를 데려온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른 저녁은 호텔에 있는 식당에 갔다. 호텔에 가면 아기의자와 아기 기저귀 정도는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니까. 우리 식사와 아기 수유를 마치고 아기 기저귀도 다시 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기는 평소보다 많이 피곤했는지 다시 잠이 들었다. 성공적인 장거리 외출이었다.
남편과 오늘 일정 좋았다며 이제 좀 멀리도 나갈만하다며 느낀 건 아무래도 한동안은 백화점, 대형 쇼핑몰, 마트, 리조트나 호텔을 끼고 다니지 않는 이상 순조로운 여행은 어렵겠구나 싶었다. 아기도 사람이니 이동하기 편하고 앉을 곳, 화장실 정도는 갖춰진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게 아기 낳기 전엔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조금 씁쓸하지만 뭐 노키즈존만 안 마주쳐도 다행힌 혐오가 판치는 세상 아닌가. 내일은 대형마트 가서 점심 먹고 산책이나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