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추’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깔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인데 보통 연애 시장에서 그런 말을 쓰는 듯하다. 나도 그런 거 좋아한다.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들 또는 직장에서 취미활동을 하다 만난 인연들처럼 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천천히 친해지는 게 좋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나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면서 말도 통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운이 따라줘야 하는 듯하다. 특히 나처럼 내성적이고 마음의 벽이 높은 사람에겐 더더욱.
아기를 낳은 이후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일단 나는 직장 이주자로 직장 때문에 낯선 지역에 살고 있어서 직장 사람들을 제외한 인연들은 이곳에 거의 없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내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직장으로 인해 연을 가졌던 사람들은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나는 출근하기 싫다고 외쳐댔지만 출근을 해서 적당한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누리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몇 개월을 속 답답하게 살다가 아기가 4개월이 될 무렵 너무 갑갑하고 죽겠어서 육아휴직 중인 지인에게 사람 소개를 부탁했다. 우리 아파트에 지인의 친한 사람이 우리 아기랑 같은 해에 아기를 낳고 키우고 있단 사실을 알아서였다. 전에도 종종 그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직장 다닐 땐 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염치없게도 내가 궁지에 몰려서야 소개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한 셈이다.
다행히 소개받은 분은 다정하신 분이었다. 서로의 집에도 놀러 가 지루하고 갑갑한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고 문화센터 같은 수업에 등록해서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도 하니 매일 챗바퀴 같은 육아가 조금 견딜만해졌다. 하지만 옆자리 직장 동료처럼 매일매일 함께할 수는 없는 거고 나는 남편이 교대근무를 떠난 날들이 너무 느리고 길게 흘러가니 역시 채널이 하나뿐인 건 역부족이었다. 나는 원래 직장을 다니면서도 운동 하나, 소모임 여러 개를 잡고 빽빽하게 스케줄을 굴리던 사람이 아니었나. 육아모임도 마찬가지인 거다.
그래서 남편 직장 동료를 초대하기도 하고 문화센터 옆자리 분과 말도 터봤는데 생각보다 사람과 인연을 만든단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컨디션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아기를 사이에 둔 만남이란 약간의 어수선함을 동반하기에.
그러던 오늘 아기를 안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아기띠를 한 여성분을 마주쳤다. 그분이 먼저 우리끼리 말문을 트는 마법의 언어인 ”아기가 몇 개월이에요? “라는 인사말을 건네셔서 대답하다 보니 잠깐 사이에 출산과 수면, 문화센터 심지어 어린이집 이야기까지 끝내고 그분의 폰에 내 번호를 남기고 있었다. 아.. 이게 외로움의 증거인가? 겨우 아기라는 공통점 하나 가지고 이렇게까지 쉽게 서로의 모든 개인정보를 터버리는 게?
내 스토리를 들은 남편은 좀 황당해 하긴 했지만 곧 나를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한번 만나보라고 나를 설득했다. 엘베 만 타면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얼마나 좋냐면서. 듣다 보니 나도 오래간만에 만난 작은 인연이 조금 설레서 그분에게 연락이 오자마자 우리 집에 놀러 오시라고 방문 약속을 잡았다. 이번엔 잘 됐으면 좋겠다. 1-2주에 한번 숨통 트일 정도여도 살만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