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운 지 벌써 만 9개월이 되었다. 11월도 반 이상 넘어가고 있다. 이번 주에 집들이 겸 공동육아를 하려고 우리 아기와 개월 수가 비슷한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벌써 연말이 다가왔다니. 올해는 육아만 하다가 끝나는 기분이다.
요즘 아기는 부쩍 상호작용이 잘 되고 있다. 점점 사람과 교류하는 느낌이다. 아니 사람이라기보다는 강아지에 더 가깝다. 왜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몸짓과 목소리, 안겨올 때의 묵직하면서 따끈한 몸, 하루의 일과를 하나씩 해낼 때마다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호흡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너를 사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실 임신기간이나 아이를 바로 낳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다가오는 일에 대한 충격이나 두려움이 컸다. 다른 사람은 운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임신을 계획하고 한 번에 테스트기 두 줄을 확인한 것도 당황스러웠고 잘 쌓아왔던 나의 경력과 관계들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무섭기도 했다. 임신 7주부터 19주까지 겪었던 지독한 입덧, 좀 나아지나 싶더니 31주부터 시작됐던 조기진통과 입원생활도 아기가 커가는 과정을 오롯이 즐기기엔 어렵기도 했다.
두려웠던 임신과 출산이 끝나고 병원을 퇴원한 후 조리원에 와서 아기를 맡겼을 때야 비로소 안심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조리원에 있는 동안은 좀 편히 내 몸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조리원 둘째 날이 되어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받아 안고 아기를 수유하러 가면서 아기 얼굴을 봤는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구나. 참 사랑스럽구나 하고.
조리원 퇴소 후 이어진 육아는 산후관리사님이 있었는데도 매우 고됐다. 특히 남편이 없는 날은 새벽 수유가 몽땅 내 몫이라 산욕기의 몸으로 잠을 못 자는 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수유를 하고 잠든 아기 얼굴을 보면서 작고 귀여운 내 아기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마냥 그 순간이 불행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육아기간 내내 우울증은 내 정신을 무수히도 갉아먹었지만 말이다.
이전의 육아가 고통 50과 무력감 30과 기쁨 20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요즘은 고통과 기쁨이 반반인 느낌이다. 아기가 밤잠을 잘 자게 된 것, 조금은 혼자 노는 시간이 생긴 것, 한두 시간의 바깥 외출 정도는 즐겁게 다녀올 만큼 성장한 것이 내 우울감을 줄여준 덕이다. 그런 것 말고도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이 내게 익숙해진 것도 내가 조금은 안정감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기는 여전히 새벽 여섯 시가 되면 눈을 뜨지만 이전처럼 강성 울음으로 내 혼을 쏙 빼놓진 않는다. 다만 조금 더 자고 싶다며 모른 척하는 나를 향해 침대 가드를 흔들어대거나 혼자 뒹굴대며 놀고 있다가 몰래 아기를 살피는 나와 눈이 딱 마주치면 깔깔대며 마주 웃어준다. 밤 기저귀를 갈아주는 내 몸짓에 순순히 누워서 인형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내가 이유식이나 분유를 준비하고 있으면 “음마아아아아” 하고 다다다다 기어 와서 내 다리에 매달리기도 한다.
노는 시간도 부쩍 늘었다. 예전엔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를 몰라서 어색하게 장난감을 흔들어주거나 책을 펼쳐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아기는 이제 스스로 노는 능력이 생겼다. 놀 거리도 스스로 찾아 집안 곳곳을 탐색한다. 심지어 슬쩍슬쩍 나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손이 안 닿는 곳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게 올라타서 얼른 저기에 데려다 달라고 들썩들썩 온몸을 흔들기도 한다. 천으로 된 인형은 꼭 안고 얼굴에 비비며 옹알이를 하기도 하고 소리 나는 장난감을 쥐고 흔들고 돌리고 바닥에 문지르기도 한다. 그러다 신이 날 때면 “끼이이이야!” 소리와 함께 몸을 흔들거나 손뼉을 치기도 한다.
요즘엔 부쩍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라지면 기어 와서 살피러 오기도 하고 까꿍놀이를 할 때면 숨을 잘 쉬나 싶을 정도로 깔깔거리며 웃는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 따라와서 내 앞에 앉아있는 건 인간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게 돼서 조금 슬프긴 하지만 내가 쓰는 물건에 관심을 가지고 어설프게나마 따라 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면 다 눈여겨보고 배우고 있구나 싶어서 감탄스럽기도 하다. 속싸개에 돌돌 말려서 분유도 제대로 못 먹던 아기가 언제 이만큼 커서 이것저것 배워가는 걸까.
오늘도 아기의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자다 깬 모양으로 살짝 들떠 있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깔깔깔 웃는다. 그러면 아기도 내가 웃는 얼굴을 보고 따라 웃는다. 이런 순간들을 사랑할 수 있어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