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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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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06. 2022

20. 중이염

코감기가 시작되나 싶어서 병원에 갔더니 양쪽 귀에 중이염이 생겼단다. 약을 받아먹는 건 벌써 3번째다. 이번 중이염은 코와 기침감기가 제대로 와서인지 꽤 지독했다. 아기가 이렇게 아플 때면 나는 또 자책을 시작하곤 한다. 돌 전까지 또는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 병치레를 하지 않는 아기들도 많다는데 나는 이렇게 전전긍긍하고도 겨우 9개월 아기 인생에 5번째 중이염을 안겨주었을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리저리 돌아봐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니까 계속 중이염이 돌아오는 건가?


병원에 가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다. 아파서 병원 가는 게 뭐 그리 좋은 일이겠냐만 내가 아픈 것보다 아기가 아픈 것이 더 어렵다. 일단 소아과에 접수하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아기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아는 '똑닥' 어플이 있다. 병원 접수 시간이 열리면 똑닥 어플에서 예약을 하고 대기번호를 받는 시스템이다. 이 어플에서 병원 접수하는 건 티켓팅과 비슷하다. 내가 가는 병원은 그래도 8시 맞춰 접수하면 운 좋을 때는 20번대의 번호를 받는데 누름과 동시에 마감되는 병원도 있다. 물론 내가 가는 병원도 8시 3분이 되면 오전 접수가 모두 마감되지만 그래도 3분 정도의 여유는 있으니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렇게 접수하면 받은 번호가 아기의 낮잠, 수유시간과 겹치지 않는지 면밀히 계산해봐야 한다. 그나마 수유시간과 겹치면 가기 전에 먹이거나 병원 수유실에서 먹일 수 있지만 낮잠시간에 걸리면 최악이다. 잠투정으로 병원을 왕복하고 진료 보는 내내 내 혼을 쏙 빼놓거나 아니면 자는 아기를 깨워 가느라 하루에 2번뿐인 휴식을 날려버릴 수 있으므로. 그래도 요즘은 낮잠 텀이 길어져서 어느 정도 재우지 않고도 병원 대기 순서에 맞게 기다렸다가 갈 수 있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중이염으로 고생한 덕에 병원 접수 프로가 된 나는 이제 진료 보기 10분 전쯤 도착하여 여유롭게 아기 이름을 대고, 체온과 몸무게를 잰뒤 아기를 안고 주변 구경을 시키며 여유롭게 병원 방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아기도 병원은 이제 일상이 되어 진료 보는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는 여유로움을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담당의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의 모습은 여전히 약간 불안하고 초조하다. "중이염이 이제 어느 정도인가요?" "이번엔 뭐 때문에 오래갈까요?" "항생제 때문에 자꾸 설사를 하는데 유산균 처방해주실 수 있나요?" "이 정도면 귀에 통증은 있을까요?" 등등 3분 정도의 짧은 진료시간 내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고 다음에는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이번 중이염은 지난번처럼 각종 부작용으로 고생하진 않았지만 아기가 몸이 많이 힘들었는지 짜증이 늘고 울음이 많아졌다. 게다가 600은 거뜬히 먹던 수유량이 반토막 나고 이유식은 몇 번 받아먹으면 안 먹겠다며 식탁의자를 벗어나려고 온몸을 비틀어서 하루 여섯 번 먹는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다음 텀이 두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결국 하루 종일 안아달라는 아기를 돌보느라 몇 달간 발길을 끊었던 물리치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가 아프고 날도 많이 추워져서 외출을 가기 어려우니 집안에서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하느라 무언가를 할 짬도 나지 않는 게 너무 고됐다.


아기는 이번엔 무엇 때문에 아팠을까? 다른 사람이랑 특별히 차이 나게 키우진 않는 것 같은데 병치레가 잦았던 날 닮아서일까? 어릴 때부터 귀에 염증이 잘 생겼다는 남편을 닮아서일까? 우리 집 온습도가 아기에게 잘 안 맞았나? 일교차가 큰 날씨라 아기가 적응하느라 그런 거였을까? 최근 1주 간격으로 양가 어른들을 보고 왔는데 그게 많이 고됐을까? 산책을 너무 자주해서였을까? 아기가 요즘 엉덩이 씻기거나 목욕한 뒤에 로션 안 바르려고 도망 다녔을 때 한기가 들었나? 이리저리 고민해봐도 사실 명확한 답을 찾을 순 없다. 그저 비교적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한 게 다행이다 위안 삼을 뿐이다.


그래도 어제부터 몸이 훨씬 가벼워졌는지 아기가 밤잠도 낮잠도 충분히 자고 수유량과 이유식 양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전보다 짜증이나 우는 횟수가 줄고 움직임이 활발해진 게 느껴진다. 특히 식욕이 많이 돌아왔는지 금세 배고파해서 간식도 먹이고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곤 한다. 약 3주간의 중이염 전쟁이 슬슬 마무리가 되는 듯하다. 아기야 우리 이번 중이염 재발 없이 잘 낫고 긴긴 겨울 건강하게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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