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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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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May 07. 2023

27. 복직 그리고 다시 휴직

벌써 5월이다. 그동안 아기는 참 많이 컸다. 우선 만 14개월에 가까워서야 걸음마를 시작했다. 조금 느린 편이라 걱정했는데 요즘은 거의 뛰어다니는 수준이다. 활동량이 많아지니 금세 배가 고픈가 보다. 먹는 양도 많이 늘었고 식욕도 꽤나 왕성해졌다. 아직 10kg은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살이 제법 올랐다. 감정표현이 다양해지고 수용언어가 늘면서 앉아, 일어서, 누워, 기저귀 갈자, 기저귀 버리자, 코 자자, 맘마 먹자, 간식 먹자, 응가 씻자, 목욕하자 같은 다양한 말을 알아듣고 행동으로 옮길 줄 안다.


아기가 크는 동안 나의 삶도 두 번 바뀌었다. 3월에 복직했고 5월에 다시 육아 휴직을 했다. 임신을 했을 때도 느꼈지만 직장은 내 건강과 달라진 삶은 상관없이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요구했다. 그게 그들 눈엔 공정이었을까? 인사 또한 엉망진창이었다. 휴직 전 직장에서 받아야 할 보직 점수를 의도적으로 누락했고 그 사실을 인사결정 후에 통보받았다. 급기야 5월에는 원치 않는 직무로, 내 동의나 제대로 된 규정 없이 인사이동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휴직을 들어갈 것인지 결정하라고 통보받았다.


나는 원래 갈등에 직면하는 성격이다. 부러지면 부러졌지 나서서 돌아가거나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기엄마로서 내 삶은 조금 달랐다. 막 돌이 지난 아기는 쉴 새 없이 아팠다. 남편은 잦은 출장을 가는 직장이고 양가의 지원은 바랄 수 없어서 나는 백업인력 없이 이 상황을 버텨야 했다. 그러려면 근무의 유연함이 필요했고 직장 내 다른 동료들의 용인이 필요했다. 직장 역시 내가 부재하면 백업이 필요하니깐. 이런 상황에서 내가 처한 부당함을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부당한 인사이동 명령을 통보받았을 때는 복직하고 난 1개월 반의 시간 동안 충분히 지쳐있었다. 내가 아기엄마가 아니었다면 맞서 싸울 만한 일이었지만 아기를 키우며 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관리자들과 싸우기까지 하기가 막막했다. 나는 이게 실질적인 정리해고와 같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힘을 소진하고 다시 휴직을 냈다,


휴직 통보를 하고 바로 다음 주에 아기가 수족구에 걸렸다. 다행히 가볍게 지나간 덕에 아기가 크게 고생을 하지는 않았지만 법정전염병이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갈 수 없었다. 남편은 출장이었고 일주일 내내 집안에 갇혀서 아기와 나 둘이 함께 있었다. 만약 휴직을 내지 않았다면 또 동동거리며 살았겠지.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내 휴직을 반기는 눈치였다. 하나는 복직을 하며 독박육아를 도와줄 시터를 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시터비를 뺀 내 수입이 많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내가 복직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안 아픈 날이 없었던 아기를 상시적으로 내가 돌볼 수 있게 되면서 남편이 직장에서 이제 눈치 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이런 생각은 어쩌면 합리적이면서도 내 자존심엔 크게 상처였다. 잦은 출장으로 내가 동동거리는 동안 남편은 그 출장으로 나보다 돈을 많이 벌어왔기에 남편의 휴직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임신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고 부당한 인사이동을 당하는 순간에도 남편은 아무 문제 없이 근무하고 승진했다. 내가 이번에 다시 일 년을 쉬면 다음 복직은 어떨까 고민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물론 내가 일을 쉬어도 남편의 월급만으로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데 큰 지장 없는 건 다행인 일일 것이다. 또한 남편은 내 휴직 여부와 관계없이 사적인 시간 전부를 살림과 육아에 보낸다. 그도 최선을 다하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무너진 적이 없고 나는 무너진 것을 세우려다 다시 무너졌다. 아기를 키우는 것 말고 난 나 자신을 위해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쉬고 나서 첫 주는 아기의 수족구 간병으로 보냈다. 두 번째 주는 간병으로 어지럽혀진 집안을 재정비하고 주변에게 내 상황을 알리며 정리를 했다. 이제 다음 주는 뭘 하면 좋을까? 그러고 나면 그다음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시작하려고 하면 또 아기가 아프고 간병하고 그러면 뭔가 또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일단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일은 그동안 아프느라 못했던 아기 돌접종을 하고 열이 날지도 모르니까 장을 봐서 아기 먹을 감자수프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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