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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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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Feb 02. 2023

26. 일상기록-8

2023.2.2.

1월은 어린이집 적응의 달이었다. 첫 주가 끝나고 콧물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미열이 나는 아기를 안고 병원을 간 그 주 일요일부터 더 이상 콧물이 흐르지 않게 된 1월 말까지 중이염과 코감기로 내내 아기에게 항생제를 먹였다. 일주일에 2번씩 똑닥 전쟁을 치러가며 병원을 다녔던 것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2월에 들어서자 드디어 어린이집에서 풀타임으로 있어도 되겠다는 담임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은 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이번주까진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바로 집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래도 나에게 5시간이란 자유가 생긴 거였다. 5시간은 생각보다 짧아서 집안일을 하고 점심을 조금 여유 있게 먹고 그동안 건드리지 못했던 집안의 묵은 때를 빼고 나면 잠깐 동안 운동할 시간도 잊은 채 아기 하원 시간이 다가오곤 한다. 내일은 꼭 운동부터 하고 일정을 시작해야지.




물건을 자꾸 소파 밑이나 티비다이 밑으로 굴린다. 트레이 아래로 굴려 넣기도 한다. 물건을 자기만 아는 데다 숨기려고 하나? 그렇다기엔 자기 손이 닿지 않는 데까지 굴려놓고는 바닥에 엎드려서 그 물건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그래서 내가 짧은 팔을 뻗어 겨우겨우 물건을 구해주면 다시 또르르 굴린 다음 그걸 하염없이 쳐다본다.


종이나 비닐을 보면 쥐어뜯어보고 맛도 본다. 그래서 조용해지면 무슨 사고를 치고 있나 의심해야 한다. 조용히 입을 오물오물하고 있을 때가 제일 무섭다.


요즘 부쩍 침대 위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원래 좋아하긴 했지만 20-30분 정도 놀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엔 부쩍 더 즐긴다. 베개에 얼굴을 비비고 팡팡 치기도 하고 까꿍놀이도 하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기어 다니기도 한다. 전과 달리 막무가내로 침대 밖으로 기어가진 않고 아슬아슬하게 멈춘다. 이제 벗어나면 떨어지는 건 아나보다.


내가 어른과자, 아기과자 넣어놓는 장이 있는데 아기가 자꾸 거기 문을 열고 자기 떡뻥을 꺼내서 나에게 준다. 빨리 열어서 자기 떡뻥을 달라는 거다. 어쩜 이렇게 똑똑하고 사람 같아졌을까. 내가 아기 행동이 안 들리는 척하면 내 발가락 물어버린다. 진짜 똑똑해..





모방 행동이 폭발하고 있다. 입으로 투레질하는 거나 휘파람을 불어주면 안 되는 데 따라 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휘파람 같은 건 자기 생각엔 비슷하게 내려는 것인지 끼약끼약 소리 지르는 걸 보고 나도 깔깔깔 웃었다. 아기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이전부터 빗에 관심을 보여서 가지고 노는 건 종종 봤는데 이제는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똑같이 하려고 한다. 내가 먼저 빗으로 내 머리를 빗고 아기 머리도 빗어준 다음 아기에게 빗을 건네주니 자기도 내 머리에 대보고 자기 머리에 대본 다음 내가 빗에 걸린 머리를 뽑아내는 행동까지 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내가 빗으로 머리 빗고 뭘 하는지 이제까지 자세히 보고 있었구나.




이제는 옹알이가 아니라 말하는 단어에 의미표현까지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아기의 요구를 살짝 무시하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강하게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아기가 보이면 ”아기“라고 말하고 싶어서 ”액 애ㄱ“ 하는 소리를 낸다. 그 단어를 발견한 게 즐거운지 기저귀 포장지 아기를 보고도 포인팅 하며 말하고 약상자를 뒤지다 밴드 포장지에 있는 아기 사진을 보고도 아기라고 말한다. 밴드 포장지는 너무 좋았는지 침대에 가지고 가서 한참 동안 아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 단어의 구분은 잘 되지 않지만 몸짓언어가 많이 늘어서 아기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책을 탁탁 두르리며 읽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본인이 원하는 페이지가 나오면 이게 맞다며 있는 힘껏 소리 지르기도 한다. 위험한 거라고 못 하게 하면 온몸에 힘을 꽉 주면서 “으아! “한다.


알아듣는 단어도 늘어났다. “안아줄까?” 하면 손을 뻗고 “분유”, “맘마”라고 하면 그 둘을 구분해서 먹는 자리로 간다. 노래를 불러주면 어느 장난감에서 나온 노래인지 알고 전원을 켜기도 한다. “박수” “도리도리” “뽀뽀”라고 말하면 내 몸짓 없이도 다 할 줄 안다. 그런데 왜 아직 잼잼은 안 따라 하는 걸까?




소근육 발달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원 스위치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켜고 끄는 걸 알게 됐다. 그걸로 노시부 전원 버튼을 꺼서 코도 못 빼게 하고 컴퓨터 전원 버튼을 켰다 껐다 하기도 한다. 손가락 힘이 그렇게나 늘었다니 놀랍다.


구멍 모양에 맞게 블록을 넣기도 잘한다. 손가락으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가며 맞는 모양을 찾아내더니 이제 쏙쏙 잘 집어넣는다. 정확도가 부족해서 성질을 부리더니 며칠 연습한 끝에 결국엔 성공했다. 끈기가 대단해!


콘센트에 손을 넣지 말라고 산 콘센트 안전 커버도 다 손가락으로 뜯어서 빼낸다. 안전커버… 왜 샀을까? 그냥 날것으로 살기로 했다. 안전커버를 끼우니 그거 빼는 재미에 더 콘센트에 집착하더라.




잡고 걷는데 자유자재다. 걸음마 보조기로 걸으면 장애물들도 샥샥 피하가며 거의 뛰는 수준으로 걷는다. 조금씩 손을 떼고 서있기도 하고 서있다가 스쾃 자세로 아무것도 잡지 않은 채 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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