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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un 21. 2023

입주청소

이사할 집의 입주 시기와 살고 있는 집 전세 계약 사이에 몇 개월이 붕 떠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통상적으로는 몇 개월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월세로 몇 달간 연장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 바로 나처럼 된다.


전세계약 다 끝났으니 무조건 나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남편은 몇 개월간 살 집을 찾아 단기 월세를 알아보러 다녔다. 생각보다 매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요즘 시기엔 세입자가 급한 곳이 종종 있었기에. 다만 아기 어린이집 등하원을 위해 원래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알아보느라 제약이 조금 있었을 뿐.


여차저차 계약을 하고 이삿짐센터를 알아보고 묵은 짐을 비우고 새로 이사 갈 집을 청소하려고 보니 입주청소비가 너무 아까웠다. 반년도 못 살고 갈 집인 데다가 이미 월세, 이사비, 새로 이사 갈 집의 대출금 등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비라도 조금 아껴보자 싶어서 남편과 내가 둘이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집주인은 비어있는 집이니 미리 청소를 해도 된다고 했다.


매물을 알아보면서 이미 느꼈던 거지만 청소를 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 사실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을 더럽게 쓰는구나 하는 점이었다. 오늘의 집이나 인스타 정도는 아니어도 sns에 등장하는 집들은 다 깔끔하던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구나 싶을 정도로. 나는 늘 우리 집이 너저분하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둘러본 집중엔 우리 집이 제일 깨끗했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나는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청소와 빨래를 하던 엄마의 생활습관을 물려받아서 혼자 살 때에도 짐도 없고 청소도 깨끗하게 해 두는 집에 살았다. 그에 비해 지나가는 자리마다 흔적을 남기는 남편과 아기랑 살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들은 참 양호한 편이었군요.


어쨌든 그중 그나마 깨끗한 집을 골라 간 거였는데도 묵은 때들이 많고 특히 화장실과 부엌은 아기를 위해서라도 위생을 포기할 수 없어서 박박 닦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청소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구나. 어쩜 이렇게 체력적으로 진이 쭉쭉 빠지는 일을 하루 만에 끝내는 것인지. 남편과 온몸이 젖어가면서 일을 했는데도 깨끗하기보다는 살만한 정도를 갖추는 게 참 어려웠다.


그렇게 청소를 끝내고 집을 쭉 둘러보니 내가 남편과 함께 땀 흘린 그 자리가 어찌나 뿌듯하던지. 문득 근 두 달간 집 알아보고 계약하고 우리 두 손으로 집을 청소한 이 순간들이 이 자리에서 마무리되며 우리 둘이 함께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없어서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우리 첫 집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새 집 이사를 하도 또 새 곳에서 같이 시작하려고 하는구나. 우리 참 열심히 살고 애썼다 그렇지, 하는 느낌으로. 우리 또 하나를 같이 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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