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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ul 10. 2023

구질구질

근 한두 달간 너무나도 바빴다. 이사를 알아보고 묵은 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고 어수선한 집안을 정리했다. 우리 부부는 있는 힘껏 힘을 끌어모았다. 그동안 아기는 염증 파티를 했다. 중이염, 구내염, 편도선염, 염염염... 아기가 옮아온 병을 나도 함께 했다. 지난달 초부터 죽을 듯이 기침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기침이 낫질 않는다. 병원 가기도 포기했다. 약 먹어봐야 잠만 오더라. 그러고 나니 나는 살이 훅 쪘고, 남편과 아기는 살이 훅 빠졌다. 알 수 없는 인체의 신비. 같이 잠 설치고 끼니 제때 못 챙기고 운동도 제대로 못 했는데 한쪽은 살이 찌고 한쪽은 살이 빠지다니. 어쨌든 우리 가족 셋 다 건강을 잃은 상태다.




다시 월요일이 왔다. 월요일 똑닥팅에 성공해서 오전 9시 전에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기를 등원시켰다. 분명 병원에서는 거의 다 나았다고 이번에 주는 항생제 3일 치만 먹으면 끝이라고 했는데 아기는 컨디션이 영 아니었는지 처음으로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엉엉 울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지난주에 열 나서 며칠 등원을 못 하고 주말을 지나는 동안 이사하느라 집안은 난장판이요, 나 또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잠도 제대로 못 잔 거지꼴이었다. 6시간의 자유만이 살 길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빨래를 돌리고 기절하듯이 잠에 빠졌다. 식욕도 없었다. 오전 내내 잠을 자고 일어나서 그다음 빨래를 돌리고 난장판 된 물건들을 제자리에 넣고 청소를 했다. 그제야 옥수수 두 개를 삶아 먹었다. 마지막 빨래가 건조기에 다 돌고 정리하고 나니 아기 하원시간이었다. 다시 아기를 데리러 가고 집에 오는 길에 빵집과 마트에 들러 식빵과 우유를 사 왔다. 요즘 자기주장이 강해진 아기가 중간에 카시트 거부하느라 진땀을 빼고 사면 안 되는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걸 간식으로 살살 달래가면서. 집에 다 와서는 다시 나가자는 아기와 다시 눈물의 실랑이를 벌이면서.


그렇게 진을 빼고도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아기 저녁 먹이기였다. 나는 하루 중 아기 식사시간이 제일 스트레스받고 힘든 시간이다. 울고 실랑이하고 뒤집어지고 소리 지르고 드러눕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건 그냥 내가 견디면 지나가는 일이니까. 그런데 식사는 이 시기의 아기에게 생존과 성장의 문제다. 신생아 때부터 양 적고 입 짧은 건 지금까지도 매일매일 나를 곤두서게 만든다. 간식을 아예 끊어도 보고 식사텀을 길게도 잡아보고 식단을 매 끼니마다 바꿔도 보고 별짓을 다했는데 잘 안 먹는다. 그리고 식사 때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면 안 먹는다. 조금 몸무게가 찔만하면 다시 금식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배가 금세 고파서 어마어마하게 짜증을 낸다. 17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10kg의 벽을 못 넘었다. 8개월째 몸무게가 그대로다. 오늘도 전날 남편이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반도 안 먹었다. 기운이 빠져서 나는 대충 간장계란밥을 해 먹었다. 


아기를 재우 고나니 어마어마한 두통이 찾아왔다. 아마도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 게 두통으로 왔나 보다. 요즘 아기가 새벽 4시만 되면 어마어마하게 운다.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몇 달에 한 번씩 자다 깨서 우는 일들이 있었다. 몸 어딘가가 나빠서는 아닌 것 같고 이것도 크는 과정 중 하나겠지. 그렇게 이해는 하는데 몸은 그게 아닌가 보다. 안 그래도 기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지 꽤 됐는데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매일 새벽마다 잠에서 깨니 삶의 질이 훅 떨어진다.




오늘은 저녁 집안일할 것도 딱히 없고 남편이 출장 가기 전에 반찬을 잔뜩 만들어둔 덕에 내 일치 아기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데 기분이 가라앉는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육아 블로그엔 아기 성장이 너무 기쁘고 사랑스럽고 행복하다는데 그 사진들을 괜히 봤나 보다. 나는 오늘 너무 지치고 벅차고 휴식이 필요한 데다 내 삶의 대부분의 장면은 오늘처럼 구질구질하니 남의 행복을 볼 여력이 없다. 사진 속 언뜻 비친 깔끔한 집 풍경과 정리를 포기한 우리 집 거실풍경이 대비되면서 와 정말 사는 거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아, 그래서 내가 요즘 sns를 잘 안 하고 주변과 연락도 잘 안 하고 바쁘게 살았는데. 맨날 비교하지 말고 살자면서 숨쉴 틈만 나면 비교한다!


이사 온 집은 사실 크게 나쁜 건 없는데 겨우 넉 달 남짓 살고 갈 집이라 그런지 이 집에 맞게 구입한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더 어수선하다. 구축이라 그런지 같은 평수여도 지난번 집보다 더 넓고 앞에 논두렁도 탁 트이게 보여서 좋은 점도 있다. 반면에 치명적 단점은 주차선이 좁고 이중주차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복작복작하다. 이 집에 잠깐 놀러 온 동생 말로는 약간 할머니집 같아서 편하고 잠이 잘 온다는데 난 그 할머니스러움이 왜 그렇게 구질구질해 보이는 걸까. 


이런 날은 어서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자야 한다. 내일 아기 어린이집 보내고 이불 빨래를 돌리고 오늘 미처 못 본 장을 보려면 체력도 비축해놔야 한다. 내일은 선물 받은 드립커피도 아침에 커피 향 가득하게 내려놓고 기분이라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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