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도 Aug 24. 2018

열 번째/ 여행의 달콤함을 위하여

이동, 그 머나먼 여정

나 오늘을 위해서 인생 산 거 같아.

푹신한 침대에 누워 가만히 이야기하니 애인이 다 이해된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오늘은 그럴만한 하루였다.


오후 비행기를 타면 넉넉히 출발할 수는 있겠지만 그날 하루는 이동 이외엔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잡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당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전날까지 근무를 다 마치고 나면 잘 틈도 없이 준비해야한다는 걸. 이동을 하기위한 난관이 여러 개였다.


처음에는 공항 리무진을 예약하려고 했다. 다행히 작은 도시지만 공항 리무진은 다니는데 다른 시를 경우해야 한다. 거기까진 참을 수 있지만 퇴근 시간도 되기 전에 리무진이 끊긴다. 약간 일찍 퇴근한다고 해도 우리는 다음날 아침 비행기라 12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하거나 숙소를 잡아야 했다. 기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차는 다행히 퇴근시간 이후에 끊기지만 환승을 최소 두번은 해야했다. 이동시간도 만만치 않지만 역시 대기시간도 길었다.




결국 애인이 차를 운전해서 공항에 가기로 했다. 퇴근하자마자 저녁 먹고 갈 준비를 해서 밤 늦게 출발했다. 여유 시간이 있던 나와 달리 애인은 퇴근해서 쉴 틈도 없었다. 휴게소 들릴 틈도 없이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고나니 1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아직 다섯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두시간 정도 주차장의 차 안에서 눈을 붙였다.


공항 수속을 모두 마치고 면세품까지 찾고나니 새벽 네시 반. 공항은 조용하고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잠이 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조용한 곳 의자에 기대어 그곳의 날씨와 간단한 일정을 검색했다. 비행기와 숙소 이외에는 정해놓지 않은 채 떠나는 여행이라 일정을 정해둔게 없었다. ‘조금이라도 짜 둘걸 그랬나.’ 싶었다. 가면 피로가 몰려올텐데 놀기는 커녕 그대로 뻗어 자는게 아닐까 후회도 됐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탑승을 하고 지연 없이 출발했다. 아주 피곤한 것 빼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비행 시간 동안 할게 없어진 데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하지만 끊임없이 진행되는 안내방송, 불편한 비행기 좌석, 잠자리를 가리는 나에게 비행시간의 쪽잠으론 피로가 풀리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내릴 때쯤 등과 목이 뻐근해서 첫 일정은 마사지로 하는 걸로 만장일치 했을 정도니까.


다행히 도착한 곳은 날씨가 아주 맑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국 수속을 밟는데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수속 직원은 딱 한명. 아침 시간이라 그런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카운터 중 한 개의 카운터를 기다리느라 공항에서 나오기까지 한 시간이나 줄에 서있어야 했다. 로밍을 해두지 않고 유심을 살 거라 스마트폰 중독인 내가 한 시간 동안 폰을 보지 못하는 건 참 고문이었다.


긴긴 이동과 기다림 덕에 드디어 기다리던 여행지 땅을 밟았다. 유심을 사고, 버스를 타고 가 쇼핑몰 구경도 하고, 환전을 한 뒤 점심을 먹었다. 마사지를 받으며 피로도 풀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오후를 보냈다. 선배드에 누워 바다를 구경하고 저녁에는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도 했다. 저녁에 침대맡에서 맥주를 한잔씩 하며 그래도 우리 하루 정말 즐거웠다며 마무리했다. 정말 오늘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했구나 싶었다.




만일 인천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공항에 국제 노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친구들이 가끔 퇴근하고 바로 비행기 타고 해외 갔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생을 덜 했을 텐데. 또는 공항 리무진 운행이 시간대별로 되어 있거나 바로 서울역으로 가는 ktx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운전하는 고생을 안 해도 되고 주차요금을 아낄 수 있었을 거다.


이번에는 해외여행이라 조금 더 고생했을 뿐 국내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경기권 위주의 후기와 여행 상품들, 그리고 교통 사정. 수요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한다. 자본의 논리로만 움직이기엔 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 대중교통이 너무 제한적이다. 나의 경우엔 급한 일은 아니어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이 있을 경우에 같은 길을 가는 주변 지인이 없다면 장거리 택시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겠구나 싶다. 오늘도 조금 씁쓸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아홉 번째/ 타인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