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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7. 2018

열한 번째/ 고양이와 살고 싶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하여

나는 원대한 꿈이 있다. 빵실빵실한 뱃살과 아름다운 치즈무늬를 가진 고양이와 삶을 함께 하고 싶다. 턱시도, 삼색이, 코점이, 고등어 등 이런 귀여운 별명을 가진 고양이 모두 사랑한다. 고양이가 나를 좋아해줄지는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오며가며 마주치는 길식구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 보면(내 착각일수도) 어딘가 묘연이 있지 않을까.



카페에서 마주친 길냥이. 카페 사장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홍차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가 냥이를 만났다. 익숙한 공간인듯 카페에서 우다다하고 소파를 스크레처로 쓰기도 하는 모습이 카페 주인님 같았다. 내 곁에 성큼 다가와서는 몸을 부비다가 나를 엉덩이로 밀치고 누워서는 골골거리며 잠드는 모습까지 파워당당. 그래도 옆에 있어주는 게 어디냐며 행복해하는 나를 보고 사장님께서 이 고양이와의 묘연을 이야기해주셨다. 추운 겨울에 버려진 고양이 형제를 발견했는데 아주 새끼인 데다 심한 눈병에 걸려 동물병원에 데려간 일, 너무 아기여서 가게에서 돌봐준 일, 주변 힘센 냥이들의 영역다툼에서 밀려 가게에서 멀리 나가지 못한 일.. 어떤 이야기는 안타깝고 어떤 이야기는 이 아이를 사랑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듣는 내내 행복했다.


내게도 생각지 못하게 묘연이 생기곤 한다. 한겨울다가와서 야옹거리는 고양이가 있어 캔을 따줬더니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사료를 들고 다니다가 비썩 마른 고양이와 마주치면 사람 안 보이는 길가에 살짝 놓아 두고 갈때, 더운날 지친 고양이에게 물을 챙겨줄 때. 한 동네에 오래 살지 못하는 떠돌이 인간이 가끔 주는 호의에 길냥이들이 도움이 될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해서 하루라도 더 살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의 문을 피해 멀찍이서 보곤 한다.

눈 내리는 날 캔을 따주니 허겁지겁 먹던 길냥이




어떤 날에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포인핸드에 올라오는 사정있는 고양이중 하나와 함께 살아보는 건 어떨까 고민하곤 한다. 내가 가진 몇 조건들은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길아이들을 보며 여유 자금을 모아두기도 했고 직장생활 동안 모아둔 돈도 있잖아. 화장실이 넓고 집에 물건이 많지 않아서 고양이에게 필요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잖아. 직장과 집, 동물병원이 가깝고 난 거의 집에 있잖아.


그러나 곧 그보다도 고민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며 그만두곤 한다. 나는 언제든 집을 옮길 수도 있는 상황이라 반려동물에게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자차가 없어 병원이나 이동을 하게 될 상황이 생기면? 난 동거인이 없는데 갑자기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정말 큰 병에 걸리면 내 경제력으로 아이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나는 고양이와 잘 지낼만한 반려인일까?


반려동물을 키우기에 정말 완벽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한다. 각자의 최선대로 함께하고 있고 사랑으로 함께할 테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거다. 말이 잘 통하는 성인 둘이 함께 살아가는 일도 얼마나 만만치 않은데. 성인이고 독립된 인간은 삶이 맞지 않으면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은 자신이 함께할 인간을 선택할 기회도 거의 없고, 자신의 삶 또는 생명권이 인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 무거운 일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도 고민 뿐이다. 내가 지금보다 더 환경을 갖추고 공부하더라도 살아보기 전엔 모르는 거고, 그 고양이의 입장은 모르는 거고, 평생을 책임지기 전엔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고민을 마무리하고 함께 삶을 살아갈 나날들을 고민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게 몇 년 후가 될지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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