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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9. 2018

열두 번째/ 배고프기 전 챙겨 먹기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는 일의 버거움

퇴근하고 집으로 가기 전,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곤 한다. 무엇을 사먹을 지, 또는 뭘 해먹을지에 따라 퇴근길 향하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유부초밥이 당긴다. 마트에 가서 유부초밥 세트를 살핀다. 모두 4인이 최소 기준이다. 나는 한 번만 먹고 싶은데... 그래도 유통기한이 기니까 더 먹겠지 싶어서 사기로 했다.


집에 와서 봉투를 뜯어보니 4인 세트가 2인씩 나누어져 있었다. 반절만 소분해볼까? 싶었지만 식초 봉투와 유부 속재료 봉투까지 소분하기는 무리였다. 혼자 사는 사람은 먹다 버리라는 뜻인가? 일단 먹어보고 무리면 어쩔 수 없지.


쌀을 씻어 전기 밥솥에 넣고 취사를 눌렀다. 밥이 되는 동안 유부의 물기를 짜고 남은 재료들을 냉장고에 넣고 기다렸다.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밥이 되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배가 고파왔다. 아직 먹으려면 한참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급했다.


밥이 다 됐다는 신호 후 뜸들일 몇분을 기다렸다. 밥을 뒤섞은 뒤 전기 코드를 빼고 밥솥 뚜껑을 연채 조금 김이 빠지기를 다시 기다리는 시간. 배가 많이 고파왔다. 꼬르륵꾸르륵 소리가 거실을 울리는 것 같아 약간 짜증이 났다. 집에 오는 길에 대충 사먹을걸 이게 뭐라고 귀찮게 만들어 먹냐고. 식당 가서 사먹었으면 시간도 줄고 2인분 어떻게 하나 고민하지도 않을텐데. 이런 늦은 후회를 하면서.


초밥에 넣을 속재료를 밥주걱으로 섞고 큰 접시를 꺼냈다. 파스타용 넓고 둥근 접시인데 한 그릇 요리를 담을 때 유용하게 쓰곤 한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유부초밥을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하나씩 집어먹을까 싶기도 했지만 다 완성될때까지 참기로 했다. 식사를 할땐 부엌데기처럼 서서 먹기 싫다. 혼자 먹는 밥이라도 정성스럽게 준비된 걸 먹고 싶다.


보기는 그렇게 예쁘진 않지만 다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그런데 이게 겨우 2인분이라고? 얼마 안 되네. 이걸 두사람이서 먹는건 어린이용이란 뜻인가 싶었다. 이제 많이 허기져서 얼른 자리에 앉았다. 정성스럽게 준비한걸 먹고싶었다면서 먹을 땐 허겁지겁 정신 없었다. 겨우 이거 하나 사서 만드는데 퇴근시간에서 한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그냥 사먹었으면 천천히 먹었을 텐데 맛이 뭔지 느끼기보단 일단 배를 채우는게 급했다.




어쨌든 오늘도 한 끼를 무사히 완료했다. 먹고나서 초밥기름이 묻어나는 설거지는 덤이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는지 중간에 버릴까 말까 했지만 버리는건 뭔가 아까워서 다 먹어치웠다. 어릴 때 엄마가 남은 음식들 아까워하시면서 배부른 데도 다 드시는게 싫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 너무 급하게, 많이 먹었는지 배가 더부룩하고 조금 체한 느낌도 든다. 뭘 거창한걸 해먹는다고 부산을 떨었을까. 다음엔 그냥 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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