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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Sep 02. 2018

열세 번째/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생리, 생리통에 관한 Q&A

두통요통복통가슴통증복부팽만어지러움메스꺼움울렁거림


모두 생리 전 나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처음엔 요통부터 시작해서 슬슬 낌새가 이상해진다. 저 증상들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다가 철분제와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을 때쯤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 지금 이짓도 거의 일주일째라고!! 그러다 뱃속이 부글부글해져서 화장실에 가면 드디어 붉은 피가 맺히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고통이 끝난 건 아니다. 피가 보인다는 건 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서막일 뿐이다. 소화도 안 되서 죽으로 연명하기 시작한다. 그나마라도 안 먹으면 황천길 익스프레스 타는 길이니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정말 심한 날에는 병원 가서 진통제 주사 한대 맞고 온다. 물론 한결 낫다 뿐이지 정신이 핑핑 도는 건 똑같다.


귀찮은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나는 생리를 시작한 첫 3일이 가장 피가 많이 나온다. 밑이 빠지는 느낌은 여자들만 안다지. 여자들이라도 이걸 모르는 사람은 평생 몰랐으면 좋겠다. 허리 아래가 없어진 느낌으로 시시때때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한다. 물론 잠도 제대로 못잔다. 기저귀 타입 생리대가 나온게 얼마나 구세주인지. 생리대를 두겹씩 끼워도 어떻게든 새서 침대 시트를 갈아대는 고통을 겪지 않게 해줬으니. 그렇게 고통의 3일을 겪고나면 통증이 훨씬 나아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그 이후로도 4-5일간은 피가 계속 비친다. 이번엔 일찍 끝나겠지? 하고 방심했다간 직장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생리대가 잘 안 맞는 경우엔 생식기가 짓무르는 고통까지 동반하거나 막판에 질염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부터 열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런 고통을 이야기 하면 모두들 앞다투어 한 마디씩 보탠다.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질문들도 많았다. 내가 혹시 이런 건 빼먹었을까봐 궁금한걸까 싶은 이야기들. 그러나 생리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았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원은 가 보았나?

물론이다. 초경부터 지금까지 고통스러웠는데 안 가본게 이상하다. 동네부터 전국 방방곳곳 유명한 산부인과 한의원, 좋다는 민간요법 다 해봤다. 내가 초경 이후로 지금까지 15년인데 내 몸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나는 매우 고통스러운데.


생리대를 바꿔 보는 건?

탐폰은 쇼크가 있다. 면생리대는 한시간마다 직장에서 그걸 갈아끼워야 하는 내게 고통 얹어주기 같은 짓이다. 생리컵도 마찬가지다. 나**** 브랜드가 그나마 나에겐 가장 편안하다.


환경호르몬의 영향일까?

글쎄. 식습관이나 생활습관, 물건은 이것 때문에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효과를 본 적은 없다.


진통제는 몸에 좋지 않으니 지양해보는 건?

나는 이미 내 고통의 임계점을 여러 번 넘었다. 이와중에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도 하려면 진통을 줄이는 건 필수다. 내가 전문가와 상의하여 충분히 고민한 문제이니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피임약을 먹어보는 건?

이미 도전해본 문제다. 확실히 고통은 줄었으나 식욕 및 감정조절, 체중의 급속한 증가, 불면, 우울감 등의 문제가 심화되어 중단했다. 물론 시중에 나온 의약품들 처방약 모두 포함이다.


아이를 낳으면 나을 수도 있다던데?

그거야 말로 도움 안 되는 소리다.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이니 자기 몫을 잘 해야 한다는 압박도 늘 존재한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스스로를 잘 지켜내야 한다. 삶은 투쟁이다. 내겐 나약해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직장에서 집중은 잘 되나?

당연히 될 리가 있나. 하지만 직업 생활은 해야하니 아등바등 약먹으면서 버틴다. 다행히 직장 동료 대부분이 여성이라 고통을 공감해준다. 아, 진통제는 산부인과 처방약이 최고다. 내 집중의 팔할은 진통제가 책임진다.


생리휴가는?

존재는 한다. 단, 무급으로. 사실 그나마도 눈치보여 쓰기 어렵다. 나는 내 직장에서 생리휴가를 쓴 사례를 본 적이 없다. 아무도 쓰지 않았다고 하면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딱 한 번 써본 적이 있으나 월급이 깎이니 쓰지 말라고 권하더라.


그렇다면 병가나 반차, 연차 등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핑 돌아서 도저히 움직이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못 간다. 억지로 가본 적이 있는데 온몸이 후들거려서 출근하자 마자 바로 휴가내고 병원에 갔다.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은 더 말하지 않고 날 보내줬다. 그런 날은 진통제 맞고 누워있는다. 정말 끔찍하고 비참하다. 매번 나의 상태를 다시 설명하고 왜 나아지지 않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대야하는 과정도 지친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프고 힘이 드는지 나도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건 불충분한 이유다.


중요한 일이 있는 날에 생리가 겹치면?

피임약을 먹는다. 생계와 관련이 있다면. 부작용을 알고 있지만 차악을 선택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적인 약속은 미루거나 취소한다. 갈 수 있으면 가지만 나를 경험해본 사람이면 그런 내가 방해만 되는 것 잘 알고 있다.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1순위는 병원이다. 친구나 지인, 가족도 모두 생계가 있으니 스스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가끔 아주 힘들 때는 학생인 동생이나 직장의 유동성이 있는 엄마의 도움을 받는다. 퇴근 이후의 시간에는 애인이 가장 큰 정서적 실질적 조력자다.



아무래도 이번 생리는 아마 대단한 녀석일 것 같다. 지금 예정일을 3일이나 넘겨 날 이렇게 지치게 만들어놓고도 할듯말듯 애를 태운다. 생리를 하는 건 끔찍하지만 안 하는 건 고통의 연장일 뿐이다. 해도 싫고 안 해도 싫다. 내 몸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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