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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Sep 05. 2018

열네 번째/ 결혼, 당장 말해줘야 하나요?

선택도 필수도 아닌 것

그 사람이랑 결혼 할 거야?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다만 사람들이 나를 어떤 방식으로 제한하느냐의 문제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그 사람이랑 얼마나 됐어?

결혼 생각은 있고?

지금부터 일년쯤 만나면 되겠네.

뭘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해? 인생 금방이야.

ㅇㅇ 알지? 걔도 여유부리다가 지금 결혼하고 싶다고 난리야.

애도 낳아야 하는데 지금 많이 남은거 아니야.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적해야할까. 소위 ‘결혼 적령기’ 여성인 나는 결혼에 관한 수없이 많은 관심에 노출되어 있다. 내가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지는지, 내가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내가 정서적•사회적•경제적으로 독립이 된 인간인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나이’ 뿐이다. 하긴 위아래를 따지는 문화에서 나이별 생애주기가 빠지면 아쉽지.


사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른 인간은 아니다. 어느정도 “나이가 찬” 경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주변 인간의 모습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았던 친구와도 만나면 결혼 이야기를 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상대와 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하고 싶은지, 아이는 낳고 싶은지 등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 하고나면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의 경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거 지금 당장 진지하게 생각해야해?

이렇게 이야기 하면 대부분 “그러게. 아직 먼 이야기지.”하고 넘어가곤 한다.(언제 가까워 올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아직 결혼한 친구가 한 명 뿐이다. 그래서 더욱 먼 이야기 같이 느껴질 수도.




내 가족들도 내 결혼 문제가 핫토픽인 것 같다. 엄마는 단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던 내 사주를 봐야겠다고 한다. 아빠는 손주가 보고 싶단다. 동생은 부모님의 저런 반응을 진저리친다. 엄마에겐 내 결혼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내게 돈주고 물어보라고 했다. 여성에게 결혼, 출산, 육아가 뭔지도 모르는 아빠와 싸우느니 대답을 안 하는 게 낫다. 동생이나마 숨통이 터서 다행이다. 나는 왜 가족에게 결혼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독립적인 성인이다. 내가 내 삶을 알아서 잘 꾸려왔다. 굳이 뭔가를 더하거나 빼지 않아도 혼자인 내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결혼을 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해야할 부분이지 가족에게 효도할 부분도, 남이 말을 얹어줄 부분도 아니다. 내가 결혼할 마음이 생기면 할 수도 있고, 안 생기면 안 생기는 대로 사는 거다. 그것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할 시기가 생긴단거 자체가 내겐 징그럽다. 내가 내 삶의 방식을 유동적으로 바꿔 살고 안 되면 말겠다는데 왜 그걸 하루빨리 결정해서 널리 알려야 할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소위 하자(?)가 있다는 말도 우습다. 결혼에 그렇게 공포장치를 달아 조급함이 들어 하게 만드는 건 오히려 나를 더 의심하게 만든다. 결혼이 좋다면 하고 싶게 만들어야지 “안 하는 니가 모자란거!” 라고 말하는 건 생떼에 가깝다. 더군다나 우리는 수많은 어른들을 보고 자랐다. 인성은 결혼과 관계 없다는 수많은 샘플이 있었던 거다. 오히려 그런 폭력적인 언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배제하고 억압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너는 결혼할지도 모르니까.” 라는 말로 나의 삶을 제한하는 공격을 퍼붓곤 하는 거다.


뭐 하러 그런걸 사. 나중에 혼수로나 장만해.

나중에 남편 있을 때 해봐.

그런건 아가씨가 하는 거 아니야.

혼자 밥도 못 차려먹어서 나중에 결혼하면 남편밥 어떡하려고?

이런 말도 잘 못 넘기면 시어머니랑 지내기 힘들겠네.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나는 나중에 할지 안 할지 모르는 결혼을 위해 현재의 안락함과 편리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남편 있어야 할수 있는 건 한국 땅에선 혼인 신고서 정도 아닐까. 내가 어떤 상태이던지 비혼 여자라고 못할 건 뭘까. 혼자 밥도 안 차려 먹는데 남편 밥까지 고민할 문제일까. 지금 나에게 하는 무례한 말은 상대가 바뀐대도 무례하다.


이제 몇년이 지나면 이 사람들의 ‘조언’은 힐난이 될 것을 내 주변 무수한 비혼자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 순간이 되면 그들처럼 웃어 넘기거나 화제를 피하는 방식으로 내 에너지를 줄이게 될까? 아니면 지금처럼 똥씹은 얼굴로 대답하다 “그러니 결혼을 못하지.” 소리나 듣고 있을까.




오늘도 모두들 나에게 결혼하라고 난리다. 결혼 안 하고 사는 이유를 저들끼리 분석하고 무슨 문제든 갖다 붙이려고 한다. 나는 그들이 삶의 방향은 한 개라고 생각하는 게 더 신기하다. 가보지 않은 길 굳이 안 가봐도 궁금하지 않다. 한 가지 길을 가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 개개인을 향한 공격을 개개인이 싸워서 감내해야 한다는게 부당하다고 느낄 뿐이다.


p.s.

그리고 왜 브런치 키워드에 비혼은 없는 걸까. 키워드 설정할 때마다 내가 설정할 단어가 없어서 화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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