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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Oct 15. 2018

21. 집밥과 외식 사이에서

언니네 텃밭 꾸러미 받아보기

집밥을 해 먹는 건 고되다. 하지만 외식만으로 내 배를 채우기엔 어느 순간 내 위장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진다. 결국 가뭄에 콩 나듯 집에서 끼니를 챙겨 먹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막상 끼니를 챙겨 먹으려 해도 뭘 사먹어야 할지 막막하다. 집밥을 먹는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더 쉽게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요즘 식재료 배달 서비스가 많다는데 그중 하나를 이용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찾게 된게 바로 언니네 텃밭이다.


언니네 텃밭 홈페이지 화면

언니네 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운영하는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다. 처음에 언니네라고 해서 젊은 농민인 줄 알았는데 공동체 사진을 보고 나니 내공있는 언니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았다. 각 공동체마다 공동체를 꾸리게 된 이야기가 쓰여 있고 주마다 어떤 식재료를 보내주는지 볼 수 있다.




이곳에 가입하고 꾸러미를 받아보려면 사실 다른 사이트보다 넘어야 할 산이 높은 편이다. 일단 꾸러미를 신청하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다.

1. 홈페이지 가입
2. cms 동의서 작성하여 출력, 자필사인 등
3. 팩스 또는 이메일로 cms 동의서 작성
4. 꾸러미 신청
5. cms 동의서 확인 2주 뒤부터 꾸러미 시작


다른 정기배송 사이트보다 복잡한 절차가 많아 내가 꾸러미를 받아본단 사실을 잊을 때쯤 연락이 오는 것 같다. 그리고 배송 받고싶은 공동체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가까운 지역 또는 배정이 필요한 지역부터 우선 배정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첫 꾸러미를 받아보려면 가입비 2만원과 6주 분의 꾸러미를 선불 지급해야 한다. 한살림, 초록마을과 같은 협동조합의 시스템과 약간 비슷한 점들이 있다. 협동조합의 운영비와 생산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인 거다.


이런 모든 불편에도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이 곳의 운영 방향성이 나와 맞기 때문이다. 우선 농민들이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고 공동체 생산으로 소규모 여성 농업인들이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지속가능한 생태 농업을 한다는 점도 좋았다.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농산물을 제공한다는 점, 꾸러미 배송은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운 곳을 우선 배정한단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운영을 하기 위해서 소비자가 생산자를 믿어야 한다. 매 주마다 신선하고 좋은 먹거리를 제공할 거고 주어진 재료대로 먹어야 한다는 믿음. 나 같은 경우는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 줄어드는 점이 오히려 편안했다. 그리고 한 가지씩은 간식 거리를 끼워 주는 부분이 가장 혹했다.


사실 받아보기까지는 난관이 있었다. 일단 cms 동의서를 보냈었는데 어딘가 누락이 됐던 건지 처리되는데 이주가 넘게 소요됐다. 그리고 나는 1인 꾸러미를 선택했는데 1인 꾸러미는 제공하는 공동체가 얼마 없어서 머나먼 경북 상주 공동체가 배정됐다. 심지어 나는 1,3주 격주 신청이었는데 처리 과정이 지나치게 많이 미뤄지면서 2,4주차로 배송 주차가 바뀌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달 만에 첫 꾸러미를 받아보았는데 마침 겹쳐진 추석 연휴 때문에 식재료 택배도 제때 오지 않았다. 다 녹아버린 아이스팩을 보고 얼마나 불안했던지. 식재료 상태는 무사했지만 순간 지금이라도 고객센터에 전화해 취소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 받은 꾸러미 안 식재료들

하지만 정기 배송을 끊지 않은 건 순전히 첫 배송날의 느낌 때문이었다. 이날 배송 온 건 계란, 두부, 햅쌀, 밤, 열무, 간장, 식혜, 콩나물이었다. 특히 집간장과 직접 만든 식혜라니! 이번 간식은 식혜로구나.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날 저녁 마셔보니 달고 행복했다. 넉넉히 들어 있는 식혜 속 쌀밥도 만족스러웠다.

 

애인이 꾸러미로 콩나물 밥, 콩나물 국, 간장양념을 해준 날
두부와 열무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콩나물 밥에 계란을 올려 먹은 날이다.

꾸러미가 배송 오면 텃밭의 언니들이 이 농산물은 어느 분이 키우거나 채취해오셨고, 어떻게 해먹으면 맛있는지 안내가 적혀 있다. 나는 열무를 김치를 해 먹으라고 쓰여있믄 안내에 사실 많이 난감했었다. 그러나 이럴 때는 열무 요리를 검색해보면 됐다. 아 된장찌개에 열무를 넣으면 맛있구나! 이렇게 처음으로 도전해본 요리도 있었다. 어떤 날은 애인 덕에 콩나물 밥을 먹어보기도 했다. 그러곤 남은 콩나물로 처음 집에서 콩나물밥을 해본 날, 꾸러미에서 배송 온 식재료로 해먹은 간장계란 콩나물밥도 참 꿀맛이었다.



배송온 고추장, 간장, 떡, 양파, 파, 계란으로 만든 떡볶이

두 번째 배송의 주제는 떡볶이였다. 지난 배송에서 받은 간장, 이번 배송에서 받은 고추장, 떡, 양파, 계란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햅쌀로 지은 쌀떡이라 그런지 쫄깃하고 식재료가 주는 건강한 맛이 좋았다. 이번에는 김치도 두 종류나 와서 따로 반찬을 사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린 줄기를 골라 직접 담가주신 김치는 참 싱싱해서 좋았다. 사실 김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집에서 해먹긴 부담스럽다. 그런 김치를 해서 주신 점도 참 감사했다.


사실 배송 온 식재료를 가지고 매일 요리를 해 먹기는 어렵다. 집밥을 해 먹는건 늘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어떤 날은 고되기도 하고. 그래서 여전히 내 주된 식생활은 외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2주에 두어끼 정도는 받은 식재료로 요리하고, 햇밤을 삶아두고 간식으로 먹는 일은 즐겁다. 시간이 넉넉한 주말 또는 힘이 조금 남아도는 칼퇴한 저녁 즈음은 요리하기 좋은 타이밍이기도 하다.




아직 두 번 밖에 못 받아보긴 했지만, 배송이 오는 주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어떤 재료로 무엇이 오게 될까 기대된다. 이번 주엔 무엇을 보내주시는지 문자를 받아볼 때면 며칠 전부터 뭘 해먹을까 설레기도 하고. 이번엔 애인이 요리사였다. 떡볶이를 하고 남은 식재료로 계란 프라이를 굽고, 고추장 양념을 양파와 함께 졸여 두부 조림을 해주었다. 집에 있던 오이로 오이지를 해두고 김치 두 종류까지 꺼내니 가정집 백반 같아 행복했다. 주말, 따뜻한 밥을 함께할 수 있게 해준 언니들과 애인에게 감사한 오후였다. 이런 평화로운 날이 앞으로도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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