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도 Nov 18. 2018

모멸감에 대하여

언제까지 견뎌야 하나요.

시작은 할머니의 생신 때문이었다. 명절에 집에 가지 않은 나는 ‘유구한 가부장제의 도리상’ 할머니의 생신에는 꼭 참석해야했다. 일주일 전에 케이크를 주문 예약하고 당일날 준비해 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어떻게 이 역할이 나에게 왔는지는 알수 없지만 이정도는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어머니인 할머니에게 특별히 정을 느끼며 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일 나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약속시간을 들었고 당연히 케이크도 그 시간에 맞춰 가져갈 계획이었다. 친척들도 그 시간에 모인다고 들었다. 그런데 두 시간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한시간 일찍 할머니 댁에 들렀다 간다며 나에게 빨리 오라고 했다. 왜 빨리 출발하냐는 나의 말에 엄마는 “일찍 가서 보면 좋지.”라며 웃었고 나는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거야말로 내 알 바가 아니었던 나는 “저는 시간 맞춰 네비 찍고 잘 갈게요.”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그래. 네비도 좋지만 길에 풍경이 좋으니까 ㅇㅇ 지나는 길로 오면 좋겠다.”고 했고 그 사이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저 톤이나 어조로 보아 또 나에게 뭔가 못마땅했겠지. 대충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괜히 이번에 참석한다고 말했나 불길함이 그제서야 들었다.




시간맞춰 음식점에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본 할머니는 내가 아주 오래간만이라며 반가워 하셨다. 또 저기서 나를 지적질하기 시작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속으로 욕을 삼키며 그저 무시했다. 오래간만에 본 동생과 사촌 동생들과 인사하며 음식점에 들어갔더니 예약된 자리에 남은 자리가 하필 아빠 옆이었다. 오늘 또 자리배치는 이모양인지. 그래도 친척들 앞에서 티내기는 뭐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았으니 몇 마디 걸었지만 죄다 무시당했다. 동생은 아빠 원래 그런거 알잖아 하며 웃어넘겼다. 그래 아빠는 늘 본인 듣고싶을 때만 듣는 척 하고 나머지는 안 들리는 척 하니까.


문제는 식사자리의 마무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드시는 다른 분들과 달이 밥만 잘 먹었던 나와 동생은 일찍 먹었고 동생은 마침 서빙된 누룽지를 먹고 싶다고 했다. 테이블은 세개인데 누룽지 뚝배기는 둘. 그리고 아직 어른들은 밥을 드시고 계셔서 내가 떠 준다고 했다. 그때 아빠가 끼어들었다.

“어른들도 퍼 드려.”

명령조였다. 할 수는 있지. 그런데 저따위로 들을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좋은 자리니 참자. “네.” 하고 앞에 있던 친척 어른께 드실 거냐고 여쭤봤다. 엄마와 대화 중이던 그분은 알았다고 한 뒤 내가 드린 누룽지를 드시던 밥 옆에 밀어 넣었다. 다른 어른들에게도 물어보던 차였다.

“겨우 그거만큼 줘서 뭐하냐 네등분 해야지.”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에만 다섯명이 앉아있는데 네등분? 그럼 누굴 빼고 말한건지 알만했다. 이번엔 대답을 하진 않았다. 속으로 동생에게 누룽지를 퍼준다고 말했던 내 오지랖을 욕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삭이고 두번째 그릇을 퍼냈다.

“네 등분으로 잘 퍼라.”

식빵. 더이상 못 해먹겠다. 국자를 내려 놓았다.

“그러면 아빠가 해요.”

“뭐?”

“알아서 할건데 왜 자꾸 그래요? 난 안해.”


나는 그냥 모른척을 했다. 내 테이블에는 다섯, 남은 사람은 셋. 내 앞에는 모르는 어른이 한분 계셨고 누룽지를 먹고싶어했다가 그 상황에서 뻘쭘해진 동생도 있었지만 그냥 모른척 했다. 아빠는 그 화살을 엄마에게 돌렸다. 아빠 테이블에 앉아있던 엄마에게 누룽지좀 나눠주라고 한 거다. 가부장의 전형적인 손도 없고 입만 있는 꼴에 속이 뒤틀렸다. 양쪽에 앉은 여자 어른들과 이야기 하던 엄마는 어리둥절 했고 분이 안 풀린 아빠는 내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 나한테 소리질렀냐.”

“네?”

“어디서 어른들 있는데서 소리를 질러.”

“저 소리 안 질렀는데요?”

“소리 쳤잖아. 어디 감히 어른들 다 있는데서 소리를 질러.”

순간적으로 나는 수십 가지의 고민을 했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한대 맞을까. 그냥 벌떡 일어나서 가버릴까. 그냥 참을까.




내 안의 마지막 착한 아이가 승리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빠를 노려봤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이 썩은 분위기를 다른 어른이 서둘러 돌렸다. 모두 이걸 목격했지만 오늘도 모두가 외면했다. 늘 그랬듯이. 그렇게 평화를 되찾은 가족은 할머니 댁에 가서 생일 축하를 하고 하하호호 웃었다.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버티다 아직 초보운전이라 밤길이 무섭다며 먼저 집으로 출발했다. 이미 해가 다 진 마당에 변명거리도 안 되는 변명이지만 어른들은 어서 가라며 나를 보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동생도 함께 내 집으로 데려갔다.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운전을 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나의 얼굴은 마침 집 앞에 찾아온 애인을 보자마자 무너졌다. 분노, 모멸감, 좌절 모든게 뒤섞여서 한참을 울었다. 이제 어린 시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나에게 강압적이고 무례한 아빠.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힌 무력한 나. 그 자리를 뛰쳐 나오지 못했던 결정에 대한 후회. 그 자리에서 방관하는 나의 가족들과 친척들. 모든 순간들이 최악이었다.


내가 거기에서 끝까지 싸웠다면 어땠을까? 내 속이라도 시원했을까. 나는 왜 그 순간에 싸우지 못했을까? 오히려 내 입과 몸은 그렇게 굳어버렸던게 너무 멍청해보였어. 나는 왜 그렇게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속으로 두려워했을까? 그 순간에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다면 그 순간에 나의 입장은 조금 더 달라졌을까? 정말 아빠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뒤섞인 모든 감정들이 내 속에서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울음을 그치고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동생과도 이야기를 했다. 동생의 이야기는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나와 다른 부분도 많았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나와 동생이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길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많고 그걸 동생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는 이미 실패했다. 그날 나는 아주 지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꿈에서는 다시 그 장면이 나왔다. 뒤죽박죽이었고 나의 희망대로 풀리는 장면도 그렇지 않고 고통스러운 부분도 있던 것 같다. 다시 눈을 뜨니 더 피로해진 느낌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눈물이 난다. 나는 아빠가 나에게 명령하던 순간 어린 시절 아빠가 나에게 협박을 하던 순간들이 떠올라 거부감이 들었다. 나에게 소리 지르고 모두가 숨죽이던 그 순간에는 모멸감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처럼 모두가 아빠 눈치만 보고 상황을 외면하던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화가 정당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순간들도 고통스러웠다. 내가 나를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어린 시절의 나와 겹쳐보여 좌절감이 들었다. 그 때로 돌아가 움츠렸던 내 자신과 겹쳐 보이는 게 화도 났다.


나는 언제나 그 시절 아이에게 다 괜찮다고, 이제는 강한 어른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건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괜찮지도 않았고 관계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다. 내가 두려움에서 벗어난 건 아빠가 나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빠에게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다. 아빠가 참을 때만 유지되는 평화도 필요 없다. 아빠가 참지 않아도 괜찮은 인간이고 싶다. 그가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그의 딸로서 살 이유가 없고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나는 나로서 살고 싶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원하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할 거다. 하지만 내 마음에 걸리는 일을 굳이 참아가며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이제 규칙적으로 집에 찾아가지 않을 거다. 내가 보고 싶으면 가고 안 보고 싶으면 가지 않을 거다. 가족 행사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챙기지 않을 거다.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구색을 갖추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이 편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할 계획이다. 모든 것이 한 번에 잘 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싶다. 내가 하지 않는 건 나의 자유고 그럴 마음조차 들게 하지 않은 본인들의 실책일 뿐이다.


관계에서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고 사랑받기 위해, 외면 받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딸은 이제 죽었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 그 시간과 노력을 이제 나를 사랑하는 데만 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가정폭력 생존자 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