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한참을 고민했다.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더라도 풀고자 하는 것은 나 혼자의 몫일 뿐이었다.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나의 부모는 변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할 거라는 말을 들었던 건 마치 의사에게 시한부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절대 나아지지 않아요.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아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네.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모에게 찾아가 길길이 날뛰지도 왜 나를 그렇게 대하냐며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았다. 다 죽은 장기들에 배를 갈라 확인 해봤자 내 뱃가죽만 아플 뿐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나보다. 아직은 그냥 검사만 해본 거잖아. 막상 수술을 하려고 열어보면 조금은 고칠 데가 있을지도 몰라.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몰라.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 현실을 외면했던 거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부모가 주는 상처들을 없는 것 치부하며 살았다. 나는 그것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나는 아주 단단한 어른이이어서 이불 속에서 입술을 깨물며 울음 소리를 숨기던 그런 어린 아이처럼 굴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 때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다.
풍족한 사랑을 받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막연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좋은 친구들도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애인도 있고, 좋은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믿음과 사랑을 받아도 늘 불안하고 조급했다.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게 사람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과 거리를 두거나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나에게 칭찬을 하거나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어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 사람은 그냥 하는 말일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말을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한 적이 있었다. 사실은 난 내 능력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칭찬을 받아도 그게 진심이란 생각을 한 적은 별로 없다고. 그냥 듣기 좋은 소리 해주려고 그러나보다 했다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랐고 한 분은 나에게 이렇게까지 말했다. “내가 왜 온도씨 좋으라고 그런말을 해? 내가 그렇게 해서 얻는것도 별거 없는데. 진심으로 한 말이야.” 그 말을 들으니 또 그런 듯도 싶었다. 나에게 별로 호감을 가지는 것 같지 않는 상대도 나의 좋은 점들을 종종 인정해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굳은 믿음은 좀체 풀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 인정하자. 나는 꼬인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꼬여서 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이쪽에서 풀어볼까, 저쪽에서 풀어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한쪽으로 미뤄두고 외면하는 것도 나의 특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는 미뤄둘 수가 없다. 묵히고 묵혔더니 이제는 엉킨 부분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눈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봐도 엉킨 부분이 눈에 띄는 게 문제다. 그 누구도 나의 애정결핍을 채우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애정을 받아도 그게 애정인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동안 노력해왔던 것을 멈추기도 하고, 내 어린시절 상처를 들추며 화를 내기도 했다. 멈추지 않는 결핍을 줄줄이 들춰낼 때면 너무 수치스러워서 견딜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떤 날 아빠와의 사건이 있은 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사랑받으려고 노력해도 그들은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을 거란 걸.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진작에 이별을 했어야 한다는 걸.
어쩌면 이 과정이 지난 애인들과의 이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고, 헤어지는 것이 힘들어도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존중받는 관계가 아닐 때가 그랬다. 내 연락을 무시하고 잠수를 탈 때, 나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비난할 때, 나를 위해 배려하지 않을 때, 폭언을 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거나 자신을 믿으라고 설득하거나 또는 자신을 믿지 않는 내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를 선택하지 못했고 그 관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내게 애인까지 그따위인 건 사실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내 부모가 나에게 준 능력일까. 개같이 구는 건 부모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더 쉽게 끊어낼 수 있었다.
물론 헤어지는 건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아침저녁으로 울어대서 몸무게가 한 달 만에 7kg이 빠져본 적도 있다. 기운이 다 빠져서 병원에 수액을 맞으러 간 적도 있다.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겨 폰과 지갑을 동시에 잃어버려 곤란한 적도 있었다. 정말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지나간 상대방을 욕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그사람과 함께 있던 추억의 장소에 가서 그때의 기분을 느껴보는 찌질한 짓도 해봤다. 그런 기간이 길어질 때면 언제 이 순간이 끝나나 막막하고 사는게 아무의미 없어보여서 쇼핑 중독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어딘가 아득한 구석이 있다. 심지어는 이름이나 생김새조차 가물가물하기도 하다. 내가 하도 욕을 많이 해서 오히려 내 친구들은 전 애인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정작 내가 가물가물하다고 하면 모두들 어이없어 하곤 한다. 인간의 망각 능력이란 아무튼 대단하다. 그렇다고 아예 잊어버린 건 아니다. 더럽게 싸워서 기분 나빴던 거, 정말 좋아서 두고두고 남는 기억도 있다. 그사람과 관련된 부분만 딱 빼고 삭제됐으면 참 좋겠는데 그건 정말 큰 욕심인 것 같다. 그래도 예전처럼 아프거나 아련하거나 화나지 않는 기억들이다. 그냥 “지난 번에 먹었던 그 떡볶이 다시 먹었더니 그정도 맛은 아니더라.” 정도의 기억이다.
내 부모와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나를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그들을 부모라는 이유로 그대로 둘 필요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하고 지금도 마음을 바꿔준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럴 일은 없는 거다. 나도 더이상의 기대도 희망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화도 나고 미련도 남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 애인들과도 그랬듯이 이 감정들도 언젠가는 저 머나먼 일들처럼 사그라들 것이다. 어떤 말에도 그리 영향받지 않고 피식 웃으며 “아직도 저런 말을 하네?”하며 넘겨버릴 수 있는 날이 올 거다. 더이상 내게 오지 않는 사랑을 바라며 발버둥치는 건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또는 그 사랑을 남으로부터 채우려, 인정받으려고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일은 그만 하고 싶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남이 해주는 평가에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잘 될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다. 이제까지 관계를 이어붙여 보려고 발버둥친 세월이 너무 길어서 착한 첫째 딸 병에서 잘 헤어나올 수 있을지 사실은 의심스럽다. 그리고 부모에게 사랑을 바라는 대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을 잘 할수 있을까 믿음직스럽지 않다. 언젠가는 다시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버릴 수도 있을거란 씁쓸함도 남아 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고 싶다. 내가 행복한 순간마다 내 부모의 행복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습관적으로 느끼는 죄책감에서 자유롭고 싶다. 내가 불행한 순간마다 어린 시절 힘들었던 과거를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안아주고 싶다. 내 인생에서 이 길고 긴 불행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다. 혼자라도 괜찮고 혼자라도 행복한 내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내가 했던 습관적인 생각, 억누르는 감정들을 다시 바라보려 노력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