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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02. 2018

나여도 괜찮은 나

가수 아이유님의 영상을 본 일이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나는 내 역할에 만족감이 든다. 또 태어나도 진짜로 나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10년간의 가장 큰 변화인 거 같아요.” 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은 펑펑 울었다. 언제쯤 나는 내가 나라는 사실에 만족할 수 있을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영상을 본 뒤 나는 자신이 조금은 안쓰러워졌다. 나는 나여서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나?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잘 하는 날에도 내 어딘가에서 부족한 점을 찾는게 나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나여서 언제나 불만투성이였다. 비오는 날이면 푸석거리는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은 키와 빠지지 않는 뱃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외모 이야기를 하면 조금은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는 때에는 제대로 못 먹곤 했다. 가끔은 당연한 부분에서 실수를 하는 내가 수치스러웠다. 실수를 하거나 단점이 보이는 나를,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단점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노력을 덜한 나를 꾸짖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럴 줄 알았어. 니가 그정도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남이 나를 보는 시선, 나를 그렇게 냉담하게 대했던 부모보다도 내가 나를 더 가혹하게 대했다. 그래서 내가 나여서 만족스러운 날보다 내가 나여서 화가 나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이길 늘 바랐다.




이제는 나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어졌다. 나를 채근하지 않고, 나 스스로를 그대로 받아주고 싶었다. 감정일기에 감사한 일을 적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느라 힘들고 아팠지만 몸을 생각하면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다. 애정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나를 걱정해주는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다. 내 몸아 많이 힘들었지? 앞으로 덜 힘들도록 노력해볼게. 그동안 잘 버텨줘서 고마웠어.


상담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해요. 체력이 약하고 자주 아픈 편이라서 스케줄 조절을 잘 해야하거든요. 그런데 나에게 발전이 되거나 인정 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거절하지 못해요. 어떻게 하면 욕심을 조금 줄일 수 있을까요? 남을 너무 의식하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고 싶어요.”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내게 이런 대답을 해주셨다.

“그것 마저도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요? 인정을 받고 싶은 나도 나이고, 욕심을 가지는 나도 나잖아요. 내가 이런 면이 있고, 그래서 몸이 아파요. 하지만 다른 내가 되기보단 그것 마저도 내 삶의 방식이 되서 그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건 어때요? 물론 많이 아프면 힘들겠지만 그런 나를 조금 더 사랑해주는 마음이요.”


순간 눈물이 터졌다. 늘 나의 단점으로 여겨 왔던 부분이었다. 상담을 신청한 날도 항상 아프고 약한 내가 사는게 너무 벅차고 감당하기 어려워서 꼭 고치고 싶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늘 소진되고 힘이 없는 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서, 나를 위해 시간을 못 내서였다. 늘 내 탓을 했다. 그런데 이런 나마저 받아들이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순간을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상담선생님에게 다시 질문했다.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고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함부로 대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나를 사랑하고 싶지만 제가 늘 저를 괴롭혔던 습관들이 있어서 한 번에 나를 인정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오늘처럼 아프면 저는 제게 함부로 말해요. ‘그럼 그렇지, 또 무리하더니 다시 이꼴이잖아. 바보같이 그런걸 다 끌어안고 있었어? 미련하다 정말.’ 이렇게요. 이건 정말 순간적으로 드는 감정이라 조절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후회되고 나면 어떻게 해요? 해둔 말을 주워담을 순 없잖아요. 저는 이럴때, ‘맞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안 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그 감정들을 묻어두고 다시 차근차근 고쳐나가는데도 마음이 슬퍼져요. 다시 고쳐나가는 게 참 어려워요.”


이번에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인정해주면 돼요. 나를 받아주는 습관이 되지 않아서 평소대로 감정이 나올 수 있어요. 그때 ‘내가 다시 이런 마음이 들었구나. 많이 상처받았지? 미안해.’라고 다독여주는 것도 필요해요. 그 다음 정말 수고했어, 잘했어. 라고 다시 이야기해주세요.”


“어려운 일이에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나에게 사과하고 그 사과를 받아주는 일을 잘 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도 어려웠는데 나에게 사과를 해본 적이 있을 리가. 다른 사람에겐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용서하고 이해를 구하던 일이 당연했는데.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해보려니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소리내 말해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비난하고 함부로 말해서 미안해. 너도 그 순간엔 잘 해보고 싶어서 나선 일이지? 원한 만큼 잘 되진 않았지만 정말 고생했어. 애쓴 만큼, 기대했던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았고, 조금 쉬어 가기도 했잖아. 충분히 쉬고 다음에 다시 즐겁게 해보자. 다음 번엔 몸을 생각하면서 할수 있을 거야. 다시 건강하게 회복되서 고마워 나야.”




느리고 어려운 도전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은. 9월부터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지금까지 더디게 가는 과정에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곤 한다. 빨리 괜찮아지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데 진이 빠지고 울고 싶은 날들이 많다. 매주 어떤 이야기를 꺼낼까 고민되고 계속 상담을 가는 게 어떤 의미일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글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해보지 않은 일은 늘 어려운 발걸음이다. 가지 말까?라는 마음에 사로잡힐 때도 많고 상담을 하고 나서는 마음이 개운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야기를 하고, 울고, 인정하기 싫은 이야기를 할 때면 온몸의 진이 쏙 빠진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 알수 없고, 무엇을 원하는지 헤매고, 상담 선생님의 이야기가 미지의 세계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이 끈이라도 잡지 않으면 안 될것 같은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이야기하곤 한다. 누군가는 내가 왜 어려움에 빠졌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나조차도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시점도 있다. 상담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썩 속 시원한 대답이 아닌 순간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주에도 상담을 가는 이유는 나의 삶이 더 행복한 방향으로 지속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루 중, 일주일 중, 일년 중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나로서 담담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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