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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12. 2018

내가 나를 지키려면

오래간만에 가족 모임이 있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를 믿지 못하고, 자신만이 옳고, 나를 비난하고, 나의 감정을 부정하는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언제나처럼 나를 공격하는 그의 행동과 생각을 침묵함으로써 나 자신을 존중하는 걸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를 거실로 불렀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 익숙했다. 잘 아는 사실이었다.

내 손은 벌써부터 떨고 있었다.

공포, 두려움, 반복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들의 외면. 이 모든 감정이 휘몰아쳤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아는 동물처럼, 무력하게 나는 방을 나왔다. 나는 내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자리에 앉자 익숙한 심문이 시작됐다.

“니가 나를 무시하는 이유를 듣자. 불만이 뭐냐.”

그야말로 권위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그런 류의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있을지라도 속으로만 삼켜왔다.

그 거침없는 말이 공격이란 걸 눈치채지 못한 건 단 한 사람 뿐이다. 방 안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있는 동생도, 못 들은 척 주방 일을 하는 엄마도,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순순히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저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진짜 심문이 시작되는 거다. 감히,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고작, 딸년 따위가 되고 싶은 마음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폭언이 시작됐다. “너랑 나는 고작 십 만원 짜리 관계 아니냐.”고 했다. 내가 겨우, 고작, 매달 십 만원 때문에 그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창작 능력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의 비꼼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 나의 입장을 변명해야 하는가. 그런게 아니었다고 다시 잘 설명하는 것이 어째서 언제나 나의 몫인가. 나에게 폭언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대상에게 함께 비꼬는 일은 <감히> 하지 못할 행동인가.


그는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감히 자신을 비꼰 딸년이 고까웠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나 그랬다. 자신의 분오는 정당하고 올바르며 합리적인 일이었다. 나는 그저 비판도 제대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속 좁고 모자라며 감정적인 딸년이라고 생각하는 건 변하지 않는 너의 습성일 뿐이었다.


목소리 높이지 마세요.

그래도 듣지 않길래 다시 반복했다. 큰 소리 내지 말라고. 자신이 목소리를 언제 높였냐며 다시 큰 소리를 내는 걸 보았다. 나는 순간 반대로 생각했다. 어딜 <감히> 내 앞에서 고성을 내는지. 나는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할머니 생신 때와 똑같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구출할 건 나뿐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게요.”




어딜 지금 일어서냐며 내 팔을 잡는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두려웠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이겠다고 들어올 것 같았다. 늘 그랬던 공포처럼. 스타킹을 바로 잡지 못해 몇 번이나 놓쳤다. 떨리는 발을 제대로 넣지 못해 넘어질 뻔했다. 원피스 지퍼를 잡은 손은 계속 미끄러졌다. 겨우 옷을 입고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동생에게 인사를 했다. 방문을 나섰다.


넌 겨우 그것 밖에 안 되냐.

그는 집을 나가는 내 뒷통수에 대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소리쳤다. 나의 자존감을 깎으려는 오래된 수단이었다. 그 의도처럼 나를 한참이나 갉아왔던 말이기도 했다.


2011년 여름에도 너는 그랬다. 전화를 받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며, 욕설을 했다. 전화를 끊는 나에게 수십 번을 전화했다. 공포에 질린 내가 결국 전화를 받으면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그만큼의 욕설을 받아본 적 없다. 너뿐이었다. 겨우 친부라는 그 알량한 지위를 가지고 너는 나를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오늘 내가 뒷통수에서 들은 말이다. 나는 그 이후로 7년을 이 말에 휘둘렸다. 물론 너의 폭언은 나의 전 생애를 거친 것이었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 그 때의 울분이 뒤섞였다. 다시는 이집 문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섰다. 방문에서부터 현관까지의 그 짧은 거리에도 다리 힘이 풀리는 걸 티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오늘 나의 고통이, 두려움이, 그 용기가 무엇인지 너는 모를 거다. 나는 나를 모르는 네가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할 존재가 아니다. 내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죽어서도 모를 네가 나를 판단할 수 없다.


내가 너에게 저항할 때, 나는 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까? 아직도 어린시절부터 나를 겁박하던 너의 협박이 나를 두렵게 만든단걸 너는 알까?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에서 옷을 갈아 입으며 네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마주하고 있었단걸 너는 알까? 내가 애인에게 전화했을 때, 나에게 “혹시 맞았어?”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를 듣는 내 입장을, 너는 과연 알 수 있을까?


아니. 너는 죽어도 모를 거다.

내가 어떤 절절한 공포와 고통 속에서 살았는지 단 한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거다. 그게 니가 나와의 관계에서 가져온 너의 특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울고, 빌고, 설득하고, 애원했다. 너는 단 한 번도 나의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 그런 너에게, 그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내가 어떻게 너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온도야, 수고했어. 많이 힘들고 공포스러웠지? 그 안에서 나를 지키느라 정말 많이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이 모든 순간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줘서. 너에게는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그게 어렵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언제나 나를 지키려고 노력할 거야. 무척 힘든 일이고, 두렵고, 때로는 실패하는 일이 있겠지. 하지만 그럴 수 있어. 나는 그저 인간이고,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할 수도 있어. 그걸 뛰어넘지 못했다고 나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았으면 해. 나는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고, 후회하기도 하는 인간이야.


오늘의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나를 아끼며 살자. 나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이 분노를 잘 다루고 나를 지키는 데 써 보자.


그리고 오늘 일이 있던 덕에 좋은 것도 있어. 앞으로의 고통스러운 가족 행사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이유를 얻었잖아. 연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새해도, 설날도. 그리고 친부의 생일에도.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행동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굳이 하지 말자. 피하는 건 비겁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고통스러우면서도 참고 인내하느라 나의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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