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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14. 2018

가족과의 관계를 위하여(1)

아버지에게

상담을 다녀왔다. 이번 상담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상담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다.

"아빠를 다시 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들어요?"

"안 보는 게 문제라기보단,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를 보기 싫다'도 아니고,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다니.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온 나의 본심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불편한 부분을 내가 해결하기보다는 상대방이 해결해주길 기대했나 보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에 기대하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아직도 아버지에게 애증의 감정이 있는지를 물었고, 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주도권을 아빠에게 주는 대답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아버지에 대한 감정들이 남아있고, 아버지에게 공포심을 느끼고 있어서 아버지는 아직 내 마음속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게 깊숙한 공포를 심어준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효를 강요하는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아버지에게 순종하지 못했다는 무의식적 죄책감도 남아 있다.


엄마 쪽 친척 행사가 있었는데 결국 가지 않았다. 잠깐 가볼까 하는 마음과 가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는데, 사실은 불편한 상황이 올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상담 선생님께선 내가 그렇게 힘들고 공포스러우면 가족이라도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고 조언하셨다. 나도 그게 나에게 나은 방법이고,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가 단 1%라도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이 가족과 관련된 모든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엄마에 대한 감정과 동생에 대한 감정이다. 엄마의 연락이 더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졌다. 엄마는 아버지와의 연결이 긴밀한 사람이니까.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아빠잖아."라는 말로 나의 입을 다물게 하는 일이 익숙하다. 부모 자식 간의 도리를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는 일은 늘 있어왔던 폭력이었다. 동생의 연락은 조금은 편하긴 하다. 사실 아버지와의 일에서 큰 도움이 안 되기는 엄마나 동생이나 비슷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나의 고통을 엄마의 방식대로 넘기지는 않는다. 내 고통을 부모 자식 간의 도리와 긴밀한 무언가로 나를 설득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엄마나 동생은 나의 몫을 해줄 수 없고 공포는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다. 엄마나 동생의 존재만으로는 이제 아버지가 있는 집에 갈 수 없다. 나의 공포가 누그러질 때까지 아버지를 마주할 모든 가능성에서 멀어지고 싶다.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봤다. 내가 원하는 건 '안전함'이다.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 나에 대한 비난과 공격, 험악한 분위기, 큰 목소리, 억압적인 환경은 공포였고, 고통이었고, 절망이었고, 분노했다. 나는 안전함이 무너졌다고 느낄 때, 그 상황이 지나서도 한참이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집중이 흐트러지곤 했다. 직장에서는 감정조절이 어려워 작은 일에도 숨죽여 울었다.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작은 틈이 보이면 금세 갈등이 되고 했다. 작은 어려움에도 누가 나를 공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는 손발이 덜덜 떨리고 공황 상태에 빠지곤 했다. 삶의 여러 부분이 부서져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한 건 나의 공포였다.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게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나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서라도 안전을 얻어야 한다.


안전을 얻기 위한 나의 첫 번째 선택은 '가족 모임 거부'다. 가부장제는 아주 혹독하고 잔인하다. 그 안에서는 나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모두 내가 그의 알량한 권위에 순종하고 조용히 문제 일으키지 않고 침묵하기 바란다. 그곳에 있으면 밀폐된 공간에 갇힌 느낌이다. 복종하지 않는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가족끼리'의 일이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친척들도 무섭다. 그래서 나는 가족 모임에 갈 수 없다. 누구도 나를 보호해줄 거라 생각할 수 없는 공간에는 가지 않겠다.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안전한 사람들로만 함께하고 싶다. '아빠라서', '가족끼리의 일이니까'라며 개입하지 않는 친척들도 안전하지 않다. 지금은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서 더욱 명확하게 선을 긋는 거지만, 내가 공포를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아버지와 한 공간에서 가족행사를 함께하는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내 거부의사와 단절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나는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사람과 가족으로 살아서 삶이 괴로웠다. 하지만 계속 위험에 처한 채로 살 수 없다. 그러려면 내 안전을 침해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거절할 거다. 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뒀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내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채로 방치됐고 나를 지키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이제라도 그들을 거절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찌 됐건 이 관계는 이미 이어 붙일 수 없다. 그저 끝난 관계를 주변에 통보하고 나를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봐야 하는 의무감, 상황, 기대에 이끌려 내 안의 불편함을 애써 억눌러 왔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경고등이 켜지는 자리는 명확하게 거부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여유와 안전을 내가 편안하고 행복한 곳에 쓰고 싶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건강한 관계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건강한 관계들 사이에서 나를 회복하고 싶다. 다행히도 나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충분히 있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있고, 그 안에서 편안함도 느끼고 있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도 그게 무엇이든 내가 관심 있고 편안함을 느끼는 일을 하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조용히 일기를 쓰고 집을 정돈하고 충분히 자고 싶다. 나는 나의 시간과 삶을 충분히 느끼며 살고 싶다. 공포로 보내는 삶은 이제 멈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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