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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Nov 21. 2018

25. 혼자 살만 하신가요?

지방에서 혼자 산다는 것

"원래 여기 사는 분이세요?"


직장 외에는 그리 연고도 없는 곳에 산지 어언 4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내 어디가 얼마나 외지인 같아 보이는 걸까?' 하는 물음이 잠깐 떠오르기는 하지만 상대도 별 생각없이 물었겠거니 하면서 "온지 몇년 됐어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러면 자연히 나의 신상캐기용의 질문이 몇번 더 오가는 편이다. 대부분 내 고향을 듣고나면, 그냥 통근하지 그랬냐는 오지랖이 돌아오곤 한다. 내가 자라온 지역은 지금 사는 곳보다 규모도 크고, 자연히 인프라도 잘 형성되어 있어 살기 좋다는 거다. 그리고 나는 비혼이라고 주장하지만, 미혼인 여자가 결혼할 돈도 모아야 하는데 부모님 댁에 착 붙어 있어야 저축도 좀 잘 될테고 말이다. 굳이 그 말에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달기는 좀 귀찮아서 대충 수긍하는 척 듣긴 한다. 혹시 그런 말을 하고 "내가 오지랖이었나?" 돌아보시는 분이 있다면, "네. 오지랖 맞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해줄 수 있다.




이곳에 사는 것이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전혀 아니라고.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사는 일은 녹록치 않다. 일단 대중교통이 정말 최악이라서 발이 묶이는 일이 많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전혀 돌아갈 생각이 없다. 내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가기 불편하기 때문에 포기했던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좋아하는 빵집을 찾아가는 일이 망설여지는 사소한 일부터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 곳도 갈수 있는 것, 외출을 하면서 여러 곳을 가야할 때 최대한 택시를 덜 타는 동선을 고려한다거나 아니면 오늘 갈 곳을 내일 가야겠구나 고민하는 정도가 줄어들었다는 것 등등 편리함이 훨씬 늘어났다. 물론, 나는 여기서 버스를 대중교통 취급하지 않는다. 놓치면 언제 올지 알수 없는 교통수단이 이 지역에서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입했거나, 자동차를 구입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이동하거나, 택시를 타는 일이 많다. 심지어 스쿨버스도 없어서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 두셋이 함께 택시나 가족의 카풀을 이용하거나, 작은 버스 계약을 해서 통학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나는 몸이 약한 편이라 이런저런 질병을 달고 사는 편이다. 특히 알레르기성 질환과 염증은 매달 매 시기에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내가 새 장소에 살게 되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단골병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동네는 도대체 병원이 마땅치 않다. 가끔 기사를 볼 때면 개업의가 포화상태라던데 작은 도시들은 쏙쏙 피해간 말인듯 하다. 이 곳에서 유명하다는 한 병원은 오전에 접수를 하면 오후에 진료를 볼수 있어 나같은 직장인들은 꿈도 못 꾼다. 내 질환에 관한 전문의를 찾으려면 병원을 한 손가락 안에서 셀수 있을 정도다. 예전에 더 큰 규모의 도시에 살았을 때는 여러 병원을 다녀보고 나와 가장 잘 맞는 병원을 선택해 다녔는데 여기선 잘 안 맞아도 급하면 가게 된다.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은 거다. 또는 몸이 많이 아파도 의료혜택을 누리려고 큰 병원을 가려면 큰 도시로 나가야 한다. 예전에 이곳에도 큰 병원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렸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취소되었는데 아마 타산이 안 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왕복 교통비와 시간, 일상을 다 포기하고라도 아프면 큰 도시 가서 치료 받아야지 별수 있을까? 우리나란 서울 공화국이잖아.




대중교통과 병원이 이정도인데 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베트남 요리를 먹고 싶어." 해서 찾아보면 체인점이 몇개 나오거나, 조금 특이하게 "인도 요리를 먹어볼까?"라고 해서 딱 한 곳 나오면 감사한 일이다. 취미생활로 원데이 클래스를 가끔 수강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퇴근 후나 주말에 수강할 수 있는 클래스 자체가 거의 없다. 1:1 클래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니다. 일단 원데이 클래스의 존재 자체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취미 동호회나 모임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런 모임에 참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차가 있기 전에는 두 시간, 차를 가진 지금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모임에 가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도 그렇다. 배우고 싶은 곳은 있는데 전문적으로 하는 곳은 없거나 두어군데. 그나마도 해당 자격증이나 경력이 있어서 운영하는 학원은 지역에 딱 한 두개. 그런데 막상 갔더니 학원의 수업 방식이 나와 안 맞으면 그냥 포기하게 되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참 까탈스러워보이지만, 사실 나는 운동을 배우러 가서 이 동작을 하면 엉덩이 모양이 예뻐져요.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운동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데도 이 곳을 벗어나지 않는 아주 큰 이유가 있다면 그건 '주거비용'이 80%를 차지한다. 물론, 이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애인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도 큰 이유지만, 사실 이 지역을 떠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잠재우는 건 부동산 어플이다. 부동산 어플의 매물이 진실이냐는 차치하더라도 부동산 어플은 어느정도 현실성 있는 거래가나 또는 그 지역의 평균적인 시세를 알기에는 유용하다. 그런데 조금 더 큰 도시로 옮기기 위해 어플을 뒤져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전세금으로는 절대 지금과 같은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없다.


첫 번째 문제는 집의 크기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가나 위치는 마음에 드는 편이지만 나는 방 하나, 거실 하나, 베란다, 화장실이 있는 내 집이 좁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정도면 혼자 살기에 충분하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삶의 질을 따지며 집에서 '잘 살기 위해' 를 따진다면 좁은 감이 있다. 그나마 내가 집에 짐이 많지 않은 편이라서 옷장 한개에 모든 옷을 집어넣고 거실의 상부장에 책을 넣는 등의 공간활용이 있어서 집이 넓어보이는 효과가 조금 있을 뿐 나는 항상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넓은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의 전세가로 지금보다 좁은 집을 선택한다는 건 삶의 질을 더 낮추는 선택이다. 집보다는 인프라가 더 중요해서 조금 좁더라도 문화생활을 누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보내는 휴식이 밖에서의 삶을 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만큼 중요한 공간이다. 그래서 이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지금의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동네 집값이 곤두박질 치고 있는 현실이라 앞으로 내 전세금 잘 받을 수 있을까 조금 불안하긴 하단게 큰 문제긴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안전비용'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위치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이곳 주변이 조용하고 안전한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근처에 작은 교회가 있어서 일요일마다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유흥가도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의 상가도 작은 음식점이나 마트, 어린이집 같은 곳이라서 출퇴근할 때 이상한 사람을 마주칠 확률이 적다. 혼자 살아본 여성들이라면 알겠지만 주변에 술집이 있거나 수상한 유흥가가 있으면 원치 않는 위협에 시달릴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그리고 좁고 어두침침한 골목이 없는 점도 마음에 들고. 가끔 내가 건장한 남자였다면 이런 부분에 무심할 수 있었다면 이 전세금으로 투룸을 얻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리고 이동네 집값이 곤두박질 치고 있는 ‘지금 내가 남자였다면 조금 싼 동네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이 생각을 하는 이유는 예전에 잠깐 만나던 사람이 정말 외곽지역 아파트에 나와 비슷한 전세금으로 살았거든. 그래도 되는 삶이 참 부럽긴 했다. 그래도 되는 삶이었으면 진작에 지역을 옮겼으려나?


어디에 살던 아쉬움이란 남을 거다. 하지만 그 비용이 내가 혼자 살고, 썩 경제적 능력이 좋지 못한 여성이라서 조금 더 청구된 느낌인건 단순한 내 착각일까?




주거비용하니까 어떤 이는 “그래도 서울 보단 낫지 않아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래 맞다. 서울보다는 훨씬 낫지. 이돈으로 서울 가서 전세금 한다고 하면 다들 코웃음 칠 돈이다. 나는 서울에서 안 사는게 아니라 가봐야 내 삶이 지금보다 뻔해지기 때문에 못 가는 거다. 그나마 나의 삶은 지방에 살고 있는 많은 1인가구에 비해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정규직 일자리를 가지고 있어서 적게나마 꾸준한 수입이 나오고, 그 덕에 대출도 받을 수 있다. 집안 형편이 가난한 편이지만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집에 경제적 보탬을 주지 않아도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 문화적 인프라를 거의 포기한 대신 비교적 안전하고 적은 비용으로 주거생활을 하고 있다. 아,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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