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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Nov 30. 2018

26. 혼자 살면, 아프면 안 돼요

혹독한 입원 체험기

평화로운 주말 오후였다.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몸도 뻐근하고 두통도 좀 있어서 아침부터 진통제를 챙겨먹은 뒤였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난 뒤 갑작스럽게 찾아온 오한으로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구토감, 설사, 어지러움. 검색을 해보니 장염의 증상이었다. 그러나 살면서 장염으로 이렇게까지 아픈 적이 있던가. 애인의 도움으로 주말에도 진료보는 병원을 찾아 나섰다.


주말에도 여는 병원이 몇 없어서 집과 조금 떨어진 병원으로 향했다. 급성장염이라고 했다. 열까지 나는건 아주 심한 상태라며 입원을 권하셨는데 내일 출근이 걱정됐다. 일단 수액만 맞겠다며 누웠는데도 온몸이 덜덜 떨려 수액을 맞는 내내 간호사 선생님께서 히터를 틀어주셨다. 잠깐 사이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힘든데 내일 출근해서 일 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열이 안 내려서 위험해지면 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난 입원 한 번도 안 해봐서 무서운데. 열이 펄펄 끓는 머릿 속으로 나름의 합리적 고민을 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 출근은 무리였다. 오늘 저녁은 애인이 어떻게든 봐주겠지만 내일 애인도 출근하고 혼자 집에 남으면 밥고 제대로 못 먹겠다 싶었다. 결국 입원을 하기로 했다.




이럴 때 애인이 있는 건 나에게 얼마나 다행인 일이었는지 모른다. 혼자 병원을 찾아서 운전해 가고 입원 수속까지 했다면 더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처럼 혼자 사는 동료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연고도 없고 보호자가 없어서 타지역에서 가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땐 막연하게 정말 곤란하고 힘들었을 거란 생각만 했는데 막상 내가 당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입원을 결정하고 나서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고 정리하는 일은 나 혼자 하기 까마득한 일이다. 만약 내가 이런 연고 없는 지역에 혼자 이 모든걸 준비했다면 입원수속하다가 쓰러졌을지도...


저녁까지도 38.9도였던 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병원식으로 나온 쌀죽은 구토감 때문에 채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래도 수액을 맞고 주사도 맞은 뒤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제서야 타지역에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이라니, 그것도 벌써 입원까지? 원래 좀 몸이 골골거려서 그렇지 수술은 커녕 입원조차 해본 적 없었는데 다들 놀랐다. 다행히 옆에 애인이 있어준 덕에 가족들이 당장 오지 않아도 됐지만 아프니까 괜히 서러워졌다.


약기운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속은 여전히 안 좋았고 열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수시로 열을 재고 아이스팩을 끼워주시고 하는 통에 한시간을 쭉 이어 자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드는 생각은 ‘병원에서 아파서 다행이다. 방에서 혼자 끙끙대지 않았던 것도 다행이야.’였다.





고통이 거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해피엔딩이었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다음날 낮에 정상체온으로 돌아오던 내 몸은 그날 밤부터 다시 불덩이가 되기 시작했다. 애인도 가족들도 나 괜찮을 거라며 내일 퇴원해야겠다고 그랬는데 이번 장염은 정말 제대로 걸린 거였다. 밤새 고열과 미열을 반복하면서 나와 밀당하던 내 몸은 아침이 되어선 정말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이제 정말 CT도 찍고 피검사도 다시 해야겠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애인에게 연락을 했다. 멀리 사는 가족들보단 가까운 곳에 살고 나에게 수시로 연락해주는 애인이 더 마음에 놓였으니까. 그리고 애인이 휴가를 쓰고 달려오니 좀 긴장이 풀린 나는 엄마에게 신신당부하며 전화했다. “애인이 옆에 있으니까 너무 급하게 오지 말고 천천히 운전해서 와요 엄마. 아빠는 데려오지 말고. 내 몸 많이 힘들어 아빠 오면 더 스트레스야..”


CT를 처음 찍어본 나는 간간이 찍을 일이 있던 X-ray처럼 간단한 건줄 알았다. 그냥 둥근 관 속에 누웠다 나오면 될줄 알았지. 그런데 찔러대는 주사 바늘은 왜이렇게 굵은 건지. 들어가는 약물은 뭐가 그렇게 많은 건지. 게다가 조영제는 후끈거리는 열감이 왜이리도 불쾌한 건지. 온몸의 기력을 쭉쭉 뽑아가는 느낌이었다. 열도 제대로 내리지 않아 구토감에 시달린 것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거기에 내 양 팔이 왼쪽은 수액, 오른쪽은 CT준비를 하면서 바늘로 쑤셔진 통에 CT촬영하러 들어갈 때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지경이었다. 녹초가 된 몸을 겨우 건사해서 끌고 다녀준 애인 덕에 검사도 끝내고 결과도 들으러 갈 수 있었던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엄마는 내 전화를 받고 그 전날에도 장거리를 왕복했던 지친 몸을 이끌고 준비해 오셔야 했으니까. 그리고 준비하고 온 시간에 나는 이미 CT를 찍고 결과까지 다 나온 상태였으니. 그렇게 나온 결과는 결국 장염이었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내가 이렇게까지 아픈건 장염때문이란다.


병원에서도 장염 때문에 이렇게 열이 나고 힘든 건 드문 일이란다. 앞으로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고 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들도 지금 그 병원에서 내가 상태가 가장 심각한 내과 환자라고 했다. 졸지에 나는 모두에게 요주의 환자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파도에 밀려 나온 해초마냥 축 늘어진 나는 큰 병원이란 말에 정신이 아득했다. 여기서 큰 병원에 가려면 30분 거리의 A지역에 있는 병원이나 한 시간 넘는 거리의 B 지역에 있는 병원에 가야 했다. A 지역은 그나마 가깝지만 아무 연고 없는 지역이라 모두에게 불편했다. B 지역은 부모님이 살고계신 지역이지만 그 거리를 이 몸으로 차를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가다가 몇 번이고 구토를 안 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난 장염이잖아...




결국 하루를 더 입원해보기로 했다. 모든 검사와 상담을 마치고 나니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약기운 때문일지도 몰랐다. 오후엔 아빠도 오시고 졸지에 부모님에게 애인을 첫 소개한 장소가 내 병실이 되버렸지만 잠이 너무 와서 사실 크게 신경도 못 썼다. 너무 피곤하니 아빠 잔소리도 안 들리는 것도 신기했다. 어색한 웃음이 오가고 제대로 앉지 못하는 애인과 자리를 비켜주는 부모님의 뒷모습이 조금 안쓰러웠을 뿐. 생각해보면 나 빼고 모두 맑은 정신이어서 그 자리가 엄청 어색하고 곤란했을텐데 환자를 배려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 않은게 참 다행이기도 했다.


그 뒤론 하루종일 자다깨다 한 것 같다. 저녁 내내 미열이 있어서 애인도 늦게까지 있었고, 부모님들도 밤 늦게까지 병실을 지키다 동생과 교대해서 동생이 내 새벽을 지켜줬다. 미열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고열은 아니어서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푹 자고 나니 다음 날 아침은 한결 수월하게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이제야 그 고난의 시간들이 조금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모두가 나를 위해 애써준 덕이었다.


4일째 되는 날은 정말 정상 체온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어서 퇴원을 하고 싶단 말도 꺼낼 수 있게 됐다. 물론 병원에서는 열이 다시 오를 수도 있고 아직 위험한 상태라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지금 몸이 좋아졌을 때 부모님 댁에서 요양하면서 안 좋아질 경우에는 바로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는 열이 내리지 않으면 큰 병원에 가보아야 한다고 했고 열이 오른 상태에서 다른 지역의 큰 병원에 가려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니까. 결국 다시 아프면 꼭 큰 병원으로 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진료 기록을 가지고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을 하고 다시 집에 들러 간단히 짐을 챙긴 후 엄마 차를 타고 부모님 댁으로 들어왔다. 내가 부모님 댁을 이렇게 안심되는 기분으로 들어온 게 얼마만일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부모님이 이렇게 온화했던 날도? 다시 아프고 싶지는 않지만 돌봄을 받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황송할 정도로 이상하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 평화로운 안정을 조금 오래 즐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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