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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Nov 08. 2018

24. 포근한 이불 속에서

동생이 집에서 자고 간 날이다. 내가 출근한 후 조금 여유 있게 집을 나서곤 하는 동생은 나를 위해 집 정리를 해주곤 한다. 어느 날은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 집에 돌아왔는데 예전에 선물해준 여우 쿠션이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은 채 날 맞이하고 있었다. 동생의 작품이었다. 내가 일을 하던 시간 오롯이 혼자 낮잠을 자고 있었을 여우 쿠션이 부러워지는 저녁이었다.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직장이 아니다. 이불 속이다. 퇴근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샤워를 끝낸 뽀송뽀송한 몸을 눕히곤 한다. 소위 ‘바깥 옷’의 출입을 금한 부드럽고 보송한 침구는 때마다 세탁도 열심히 해가며 관리하는 특별 구역이다. 이곳에 한번 누우면 화장실 가는 시간, 물 마시러 가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노닥노닥 시간을 보내곤 한다. 이렇게까지 이불 속을 사랑할 줄 알았더라면 이 집을 구할 때 조금 방이 좁아 보이더라도 무조건 가장 큰 사이즈의 침대를 구할 걸 그랬다.


손님이 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집에 가장 자주 방문하는 손님인 애인과 동생도 집에 들어오면 가장 애정하는 장소가 이불 속이다. 겨우 슈퍼 싱글 일 뿐인 작은 공간이지만 아주 유용한 장소다. 나란히 누워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다. 또는 휴대폰 충전기도 코앞에 배치되어 있어 충전기 선을 꼽아놓고 폰을 보며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도 딱이다. 손님이 올 때만 연결해 보는 티비도 이불응 둘둘 말고 보는 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




직장을 구하고 처음 이 지역에 자리 잡았을 때는 가진 돈이 정말 적어서 부모님 댁에서 이불을 들고 왔다. 그 중엔 내가 스무살 대학 시절부터 덮던 이불도 있었다. 이미 세월의 풍파도 겪고 디자인도 제각각이던 낡은 이불들은 돈을 아끼는 대신 내 미적 욕구에 부합하지 못했다. 사실 그땐 모든 게 그랬다. 부모님 댁에서 남는 그릇과 냄비들을 가져오다보니 낡고 유행이 지난 물건들은 내가 살고 싶던 모습들과 많이 달랐다. 그리고 결국 얼마 쓰지도 못하고 구멍이 나고, 올이 나가고, 이가 빠지는 등의 이유로 버리곤 했다.


두 번째 이불은 근처 인테리어 소품샵에서 사왔다. 북유럽풍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대형 체인점인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깔끔한 디자인과 함께 저렴한 가격으로 내 지갑을 열었다. 먼지같이 가볍던 내 지갑에 딱 알맞는 가성비라며 감탄하면서 사온 이불을 나는 참 아꼈다. 얼마 되지 않아 이불 속 털들이 방바닥에 굴러다니고 올나간 시트의 실을 갈무리하기 전 까지는. 그래도 나는 내 돈으로 처음 산 그 이불들을 참 많이 아꼈다. 낡은 이불들 보다는 구색을 맞추기도 했고 새 이불을 사기에는 돈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결국 전셋집에 이사온 해에도 그 이불들을 친척어른의 차에 바리바리 실어다 날랐다. 심지어 부모님 댁에서 받아온 낡은 이불들을 버리지도 못한 채.




생각이 바뀌게 된건 특별한 계기였다. 조금 더 평수 넓은 전셋집에 이사오게 되니 수납 공간도 많이 생긴 데다 공간활용이 좋아져서 인테리어 욕심이 샘솟았다. 게다가 버팀목전세자금대출은 다달이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고 이자가 저렴해서 월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자잘한 소품부터 차근차근 바꾸다보니 침구가 눈에 들어왔다. 건드리고는 싶지만 거금이 들어갈 것 같아 엄두가 안 나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내가 그렇게 뿌듯하게 여기는 6인용 식탁도, 집의 크기와 어울리지 않게 넓게 배치된 화장실도 아닌 이불 속이었다. 어쩌면 하루 동안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여기에 돈을 아끼는 건 뭔가 우스워 보였다.


그래서 야금야금 모아논 비상금으로 이불 전문 브랜드를 찾아갔다. 사실 나는 이불 브랜드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지만 그 가게 근처를 지나갈 때면 “돈만 있으면 꼭 여기 와서 사야지.”라는 마음은 품고 있었다. 그렇게 거금을 들여 이불을 한 세트 샀다. 내가 전셋집 들어가며 산 가구들보다 더 비싼 금액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과장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뭔가 다르긴 다르더라. 그래서 그동안 이고지고 있었던 이불들을 조금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한번 좋은 이불을 덮고나니 다른 이불들은 손이 안 가고 덮고 싶지가 않아졌다. 이불 속에 있는 시간도 예전보다 만족스러워졌다. 사실 침대 매트리스만 바꾸면 이번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좋은 이불을 덮고 살고 있으니 한 가지 깨달음도 얻었다. 나는 철마다 다른 디자인이나 유행에 민감한 성격이 아니라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걸 사서 낡아서 못 쓸때까지 뽕을 빼는(!) 성격이란 걸. 그래서 이 이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이불은 다 처분했다. 철따라 솜을 넣거나 빼고,세탁방에서 세탁부터 건조까지 한 번에 해 가며 이불 한 채로 사시사철을 버티는 거다. 뜻하지 않은 미니멀 라이프다.




이 이불과 함께한 지도 생각해보니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매일 매일을 이 한 채의 이불과 함께하고 있으니 사실 튿어져서 감쪽같이 기운 흔적도 있고 처음같은 설렘은 잃었지만 편안한 온기가 있다. 오늘의 글도 이 익숙한 이불 안에서 한 편을 완성하고 있다. 이불아, 오늘은 너에 대한 러브레터를 썼어. 네 덕에 오늘도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 보내고 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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