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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20. 2018

여섯 번째/ 여자 혼자 살기 위험하지?

여성의 주거안정성에 대하여

여자 혼자 산다니
위험해서 어떡해?

혼자 산다는 걸 아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는 말이다. 내가 먼저 나서서 혼자 산다고 밝히지는 않지만 어딜 가나 개인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출퇴근 시간은 얼마나 걸려? 어디에 살아? 원래 여기 살아? 가족들이랑? 혼자산다고?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해서 어떡해?


뭐 위험하면 뭐 어떻게 대책이라도 있나. 그럴 상황밖에 못 됐으니 이렇게 사는 것 뿐. 졸업하고 1년 반의 긴 기다림 끝에 된 취업이었다. 발령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할수 있는 선택지 중 이곳은 도움을 받을 만한 친척어른이 계시는 지역이었다. 출퇴근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가족들과의 갈등도 심한 와중에 긴 출퇴근시간, 신입으로 적응해야하는 상황이 나를 독립으로 이끌었다.




첫 번째 집은 친척 어른 댁 근처에 있는 원룸에 월세를 얻었다. 친척 댁의 직장에서는 3분, 친척 댁에서는 10분 거리에 있는 집을 얻었다.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있어 마트나 세탁소, 분식집 등과 가까웠고 공원도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주변에 유흥가가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걱정하는 친척 어른들이 가까이 살고 계시다는 점이 부모님과 나를 안심하게 했다. 원룸을 관리하는 분은 건물 주인부부였는데 항상 두분이 같이 다니시며 필요한 요청도 잘 들어주시는 좋은 분들이었고.


살면서 특별히 위험할 만한 일은 없었다. 1층이 얼마나 여자에게 저주받은 층수인지 모르고 그냥 월세 3만원 싸단 이유로 들어가 살았던 게 죄라면 죄다. 기숙사에 살던 때나 친구들과 자취해서 앞뒤건물에, 위아래층 다 내 친구들인 때와 다르단걸 모르기도 했다. 환기를 하려고 창을 열어두면 안을 들여다보는 아저씨들 덕에 낮에도 꼭꼭 창을 닫아두고 보일러실 창만 열어두었으니까. 보일러실 창은 아저씨들 키보다 훨씬 높아서 그나마 방에 곰팡이 안 지고 잘 살았다. 그게 고까웠는지 밤이면 꼭 그 아래에서 담배피던 아저씨, 건강하신가요? 친척 어른이 확인하러 오시면 안그런척 내빼던 꼴이 좀 웃겼대요.


뭐 거의 그런 일들이다. 직접적으로 날 때리고 욕을 해야 폭행인가? 야근을 하고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내 뒤를 밟아 등골 서늘하게 하고 낄낄 거리는 일, 여자 혼자 사는 집인 걸 알고 내 문을 쾅쾅 두드리는 일, 내 집안이 궁금해 창문을 기웃거리는 일. 나는 늘 그들을 저주했다. 나중에 나와 똑같이 꼭 당해보라고.


그나마 나는 불안하면 집 주변을 살펴줄 친척 어른들과 친절한 건물 주인 부부가 계셨다. 늦게 돌아가는 날이면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는 좋은 언니들도 있었고. 하지만 끔찍한 일은 늘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주고 너 안심하고 사는 꼴은 못 본다는 듯 위해를 가하는 쓰레기들은 늘 존재했다. 그 집을 떠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집은 전세였다. 드디어 월세 탈출에 성공했다. 부모님의 도움과 버팀목전세자금 덕으로 가능한 결과였다. 아마도 화장실 한칸 정도만 내 지분이었겠지만 월세의 늪에서 벗어난 게 어딘가. 게다가 예전 집보다 좋은 구조였다. 보일러실, 화장실을 제외하곤 모두 한 방에 있던 지난 집과 달리 새 집은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었다. 방과 거실겸 부엌이 분리되어 음식 냄새가 방 안까지 안 들어올 수 있다니! 베란다가 있어서 짐을 그곳에 쌓아도 되고 빨래 널어 놓을 공간이 있다니! 가장 좋았던 건 환기를 해도 집안이 안 보일 수 있게 할수 있단 거였다.


그리고 예전보단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 집 근처에 있는 음식점이나 가게를 이용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산다는 사실을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아서.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도 전화번호만 알리고 사는 곳은 알리지 않는다. ㅇㅇ빌라 ㅇㅇ호 여자가 혼자산다는거 세탁소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 조차 꺼려져서. 배달음식은 주문하지 않는다. 택배도 직장으로 주문한다. 이것도 다 누구누구씨들의 좋은 가르침 덕분에.


그래서 내 신상이 좀더 안전해졌을까? 그렇지는 않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도 있는걸. 쓰레기가 쓰레기를 뒤지는 꼴은 막아야겠기에 웬만한 종이는 파쇄기에 넣는다. 쓰레기 봉투 수거시간을 기억해서 그때 맞춰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조심해도 틈새를 파고드는 쓰레기들이 잘못한 걸까? 그 창의성을 못 알아본 내가 잘못한걸까? 아떤 때에는 심하게 헷갈릴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 하면 그러게 그렇게 위험한데 왜 혼자살아? 그러게 밤 늦게 다니지 말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신기방기한 세상이다. 글쎄요. 가족들과 살았을 땐 내가 모든 위협에서 안전했을까요? 밖에 나다니지 말아야 하는 건 피해자일까요 가해자일까요? 나보고만 조심하라는 거 보면 세상은 아직 가해자 편이 정의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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