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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18. 2018

다섯 번째/ 식사를 준비하는 일

밥보단 샐러드가 좋아

혼자 살면서 내게 가장 특별한 일은 식사 준비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식사 준비를 하는 노동이 버거운 순간들이 많다. 집에 와서 간단히 청소하고 씻고 빨래하는 일도 버거울 때가 있는데 밥하는 건 오죽할까.


식사를 준비하는 건 고차원적인 일이다. 식재료의 재고를 파악해서 장을 보고 보관 방법에 맞게 냉장, 냉동, 실온 보관을 한다. 주기적으로 냉장고 정리를 해주어야 뭐가 없는지, 식재료가 썩고있지 않는지 파악할 수 있다. 재료의 여유와 신선도를 따져가며 식단을 짠다. 재료를 손질하고 내 입맛에 맞게 식사를 준비한다. 먹은 뒤에는 남은 음식을 보관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한다. 식기와 주방도구들을 세척하고 잘 말려둔 뒤 정리해 보관해 둔다.


이 모든 과정을 줄여주는 인터넷 쇼핑몰, 재료배달 업체, 손질해서 파는 상품들, 반조리 식품 등등이 많이 있지만 사실 나는 이 과정 모두 즐기는 편이 아니다. 퇴근길에 내 눈으로 식재료를 확인하고 사는 게 좋다. 손질해서 파는 것은 좋지만 내가 싫어하는 식재료가 포함될 때도 있다. 반조리를 먹는 것 보다 사 먹는게 덜 수고롭다. 전자렌지를 쓰면 요리가 맛없어 지는 것 때문에 전자렌지를 사지 않았다.


어떻게든 식사를 준비할 마음이 들어서 하더라도 밥을 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다. 밑반찬은 사서 하거나 계란프라이로 구색을 맞춰도 된다지만 밥을 하는 일이 고되다. 쌀을 씻고 전기밥솥에 넣은 뒤 기다리는 일, 뜸 들이길 기다리고 밥을 섞어주는 일, 남은 밥을 소분해서 냉동하는 일, 밥솥을 씻어주는 일 등등... 게다가 국이라도 끓이려고 하면 그 수고호움이 두 배 이상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손이 덜 가는 편인 샐러드를 선호한다. 재료 손질은 씻거나 삶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고 헹구는 것도 물로만 씻어내도 된다. 잘만 소분해서 냉장해두면 3,4일도 거뜬하다.


오늘도 샐러드를 해먹기로 했다.

1. 재료를 준비한다. 냉장고를 살펴보니 샐러드 할만한 재료는 이게 전부다.
2. 냄비에 소금을 넣고 삶는다.
2. 삶는 동안 어린잎 채소를 씻어낸다. 부드러워서 자주 먹는다.
3. 요즘 제철인 무화과도 물로 씻어서 사등분 했다. 내가 제일 먹기 편한 손질이다.
4. 감자가 아직 안 삶아져서 계란 먼저 찬 물에 넣었다. 계란은 딱 15분 삶았을 때가 가장 맛있다. 노른자가 가장 부드러울 때라서.
5. 마지막으로 발사믹을 뿌렸다. 그런데 감자가 아직도 안 익었다. 다음엔 감자 먼저 삶으며 시작해야지. 샐러드를 다 먹을 때쯤 감자가 다 익었다.

혼자 먹는 식사는 거의 이렇게 되곤 한다. 아주 천천히 늘게 되는 음식 솜씨와 노하우 덕에 재료가 덜 익기도 하고 어딘가 맛이 부족하기도 하고 재료가 남거나 부족하기도 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비용을 생각하다보면 사 먹는게 훨씬 싸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 먹을 때가 실제 식비가 덜 들기도 하고. 그래도 꾸준히 시도를 해보는 이유는 내가 나를 돌보고 대접해주는 느낌 때문이다. 좀 서투르기는 해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준비하고 힘을 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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