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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Aug 17. 2018

네 번째/ 택시 타고 다닙니다.

내게는 너무 먼, 버스에 대한 이야기

“출퇴근은 얼마나 걸려요?”

“걸어서 이십분 정도 걸려요.”

“그럼 이렇게 더운 날은 어떻게 해요?”

“힘든 날엔 택시 타고 다녀요. 기본요금 나와요.”

“와.. 그럼 버스는요?”

“언제 올지 모르는걸요. 그거 기다리느니 걷지요.”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던가, 출장은 어떻게 다녀오냐고 묻는다던가, 자차가 없는 나에게 교통수단에 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웬만한 거리는 걷고, 걷지 못하는 상황일 때는 택시를 탄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걷는다는 말에는 대단함을 표현하면서도 택시를 탄다는 말에는 낭비를 한다는 듯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다 자차가 있다. 또는 이렇게 작은 동네에 살아본 적이 없거나.


내가 사는 지역에는 그 흔한 시내 버스 어플이 없다. 배차 간격은 아주 쓰레기다. 최소 배차간격이 60분이고, 120분, 180분, 일 1-3회 운행되는 버스도 있다. 나도 여기 살기 전에는 이런 배차간격이 정말 작은 농촌 시골마을에나 있는 줄 알았다. 외가 할머니 댁에 가면 큰 종이에 배차간격을 크게 써 놓으시곤 했다. 그 동네가 종점이고 딱 한 대 오는 버스가 있었는데 그 버스가 60분 배차간격이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 놓치면 한시간 기다려야 하는 거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그 시간대의 버스 배차를 꿰고 있다면 모를까. 출장이나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가야하는데 버스를 타느니 택시 타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그거 찾아본다고 전전긍긍하는 피곤함에도 훨씬 낫다. 그래도 그나마 좋은 점은 교통 체증이 출퇴근 때 빼고는 아예 없고 그나마도 큰 도시에서 생각하는 그런 길막힘이 아니라서 택시비가 많이 안 나온다는 정도?


그럼 아예 버스를 안 타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우리 집 근처 5분 거리의 정류장은 세 군데가 있는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이 세 군데로 가는 버스는 그나마 많이 있는 편이라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집으로 갈땐 버스를 종종 이용한다. 그런데 반대로는 못 간다. 내가 출발하는 시간대에 어느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타야할 지 감이 안 잡혀서. 자칫 한시간 기다릴 수도 있는데 집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도 40분이면 간다. 날씨 좋으면 걸어서 가기도 하니까 기다리느니 걷는다.


그래서인지 내 직장 동료들은 직장 코앞에 사시는 몇 분 빼고는 다 자차가 있다. 나도 차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이동의 제한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혼자 먹고사는 처지에 차까지 사면 전세 대출금 언제 갚나 싶어 꾹 참고 버티는 중이다. 내가 아무리 택시를 타고 다녀도 자동차 구입 및 유지 가격보단 덜 드니까.


하지만 자동차 구입 욕구가 스물스물 올라와서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에는 인터넷에서 자동차 견적을 살펴본다. 내가 융통가능한 현금과 구입 후 월 할부금, 언제까지 할부금을 내야 할지 계산을 해보곤 한다. 심지어 요즘엔 해당 공식 홈페이지에서 간편견적을 내 보면 알아서 척척 계산까지 해준다. 그렇게 보고 나면 나의 현실이 물밀듯 밀려오며 다시 일년만 더 참아보자고 생각하게 된다.


올해 초 부터는 가족들은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운지 가족이 사는 지역으로 직장을 옮겨 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시곤 한다. 그곳은 여기보다 큰 지방이라서 대부분의 버스 간격이 15-20분이다. 터미널이나 역으로 이동하기 편한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 누리는 문화적인 접근성, 혜택 등이 더욱 다양하다.겨우 집에서 한시간 남짓한 도시인데 자차 구입이 지금처럼 필수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도 솔직히 그런 제안이 솔깃하다.


그렇지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쌓은 내 나름의 경력, 동료와의 관계,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는 일을 다시 꾸려야 한다. 연봉은 그 지역에서도 거의 오르지 않는다. 부동산 시세가 더 비싼 지역이라서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비슷한 환경으로 가려면 몇천을 더 얹고 관리비도 더 내야 한다. 오히려 생활 수준은 지금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부모님 댁에 다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는 너무 쉬운 발상이다. 이미 난 독립해서 내 삶과 내 가정을 꾸린 1인 가장이다. 나와 내 가족 모두 바라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도 이런 고민이 가능한 나는 이 지역에서 혜택받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나는 30분 정도의 거리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의 신체와 체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택시를 이용할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혼자 가기 어려운 장소를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할만한 친절한 친척과 지인들이 있다. 하지만 지방에 살더라도 개인적인 행운이나 혜택 없이 대중교통을 누릴 자유가 필요하다. 교통 약자에게 지방에서 사는 일은 많은 순간 가혹한 일이다.



아직 나는 내 삶을 어디서 정착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삶을 꾸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좀더 편하고 풍요롭기 바란다.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고 언제 버스가 오는지 내가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쉽게 알고 싶다. 버스가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에 택시 타는 일을 줄이고 싶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큰 도시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리는 혜택을 당연하게 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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