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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31. 2018

29. 혼자, 또는 함께

한 해을 돌아보며, 한 해를 바라보며

벌써 한 해를 다 채웠다. 예전에 엄마에게서 나이가 들면 일주일, 한달, 일년이 지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한 해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란 소리를 들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많이 젊어서 그랬는지, 하루를 견디는 것조차 버거워서 그랬는지 그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 이야기가 어떤 뜻이었는지 공감된다. 반복되는 일상, 하루나 일주일, 한 달을 돌아보기에도 벅찬 삶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저만치 흘러 있게 되니까. 그만큼 엄마의 인생은 여유가 없고 변화하기도 힘들었겠지.


나 또한 이번 해가 그랬다. 아등바등 버텨오며 목표하던 욕심, 쥐고 있던 것을 놓아도 어려웠다. 일상을 유지하기조차 벅찬 기분이었다. 일상이란걸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참 많았다. 어떤 때는 눈물도 안 날 정도로 먹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상에 나 홀로 뚝 떨어진 느낌이기도 했고 삶을 유지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홀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특히 이게 지방에 사는 여성의 삶일 때 얼마나 각박한지 말하고 싶어서였다. 아직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쓰지 못한 소재들도 있고, 중복되는 소재지만 생각할 수록 화가 나서, 갑갑해서 또 쓰는 소재들도 있다. 그리고 쓰려고 시도했지만 몇 번 쓰다가 벅차서 놓아버린 그림책 같은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불평 불만이 가득한 이야기, 신세한탄, 극복하는 이야기 말고 나의 다른 면면에 관한 것들을. 우리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다는 아니듯 나도 그렇다. 나도 긍정적이고 살만한 즐거움을 가지기도 한 인간이다. 다만 그걸 내가 조금 늦게 깨달았을 뿐인걸.




내 다른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상담을 받고 있다. 이번 상담에선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게 되었다.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 사건과 불편함을 떨치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에게 편안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평화로운 일상에 불편함이 찾아왔을 때 다시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요.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듣던 소리인데 이번 상담에서는 유난히도 그 말이 크게 들렸다. 나는 부정어로 생각하고 부정어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편함이 기본값이고, 안 불편한 방법을 고민한 거였다. 그런데 이 말은 편안함을 기본값으로 둔 말이었다. 불편함에서 도망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편안함을 되찾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더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상담을 받고 나와서 내 삶을 더욱 긍정어로 바꿔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당연히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어차피 해내야 한다면 편안한 마음인 쪽이 내 삶에 더 좋은 방항일 거란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 상담 내용을 정리하고 올 해를 정리해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부분들로 나를 힘들게 하기 보가는 내가 즐겁고 편안했던 일, 내가 한 해 동안 배울 수 있던 일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 애인을 만난 일. 좋은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행복했다.

- 새로운 장르의 책을 읽고 좋은 책을 많이 알게 된 것. 에세이와 아동문학의 세계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 상담을 시작한 일. 어둡고 힘든 부분을 털어놓고 인정하는 것으로도 스스로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 새 차를 산 것. 왜 이제야 샀을까 하는 마음이다. 삶의 범위가 달라졌다.

- 부모와의 관계를 바꾸기로 마음 먹은 것.

 

이런 일들을 쭉 적어보는데 고마웠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떠오른 건 애인이었다. 늘 나를 긍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도 삶은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 줬다. 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변화를 바랄 때도, 내가 상담을 다녀와서 내 가장 깊은 곳을 이야기할 때도, 입원을 해서 보호자가 필요할 때도, 첫 차를 구입하고 운전을 배울 때도. 애인이 나에게 내가 곁에 있어서 많은 걸 배우고 행복했다고 이야기 해주었듯이 나도 그가 그런 존재였다.


새로운 것을 알 때마다 권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해보라고 말해주는 동생도 고마웠다. 생각이 많은 성격인데 덕분에 브런치도 시작했고 새로운 모임도 가 보고 망설이던 것도 해봤다. 직장에서 고민을 함께 나누고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나눠줬던 부장님과 동료 언니도 고마웠다. 업무적인 보탬과 지지도 많은 도움이 됐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정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덕분에 직장에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모임에서 내가 쉬고 싶다며 거의 일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신 분들이 고마웠다. 지속하고 있던 모임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에 지지하고 서로에게 애썼다고 말해주는 분위기여서 즐거웠다. 새로운 모임에서 어떤 분이 내게 오지은 작가의 ‘익숙한 새벽 세 시’를 알려준 덕에 여러 에세이를 찾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내가 아동문학 세계의 즐거움을 알게 됐을 때, 책을 찾아 추천해준 주변 사람들도 고마웠다.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sns의 어떤분이 지속적으로  아동문학 관련 글을 올려주신 덕에 보게 된 책들도 많아 행복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 해의 마지막에 쯤에 새 차를 사게 된 것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내 스케줄에 맞춰 차를 사게 해준 영업 직원분, 함께 차를 보러 다니고 관리하고 운전연수에 도움을 준 애인, 초보운전이 주차를 헤매며 비상등을 켜고 진땀뺄 때 묵묵히 기다려 준 다른 운전자 분들.


이렇게 줄줄이 말하고 나니 시상식에서 수상소감 발표하는 것 같다. 연예인들이 그 짧은 소감 발표 시간에 한분 한분의 이름과 고마운 점들을 이야기하는지 이해될 정도로 새삼 나와 함께해 준 사람들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나하나 돌아보고 나니 생각보다 올 한 해 동안 고마운 일들, 주변에 지지 받았던 일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늘 SWOT 분석마냥 올해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어떻게 목표를 정할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일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생각보다 혼자만 가득하게 살지는 않았는데 혼자 모든 것을 견디려고 했구나. 생각보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구나. 나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짧은 듯 길게 느껴지는 한 해가 시작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내일이겠지만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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