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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16. 2019

노동자 부부의 가사노동

나는 2인 가구로 살고 있다. 나와 남편 두 성인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내가 1인 가구로 살던 때에 나와 남편은 각자 방 하나, 거실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 세탁실 겸 베란다 하나인 집에 살고 있었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갖추고 살았을 뿐이었는데도 때맞춰 할 일이 많아서 늘 허덕였다. 주변에선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 살아도 그렇게 바쁜데 큰 집 가면 큰일 나겠다고 놀리곤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둘이 살면 그래도 두 어른이 한 집에 사는 거니깐 ‘역할 분배만 잘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입주 청소를 하고 가전과 가구를 들이고 집을 정돈하던 팍팍한 일들이 지나갔다. 이렇게까지 팍팍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직장에 반차를 내야하는 일도 있었고, 일정이 맞지 않는 날에는 배송 혹은 설치 기사님께 집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고 양해를 구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한 가지 희망은 그래도 집을 다 정돈하고 안정되고나면 더 넓어진 공간을 잘 즐기며 살 거란 생각이었다. 아직도 꿈속에 살고 있던 거였다.    


우리 부부는 직장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맞벌이 노동자다. 그 말은 주중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노동시간으로 쓰고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수면시간으로 쓴다는 뜻이다. 혼자 살다 둘이 살아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건 역할분배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사노동을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이 있더라도 이미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온 몸과 마음은 다시 집에 와서 노동할 에너지도 부족했다. 그 와중에 살림은 배로 늘었다.    



살림이 늘어나면서 나는 세탁기 이외에도 스타일러와 건조기를 구입했다. 빨래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정장이나 운동화는 세탁소에 맡기고 손빨래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가전을 관리하는 일이 늘어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스타일러 안의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생길게 뻔했고, 공간부족으로 실내로 들어오게 된 건조기는 매번 물통과 먼지필터를 갈아줘야했다. 기계가 늘었지만 여전히 빨래를 분류해서 세탁기에 넣고, 기다리고, 건조기에 넣을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고 다시 기다려 마른 빨래를 정리하는 일은 늘 고되다.    


먹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삶을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 냉장고, 김치냉장고, 칼 살균기, 에어프라이어, 전자렌지, 토스트기, 커피포트 등 수많은 가전들을 구입했다. 하지만 식재료를 구입하고 관리하는 일,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일, 식기나 가전들을 관리하는 일들은 만만치 않았다. 식재료 정기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자니 출장이나 회식, 개인적인 약속들이 이어지면 상해서 버리는 일이 잦아 취소했다. 시가에서 보내주는 밑반찬들도 반 이상 상해서 버리곤 한다. 어쩌다 때가 맞아서 같이 식사를 할 때면 대부분 식사준비와 정리에 투자할 에너지가 부족하고, 뭐라도 해먹으려고 하면 두세 시간이 홀랑 끼니를 챙기기 위해 날아가곤 한다. 시간을 줄여보고자 밀키트라도 사봤지만 차라리 외식이 더 간편하고 싸단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코스트코라는 신세계에 발을 디뎠다.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눈 꼭 감고 다녀온다. 가면 무엇보다도 대용량 식품들을 잔뜩 사오곤 한다. 인터넷 주문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하나하나 검색하고 결제하고 택배 받아서 뜯고 택배상자 버리는 에너지보다 가끔 가서 왕창 사오는 게 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냉동 가능한 식재료들은 소분해서 얼려놓고 귀찮을 때 먹을 레토르트 식품들도 잔뜩 창고에 쑤셔 넣으면 든든하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햇반이다. 밥해먹는 모든 과정 중에서 가장 힘빠지는 일이 우리 부부는 밥을 하는 일이다. 쌀을 사서 통에 보관하고, 그 쌀을 씻어서 압력밥솥에 넣어놓고, 밥을 먹고 나면 항상 어중간하게 남아서 얼려놓고, 또 그 밥솥을 설거지해야하는 이 모든 과정을 하는 게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햇반 하나면 이 모든 과정을 줄일 수 있다니. 밥을 많이 해서 소분한 뒤 냉동하는 방법도 써봤는데 여전히 부산스럽게 해야할 일들이 많다. 햇반이 최고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내가 가장 스트레스인 건 청소다. 옷 관리는 모아서 하루 날 잡아 하면 어떻게든 해결되고 식사는 정 힘들면 외식하면 된다. 그런데 만성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에게 깨끗한 집은 필수템이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에 선반청소까지 해야 평온한 나의 코는 혼자 살던 시절에도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집이 코딱지만 해서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낼 만했지. 그런데 집 평수가 커지고 살림살이가 늘어나니 청소 시간이 배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절대적인 체력이 부족하고 상대적인 노동시간이 적은 내가 자꾸 청소독박을 쓰는 날이 늘어나게 됐다. 나와 남편 가사노동 갈등순위 1위가 청소가 되었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일은 많고 체력은 딸리는데 남편이 집에 없는 시간이 많으니까. 남편은 가사노동에 있어 성실한 파트너이지만 일단 집에 와야 뭐든 할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가사노동이 고되게 느껴지는 건 내 체력이 부족해서일까. 많은 시간 운동도 하고 식이조절도 하면서 건강에 노력해봤지만 체력을 키우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 아직 아이템이 부족한 걸까?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는 아직 사지 않았는데, 가전을 더 사고 나면 효율이 늘어서 편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기기를 관리하는 일이 추가되고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할 몫이 의미 있게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럼 가사노동 스킬이 부족하니 컨설팅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물론 손이 빨라지면 중요하겠지. 하지만 내 체력을 쓰는 건 여전하잖아. 그러면 전문가의 손길을 요청해볼까? 잘 버는 것도 아니면서 정기적인 인력을 고용하는 걸 정말 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왜 이건 늘 개인의 노력이 되어야 해? 사실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면, 줄어든 시간만큼 나를 돌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내 체력과 시간과 금전적인 고민을 덜 해가며 살 수 있을 텐데. 정말 기계에게 전문가에게 외주를 주는 것만이 답은 아닌데 언제까지 서로를 갈아가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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