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에 엄마를 잠깐 만났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친척들의 안부, 엄마 친구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을 하기 전 준비 단계인 셈이었다. 나는 부러 잘 듣는 척 하는 한편 이 자리가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안 그러려고 해도 엄마와의 자리는 어떤 불편함을 주곤 한다.
엄마 친구분의 딸 이야기로 엄마가 하고 싶던 이야기가 시작됐다. 가족의 문제로 갈등이 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이 나서 친구분과 자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셨다. 사실 그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딸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단 구절에서는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단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을때 그는 어떤 반응을 했나.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엄마는 ‘내가 딸 잘못 키운 것 같은 소리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지. 그때 내 마음에 칼을 꽂아 놓고 남의 집 딸은 그리 안타까운지. 참 알수 없는 일이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내게 당당하게 용돈을 요구하는 일은 엄마에겐 당연한 일이었다고 했다. 내가 딸을 이 정도나 키웠는데, 그정도 보상은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기뻤다고 했다. 내가 금액이 부담스럽다고 줄이면 안 되냐고 이야기했을 때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이고 내게 서운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해 두해가 지나면서 뭔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꼈다고. 딸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딸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보며 ‘내가 잘못하고 있나?’ 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이제껏 그토록 당연하게 나를 밀어붙여 왔다. 엄마의 부탁을 가장한 강요는 서슴없이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친척들까지 챙기라며 나를 닦달했다. 작년 3월,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게 서운하다며 용돈을 끊어도 된다고 문자를 보냈던 엄마는 내가 정말 용돈을 끊어버리자 폭언으로 가득찬 문자를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내가 말한다고 용돈을 끊냐면서. 엄마가 가난하게 사는 건 안 보이냐면서. 그러더니 갑자기 아무 예고도 없이 집에 들이닥쳐서 용돈 문제는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면 내 집에 침입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처럼.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작년 추석에는 다시 원래의 엄마로 되돌아왔다. 용돈 액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집어던졌다. 이번 사과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이야기는 계속 됐다. 엄마는 자신의 부모를 돌아보며 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내 기억에도 내 외조부모가 그랬듯이 엄마의 기억에도 자신의 부모는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의 유년시절은 부모 덕에 행복했고 따뜻한 경험이었다고. 그런 경험을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내가 줄곧 해왔던 생각이었다. 어떻게 내 외조부모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엄마같은 사람이 나와 내 부모가 됐는지. 아빠야 학대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지만, 엄마는 내게 정말 왜 그랬을까.
엄마는 이번에 재취직을 하며 자신을 돌아봤다고 했다. 나처럼 첫월급을 받자마자 매달 월급날 당일에 돈을 보내는 내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을 해봤다고 했다. 엄마 자신은 수 년 동안 매달 그 일을 할수 있었을까 돌아보았다고 했다. 그 생각을 하니 나에게 매우 미안했다고, 내게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 엄마는 ‘딸이 취직을 하게 되면 집 생각은 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나와 다르게 여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취직을 하니 내 덕을 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그때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다 잊었다고 했다. 그동안 어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하니 정말 잘못하고 있단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런 저런 마음이 뒤섞여 눈물이 났다. 명절 전이라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여러 가지 소음이 뒤섞인 카페에서 시선을 끌고 싶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보면서 이제는 집이나 엄마의 생각은 하지 말고 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는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이 말이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면, 엄마는 반성적 사고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도돌이표처럼 어느새 그 자리에 되돌아올 뿐. 지금은 이렇게 말해도 언제 또 예전의 엄마가 되어 나를 공격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번 반성은 조금 더 오래 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나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 친구 딸처럼 나도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면서 배운 것중 하나가 있다. 나는 엄마나 동생에게 거절하기 힘들어 한다는 거였다. 내가 사정이 되고 여유롭고 그 부탁이 가능한 범위일 때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 부탁이 나에게 무리가 되고 힘든 순간에도 나는 그걸 들어주는 것이 내 의무란 생각이 든다. 들어주면 그걸 해내느라 숨이 차고 벅찬 느낌이 들고, 어렵게 거절을 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기분에 힘들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그 죄책감을 피하려고 이제껏 무리해서 내게 주어진 것들을 해내느라 이제는 많이 지쳐있다.
왜 이런 것들은 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돌아보니 내 안에 엄마나 동생의 존재가 너무 커서라고 생각이 든다. 그나마 동생은 내 눈치를 보는 편이라 그 부탁이 과하지 않은 편이지만 엄마는 달랐다. 그리고 연락이 올 때면 그 부탁이 작은지 큰지 예상하기가 어려워서 무슨 말을 할까 두려웠다. 속이 울렁거리고 연락을 피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내가 힘들면 거절을 해도 되고 할수 없는 일은 안 해도 되는 건데 그것 조차 나에게는 너무 힘이 드는 일이다. 이제껏 안 해도 된다는 선택지가 내 안에 존재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하는 중이다. 내 안에서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엄마의 존재를 작아지게 하고 싶다. 그래서 엄마에게 연락이 와도, 엄마가 나에게 어떤 부탁을 해도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엄마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해 놨다. 고양이라고. 집 근처에 내가 밥을 주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 고양이 생각을 하면서 저장해놨다.
그 고양이 이름은 보스. 얘는 나와 마주치기만 하면 야옹거리면서 밥을 달라고 한다. 사료를 주면 바로 하악질을 해서 나를 쫓아내면서도 가려고 하면 야옹거리면서 부른다. 그렇게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어정쩡한 거리에서 보스를 기다려서 다 먹으면 그냥 가버리고 부족하면 다시 야옹거리는 고양이다. 딱 보스란 이름이 맞아. 그런데 이 고양이가 하악질을 해도 야옹거려도 나는 이 고양이가 위협적이지도, 싫지도 않다.
엄마도 딱 그 고양이만큼이라도 됐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고양이라고 저장한 거다. 그냥 그렇다고. 나는 지금 노력 중이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해줘서 고맙고 나도 노력 중이니까 엄마가 이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엄마는 설 선물이라며 나에게 상자를 하나 안겨 줬다. 설이라 과일을 사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과일도 몇 가지 챙겨 줬다. 엄마와 인사를 하고 운전하는 길에 엄마가 넣었다는 편지를 읽으려고 상자를 열었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편지였다. 카페에서 엄마가 이야기했던 사과의 편지였다. 그리고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편지에는 엄마가 첫 월급을 받고 내게 주는 돈이라고 했다. 취직 선물로 신발을 받아서 고마웠다고, 그래서 나도 새 신발을 샀으면 좋겠다며 넣어준 돈이었다.
엄마는 이 돈을 넣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 상상을 하다 그만 두었다. 엄마가 내가 그 돈을 주던 마음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나도 그걸 상상해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 돈을 받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써 왔을까. 나는 첫 월급부터 매달 돈을 부쳐 왔기에 이게 얼마나 고민되는 일인지 가늠이 된다. 특히 첫 월급은 수입이 처음으로 늘어나는 일이라 적은 돈이라도 쓰고 싶은 곳, 써야 할 곳이 많은 돈이다. 그중 일부를 빼놓는 건 그만큼 신경쓰고 고민한 일이니까. 나는 이 돈을 못 쓰겠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가방 한쪽에 봉투를 넣어놓고 아직 다시 꺼내지 못했다. 첫월급을 받던 내 생각이 나서. 아직 편안하게 그 때를 떠올리지 못하는 내가 이 돈을 편하게 꺼내지 못할 것 같아서.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언젠가는 내 첫 월급에 대한 기억도 엄마의 첫 월급에 대한 기억도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느 하나의 기억도 쉽지 않고 가볍지 않아서 떠올리고 나면 온 몸의 진이 다 빠진다. 그래서 설 연휴 내내 푹 쉬었는데도 일기를 쓰기도 글을 쓰기도 어려웠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을 한 날에는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서 어떤 생각을 할 여유도 잘 나지 않았다. 잠을 거의 못 자기도 했다. 모두 잘 지나가기를. 고양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편안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