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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Feb 01. 2019

명절 용돈은 의무가 아니야.

죄책감, 책임감은 누구의 몫?

나의 지긋지긋한 가족 문제와 돈 문제는 설날에도 빠질 수 없다. 이번에는 조금 복잡한 문제에 부딪쳤다. 일단 나는 명절에 안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추석에는 안 갔지만 미리 부모님 댁에 방문했다. 그래서 애인과 내가 준비한 명절 선물과 함께 양가 할머니와 엄마의 용돈 봉투를 준비했다. 그때 엄마가 내 앞에서 봉투를 열어 세보고는 엄마 성에 차지 않는 용돈이라 난리가 났었지. 그런데 올해는 작년보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더 안 좋아서 집에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마음 한 구석에서는 한 가지 고민이 솟았다.


그래서, 용돈은?


아빠는 안 줄거다. 개미 눈꼽 만큼도 하기 싫다. 엊그저께 있던 생일도 안 챙긴 마당에 무슨 용돈까지 챙길 필요가 있을까.


양가 할머니들은 조금 생각이 든다. 근데 아빠쪽 할머니는 직접 가서 드리자니 거기 모일 아빠랑 친가 친척일가가 부담스럽다. 가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전부칠게 뻔한데다 그러자고 명절 거부힌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엄마보고 전하라고 남기자니 뭐 딱히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엄마쪽 할머니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나는 외할머니를 꽤 좋아한다. 열두명의 손주들 중 특별 대우도 안 받았고 차별도 안 받았다. 외할머니는 그래도 날 항상 예뻐했단 마음이 있다. 그래서 사실은 부드러운 전통간식도 미리 예약주문해 놨었다. 따로 찾아가려고.


엄마가 문제다.

세 가지 고민이 들었다. 예전처럼 할까, 줄여서 할까, 하지 말까. 예전처럼 할까는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이고, 줄여서 할까는 예전처럼 주기에는 부담이기 때문이거, 하지 말까는 아직도 내가 엄마에게 끌려다녀서 용돈을 주는 기분이라서.




주던대로 주면 엄마와 편할 거 같다. 그런데 난 아까워 죽겠지. 줄여서 주면 또 엄마가 뭐라 생각할지 불안하다. 안 주느니만도 못할 것 같다. 날 비난하거나 죽는 소리를 하며 내 죄책감을 자극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넌더리가 난다. 그래서 어차피 욕을 먹을 바에야 주고 먹느니 안 주고 욕을 먹는게 낫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다 접었다. 나 아직도 엄마의 기준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있잖아. 아차 싶었다. 이런 식이면 얼마를 주어도 또는 주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할 거다.


엄마에겐 왜 외할머니 만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들까. 엄마에겐 왜 그 마음이 어려울까. 슬펐다. 엄마에게도 가져보고 싶은 감정인데 잘 되지 않으니 슬프고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그만큼 많이 닫혀 있구나.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구나. 내 마음 안에서 덜어낼 부분이 많구나.


가장 크게 덜어낼 부분은 죄책감과 책임감이다. 엄마가 명절을 준비하려면 우리 집 형편에 돈이 없을 거다. 그래서 명절 보너스도 받는 딸이 엄마에게 보탬이 되어야 하는 의무감이 있다. 그런 걸 항상 엄마가 강조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명절을 잘 피했는데 그러지 못해 엄마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이 있다. 대신 엄마의 수고를 위로해야 한다는 걸 용돈으로 채우고 싶은 거다. 그래서 저번 추석엔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용돈과 선물을 샀던 거고.


하지만 이건 엄마의 능력 안에서 해결할 일이다. 부모님 두분 다 성인이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은 그분들이 조정할 일이지 내가 채워줘야 할 의무는 아니다. 그게 성인의 책임인 거다. 그리고 엄마의 명절 노동은 내탓이 아니다. 엄마에게 위로금을 준다면 엄마네 시가나 아빠가 줘야할 일이다. 그사람들도 입 싹 닫고 엄마를 착취하는 걸 왜 내가 동동거리면서 못 줘서 안달일 일인가. 


나는 여러 번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돕겠다고 했다. 엄마는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철저히 가부장제를 수호한다. 나를 비난하고 앞장서서 나쁜년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를 구출하고 빼내지 못한 것에 대해 내가 부채감 가질 일은 아니다. 상황에 대한 책임감은 내가 오롯이 혼자 감당할 몫이 아니다.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참고 그 불구덩이에 같이 뛰어드는 것도 내 몫이 아니다. 결국 그런 부채감 때문에 엄마에게 용돈을 줄 필욘 없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에게 어느정도 마음을 열수 있는 걸까. 내가 엄마에게 가진 마음이 그런 불편한 마음만은 아니다. 내가 엄마가 명절을 즐겁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만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어느정도일까. 엄마가 이 돈을 내 마음 안 드는 곳에 쓰던, 나에게 이런 저런 불만을 토해내며 나를 성토하던 내가 영향을 받지 않을만한 금액은 어느정도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답이 어느정도 내려졌다. 약소하지만 나는 이정도면 편안하게 주고 엄마의 반응에 따라 기분이 좋거나 나빠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편안한 만큼이면 된다. 과하게 노력할 필요 없다. 나중에 내가 엄마에게 마음이 더 가면 이거보다 더 주더라도 안 아깝겠지. 그런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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