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살아서 알까.
그러면 행복할까?
부모가 준 자존감이 그만한가 해서 미안하고
서둘지 말고 충분히 사랑하고
엄마가 새벽, 내가 잠든 사이 톡을 보냈다. 동생 말론 그때 아빠와 만취인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지. 나는 일요일 아침 핸드폰 바탕화면에 뜬 내용을 보고 주말 기분을 다 망쳤다. 저런 이야기가 나온 맥락이 있으니까.
시작은 애인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엄마는 애인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얼굴에 떠오른 불쾌한 기색은 숨기지 않은 채로. 이 시간을 위해 옷을 고르고,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까지 챙겨 온 사람에게 엄마는 매우 무례했다. 본인 소원은 이혼이라며 더 만나보란 소리는 대체 왜 하는지. 딸의 애인과 처음으로 정식으로 만나는 자리에 그런 말을 해도 된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며칠 후 전화통화에선 결혼을 하기엔 빠르단 이야기를 했다. 삼십 대인 내가 결혼이 빠른 나이인가? 이미 수년 전에 독립해서 모든 생활을 스스로 꾸리는 내가? 모순되게도 아이를 낳아야 하니 내년이나 내후년엔 꼭 결혼해야 늦지 않는단다. 내가 언제 배우자와 삶을 함께할지, 자녀를 가질지 여부는 내 몫이다. 엄마라는 이유로 내 삶을 대신 살지도 않을 사람이 그런 말을 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데 황당했다. 그러면서 굳이 보태주지 않으니 스스로 알아서 하는데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불쾌했다. 아니, 보태줄 것도 아니면서 내 인생계획까지 설계했단 말이야?
이런 말까지 듣고서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상황을 원만하게 마무리짓고 싶었다. 나에겐 해나갈 과제가 많았다. 연을 끊어버린 아버지 문제, 촉박한 결혼식 날짜, 상견례 문제가 그랬다. 엄마와도 이제야 조금 사이가 나아진 것 같았는데 도루묵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참는 줄도 잘 모르고 있었다. 엄마랑 잘 지내고 싶어서 엄마의 간섭에서 날 보호하지 못했으니.
그러나 상쾌한 일요일에 저딴 톡을 보는 순간 화가 치솟았다. 모 방송사 앵커의 유명한 발언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안 맞아.
나보다 더 산 게 뭐? 나이가 현명함을 보장해주나?
내 행복을 왜 본인 결혼생활에 투영해서 비하해?
내게 실컷 폭언해놓고, 자존감 운운할 자격 있어?
내 고민을 왜 본인 기준대로 서두르다고 판단해?
이렇게 구구절절 화가 나서 장문의 답을 보냈다. 내 자존감과 결정은 내 몫이고 엄마에게 폄하당하는 게 불쾌하다. 엄마 결정대로 나를 흔들어대고 내가 흔들리는 게 지겹다. 엄마의 감정은 엄마 거고 내 몫이 아니다. 내 몫은 내가 알아서 한다.
몇 번의 의미 없는 주고받기가 오간 후, 문득 지겨워져서 더 답을 하지 않았다. 저녁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땐 더욱 적나라한 본심과 마주했다. 집안이 좀 떨어져도 내 딸이 이렇게 능력이 좋은데, 더 좋은 조건의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급하게 결정하는 건 집에서 도피하는 행동이냐고. 역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반복이었다. 내 판단에 대해 비이성적이라고 부르는 건 불쾌하다. 내 결정은 내 거고 엄마의 판단이 필요하거나 허락을 받고 싶지 않다. 무례하고 기분 나쁜 말은 엄마 선에서 처리하고 내게 말하지 말아라. 내가 들어줄 이유도 참아줄 이유도 없으니 듣지 않겠다.
그랬더니 나보고 예민하단다. 이 문제에 대해 예전부터 왜 날카롭게 구는지 모르겠고, 애인의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다. 잘 따지고 판단한 거 맞냐고도 했다.
그렇게 무례하게 물으니까 날카롭지. 그럼 아침부터 그런 거 보내 놓고 지금 이렇게 구구절절 기분 나쁘게 만들어놓고 내가 친절하게 애인 좋은 점 이야기하겠나. 그리고 내가 애인의 좋은 점이 뭐든 엄마에게 검증받고 허락 사인받을 일이 아니다.
이게 도통 삼십 대와 오십 대의 대화가 맞는지.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결혼을 결정했을 때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그래도 해야겠다는 단단한 마음을 먹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슬펐다. 엄마가 나를 대하는 방식은 단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의 선택과 다르면 내 결정을 무시하고, 폄하하고 그러면서도 이 모든 말들이 모두 자신의 선의라고 믿는 잔인함이. 내가 단호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나를 착하고 불쌍한 딸로 어르고 달래며 자신의 아래에 둬야 하는 무례함이. 모두 지긋지긋하다.
차라리 엄마가 그토록 나에게 구구절절 요구했던 돈 얘기나 해볼걸 싶었다. 그렇게 내게 말하고 싶어 못 견디겠으면 돈이나 주고 이야기하라고. 돈으로라도 보상받아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지난하게 마주할 무례의 순간이 조금은 버틸만해질 수도 있겠다. 상담이라도 돈 걱정하지 않고 받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런 걸로 속이 풀리진 않을 테니 나는 여전히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 이런 불쾌함 때문에 내 삶의 설레고 따뜻한 부분을 잊지 않으면서. 앞으로 닥쳐올 일에 미리 겁내지 않고, 내 삶과 내 마음을 지키며 살고 싶다.
어차피 내 삶을 살건 나이고, 내 삶을 가장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나이니, 내가 가장 최선의 선택을 고심해서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택에 따른 결과도 내 몫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위한 결정을 가장 잘할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선택을 간섭받거나 양보하고 싶지 않다. 엄마 또한 본인에게 만족스러운 결괏값을 나에게 요구할 뿐이지, 내 행복이 뭔지도 나에게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잖아. 그런 사람에게 이제껏 결정의 권리가 있다고 믿었던 게 내 삶을 그토록 시들게 했다. 지금이라도 그러지 않으려 한다. 내 삶을 온전히 누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