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도 Mar 16. 2019

삶은 한 편의 재난영화처럼

간만의 평온한 오후다. 아침 일찍 눈을 떴지만 이불속에서 한껏 게으름을 만끽하고 점심때가 다 되사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이 파랗고 맑아서 창문을 모두 연 다음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렸다. 잠시 밖으로 나가 드라이브를 하고 오는 길에 딸기도 샀다. 이제 정말 봄이 오는 것 같다. 날도 맑으니 잠깐 산책을 하며 단 것도 먹고 책을 봐도 상쾌할 것 같았다. 이불 빨래를 하나 더 돌려놓고 집 밖을 나섰다.


동네 카페에 들어서니 자리에 앉게 된 손님은 나뿐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메뉴를 주문하고 초록초록한 화분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달달한 디저트 하나를 먹으며 책을 읽고 폰을 보고 나니 조금 아쉬웠다. 디저트 하나를 더 골라 먹었다. 포장 손님이 대부분인 매장이라 카페에 오가는 손님들이 디저트 고르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들의 뒷모습에서 신중하고도 진지한 선택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귀엽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한 달 만에 상담을 다녀왔다. 상담 선생님께선 내 얼굴이 많이 밝아 보인다고 기뻐하셨다. 나는 나의 고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지만 고민 외의 지점에 대한 질문에선 “특별한 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오늘의 나처럼 주말은 느긋했고 평일은 바빴지만 제때 퇴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다 할 사건도 없었다.


고민이 한가득이었던 건 최근 한 달간 있던 변화 때문이었다. 큰일이 없었지만 눈물도 나고 지쳐서 빵 터진 날도 있었다. 원하는 다른 업무가 있어서 운 좋게 받았고 적응 중이었다. 적응하는 시간이 괴로운 거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괴롭고 긴장이 됐다. 그럭저럭 일이 굴러가고 순탄한데 고통스러웠다. 난 왜 이모양일까.


상담 선생님은 사실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데도 예전의 기억대로 행동하는 건지 돌아보라고 조언하셨다. 내가 정말 감당 못할 일에 괴로워하는지, 예전의 내가 괴로웠으니 지금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예전과 다르게 일상이 평온해졌고, 싫은 일은 잘라낼 줄도 알게 됐고, 편안해진 부분이 많은데 부정적인 감정만 생각하지는 않는지. 내 스스로 성장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닌지. 예전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동의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인 기분이었다. 최근 몇 년간의 나와 요즘의 나는 꽤 달라졌다. 넘쳐흐르는 업무와 일들을 갈아타서 월급은 많이 귀여워졌지만 출근 시간은 좀 늦어지고 퇴근은 조금 이르게 할 수 있게 됐다. 이걸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라고 하지. 가족 간 관계에서도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힘든 부분은 선을 그어뒀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조금 징징이가 되었다. 힘들어서 집에서 좀 울고 왔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내 이야기를 가볍게 말하니 사람들도 무겁지 않게 조언해주고 들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 상담 선생님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예전에는 속으로만 쌓아뒀는데 힘든 걸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해소 방법이라고. 건강해진 증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불안해질까. 돌아보다 보니 나는 내 삶을 재난영화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난 재난영화의 뻔한 클리셰를 싫어한다. 세상이 망해가는 조짐이 보이는데 사람들은 태평하기만 하다. 그런 위장된 평화가 끝날 것을 아는 나는 불안하기만 하다. 결국 ‘그럴 줄 알았어.’로 이어지는 불쾌함을 나는 도통 즐기기 어렵다.


그 불쾌함의 이유는 내 안에 있다. 나는 내 일상이 평화로우면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 같다. 내 삶에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면 그게 큰 위기로 이어질 것 같다. 불안함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래 내 인생이 다 그렇지 뭐.’로 귀결되곤 한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위기감에 빠져있느라 변화의 즐거운 면을 바라보기 어렵다. 언젠가 올지 모르는 위기에 내가 잡아먹힐 것 같다.


여전히 안심이 안 돼서 상담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그래도 정말 잘못될지도 모르잖아요. 느긋하게 있는 게 날 속이는 거 아닐까요?”

“어차피 큰 사건이 온다면 불안한 기분으로 있는 것보단 즐겁게 있는 편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요?”

으... 설득당했어.




한편으론 내게 평온한 날이 주어졌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어서, 안전하다고 느낀 지 얼마 안 돼서 그렇단 생각도 들었다. 뭔가를 할 때 누려본 사람이 더 잘한다고. 당연히 누릴 걸 못 누려서 이게 어떤 건지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이전 동료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2017년도 업무폴더를 열었다. 폴더 안 빼곡하게 정리된 수많은 파일들을 보며 새삼 놀랐다. 그땐 내가 능력도 체력도 없이 일만 하면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때 일 년 내내 각종 병원을 드나들며 치료했던 염증들의 실체가 밝혀졌다. 마지막까지 일을 다 끝내고 다신 안 하겠다고 나가떨어진 게 당연했다. 그러면서 왜 난 힘들까 자첵하고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덕분에 지금은 그때보다 건강해졌다. 물론 월급은 귀여워졌고, 조금은 징징대는 사람이 됐지만 내가 좀 사랑스러워졌다. 나를 조금이라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참 다행이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나는 이제 조금 더 나를 긍정하며 살고 싶다. 아직 풀리지 않은 것들, 미뤄온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해내고 싶다. 조급해하지 않고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오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도 올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