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나에게 꼭 해주었어야 할 말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을 들어도 어떤 의미인지 몰랐을 거다. 어렴풋이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해 준 기억이 나기는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는걸. 지금도 내가 이걸 온전히 마음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진 못하고 흔들릴 때가 있으니까. 그래도 매일 나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그런 걸로 내 가치가 결정되지 않아.”라고.
몇 년 전의 나는 매우 불안했다. 안 그런 척 주변 사람들도 잘 속이고 나도 속였다. 그러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순간 불안해진 내 약한 틈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충분히 건강했다면 그저 튕겨나갔을 그런 사람들. 그중 한 사람이 그때의 내겐 아주 큰 파도 같았다.
당시의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나에게만 보이는 은근한 관심, 분위기는 그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와 잘해보고 싶다고, 내가 참 좋다고 말할 때는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고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 이유를 말하지 않고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하루 일과나 힘든 일들을 들어주곤 했다. 내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 몸매를 숨 쉬듯 지적하다가도 나의 기분을 풀어주는 데는 최선을 다했다. 잠수를 타서 내 불안함을 한껏 자극하고는 왕복 두 시간의 거리를 운전해 와서는 내 기분을 풀어주고 돌아가곤 했다. 그게 나는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자존심상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걸 인정하면 내가 발끝부터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 사랑받지 않는다고, 겨우 그 사실로 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그는 참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사실 인정하기 싫은 게 하나 더 있다. 나 또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단 거다. 물론 내가 그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의 어떤 면들에 매력을 느꼈단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에 대한 호감이나 매력을 빌미로 나 자신을 ‘그를 짝사랑하는 피해자’로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배려하려고 하는데, 그는 전혀 내 입장을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다 잘못했고 그 사람이 다 이상해.’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해서 참고 기다린 게 아니었다. 그에게 끌렸던 당시의 나는 내가 매우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란 걸 다른 사람에게 자꾸 인정받고 싶었다. 누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면 그런 것에 의지해서 자기 위안을 하곤 했다. 그를 사랑했다기 보단 ‘내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그’를 원했던 거다. 그래서 그가 내 모습이 질린다고 말했을 때 좀 화가 나고 짜증 났지만 그에 대한 호감은 싹 사라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필요한 건 정신과 약 또는 상담이었지 연애가 아니었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죄를 진 마음이 들고 불편하곤 했다. 다시 생각하면 괴로울까 봐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모른 척했지만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올 때면 그때의 불안함과 혼란이 몰려오곤 했다. ‘나 그때 참 형편없었구나.’란 마음이 들면 더욱 힘들었다. 잘 대처하지 못한 나에게도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 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다시 생각해보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 전의 그 사람이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한 건 맞다. 하지만 그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를 비난할 일 또한 아니다. 나도 나 나름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잘 살면 되고,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 살면 될 일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고 그 사람은 또 어떤 생각을 할진 모르겠지만 이제는 뭘 어쩔 것도 없는걸.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내가 아주 좋은 사람이어도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을 거다. 또는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도 뭐 어때. 이 세상엔 부족한 인간들 천지이니 좀 잘 살아보려고 노력할 수밖에. 난 특별한 인간도 아니고 그래서 불운이 나만 피해가지도 않는다. 나쁜 일은 내 존재에 따라서 일어나고 말고를 결정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이제 사랑이 주는 안락함을 알게 됐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나름의 발전을 해왔다. 그래서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르게 관계를 맺는다. 나를 지켜내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다. 불운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저 사람이 나를 존중하지도, 배려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면 그 사람을 거부할 힘이 생겼다. 또는 나를 사랑해주고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둘 여유도 생겼다.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애인과 지인들에게 만족하고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게 됐다.
애인과 나를 이해하려는 도구로 감정카드를 이용해봤다. 애인이 나를 향해 들어준 카드는 이런 거였다. 기쁜, 감동적인, 사랑스러운, 재미있는, 신나는, 기대되는, 편안한, 뿌듯한, 만족스러운, 행복한, 관심 있는, 설레는, 감사한, 용기 있는, 놀라운, 든든한, 열정적인. 긍정적인 단어로 가득한 카드를 받아 들고 나니 행복했다. 애인에게 내가 그런 사람으로 느껴지는 게 좋았고, 내가 애인에게 줄 수 있는 카드도 이런 말들이라서 즐거웠다.
몇 년 전, 당시의 내가 그 카드를 했다면 어땠을까. 떠올려보니 그때 그 관계를 일찌감치 접게 돼서 다행이었다. 당시의 내가 뽑았을 카드를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이제 그때의 나를 보듬고 위로해주고 싶다. 그리고 애인을 생각하며 “그래. 이런 느낌이 사랑이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나를 안아주고 싶다. 여기까지 오느라 참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