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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Jun 04. 2019

34. 결혼이라는 특권에 대해

하루짜리 휴가를 썼다. 상을 당하거나, 아파서 입원을 하거나, 휴가철 우르르 쓰는 며칠짜리 여행에 묻어가는 그런 휴가 말고 오롯이 개인 사정으로 쓰는 휴가였다. 생각해보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휴가를 쓰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휴가를 쓰면 내 사정을 구구절절 펼쳐 보이는 게 구차했다. 대체자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싫은 소리 들을 게 꺼려져서 이제껏 써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마음이 그리 무겁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겁게 다녀오란 격려의 말까지 들었다. 사유는 웨딩촬영이었다.


신혼여행은 여름휴가철에 잡은 것도 아니지만 이것 역시 주변의 축하를 받았다. 비행기 가격도 싸고 날도 좋을 때 가기 어려운데 잘 됐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없는 일주일 동안 직장 동료들의 일은 더 늘겠지만 다들 그 정도는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직장의 기혼자들은 한 번쯤은 거쳤을 일이었을 테니.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에도 그랬다. 엄마가 마침 생각났다며 외삼촌의 말을 전하셨다. 조카 중 가장 처음으로 결혼하니 가전을 하나 사주시겠단 거였다. 엄마는 자신의 동생이 정이 많다며 가장 크고 비싼 걸 사도 된단 이야기를 자랑스레 덧붙이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난 뭘 해드린 기억도 없는 외삼촌까지 내 결혼에 큰 보탬을 해주셨으니. 애인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애인의 할머니께서도 우리 신혼집에 놓을 가전을 이미 사셨다며 신혼집 결정되면 꼭 이야기하라고 당부하셨다.


감사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양가에서는 결혼을 계기로 나와 애인 두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상담 선생님은 결혼을 축하한다며 청첩장이 나오면 꼭 연락하라고 말씀하셨다. 지인들은 내 결혼식 날이 친한 지인들 모임 날이 되겠다며 축하해주었다. 친구들은 결혼 때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말해줬다. 이 모든 게 물 흐르듯 진행되는 모습이 어색하고도 기뻤다.




결혼 전 나는 고민이 많았다. 내 인생에 큰 이득도 없어 보이는 일 같았다. 감당할 일이 많을 것 같아 무서웠다. 애인과 삶을 같이하기 위해 결혼이 최선일까? 결혼하면 오는 압박은 어떻게 해? 아기는 꼭 가져야 하나? 내 경력은? 양가 간의 갈등이 생기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혼이 반년도 안 남은 이 시점은 지극히 평화롭다. 물 흐르듯 흘러간단게 이런 말인가 싶었다. 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창구가 없을 때 브런치에 구구절절할 말을 쓰곤 했는데 최근엔 크게 할 말도 없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크게 나쁠 게 없었다. 결혼 핑계로 교류가 많아졌고, 나와 보는 눈은 비슷했던 건지 애인의 존재를 반겼다. 주변에도 나의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모두의 인정과 축하를 받는 기분은 꽤나 괜찮았다.


‘내가 그토록 하던 고민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했던 걱정들과 현실적인 문제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결혼으로 인해 드는 행복감이나 사회의 관문을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명확함이 나에게 더 확신을 주는 느낌이었다. 덜컥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리가 없는데? 이건 뭔가 거대한 암흑 속에 처박히기 직전 아닌가? 재난 영화도 다가 오기 전이 가장 평화롭고, 태풍 오기 전엔 햇빛이 쨍하잖아.


사회가 나에게 이렇게 친절할 리가 없었다. 내가 살아온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모두가 날 따뜻하게 대해주는 거야? 아 맞다, 이거 사회가 나에게 바라던 순응이었지.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결정은 지극히 단순하다.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다른 이성과 살며 아이를 갖고 키우는 것.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결혼할 나이였고. 사회적 기준에 맞게 이성 배우자를 찾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적당량의 연애 기간을 거쳤고, 이쯤이면 괜찮네 시점에 결혼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굳이 그러려고 했건 안 했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사회에서 정한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무난하고도 당연한’ 행위를 했다.


나는 이 행위가 그렇게까지 축하받고 인정받을 일이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거다. 내가 만약 동거를 결정했다면 어땠을까. 웨딩촬영이나 신혼여행과 같은 여분의 기회를 눈치 안 보고, 심지어 축하받으면서 누릴 수 있었을까? 엄마가 주변 친척들에게 내가 동거한단 사실을 자랑했을까?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동거 기념 선물을 해줬을까? 주변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내게 축하의 말을 망설임 없이 건넸을까? 그 무엇도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아니지, “동거하면 여자만 손해야.”라는 소리를 안 듣는다면 다행이다. 이게 내가 결혼하면서 가지게 되는 특권들이었다.


다른 말들로 바꿔봐도 비슷하다. 내가 동성의 애인을 만난다면? 동거가 아니라 결혼을 결정한다면? 내가 이전처럼 혼자 살아간다면? 연애만 하기로 결정한다면? 연애를 안 하기로 결정한다면? 지금 내 손안에 주어진 모든 것들이 내 것은 아니었을 거다.


물론 결혼하는 걸로 인해 잃는 것들은 내가 아직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상상했던 걱정들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도 벌어질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얻게 되는 여러 가지 특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기혼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안정된 무언가를 얻었다. 부부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법적인 또는 사회적인 지위와 관계와 인정들이 나를 한층 더 나은 인간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사실은 난 그저 여러 선택들 중 하나를 했을 뿐인데.


또는 ‘그 선택이란 것도 특권이었구나.’란 생각이 든다. 나는 운이 좋게도 사회에서 바라는 선택지를 해도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남자였더라면 더 좋은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이제 커플 사진을 프사로 해놓아도 “깨가 쏟아지네.”랑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인정된 관계가 매우 좁단 건 참 우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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