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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Nov 14. 2019

네가 없어도 나는 잘 살겠지

너와 내가 유난히 막힘없이 대화가 통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무 말이나 던져도 눈물 날 정도로 웃기거나, 살짝만 건드려도 조용히 닫아뒀던 이야기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곤 한다. 그냥 아무 뜬금없이, 분위기 잡지 않아도 그냥 막힘없이 속 이야기가 나오는 그런 날이었다. 누가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둘 중 하나겠지. 처음엔 그냥 장난스레 던진 말이었다.

 

우리 결혼을 안 했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결혼하는 거 후회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아마 이렇게 바쁘진 않았을 테니까 뭔가 다른 일을 벌이고 있겠지. 다른 일 뭐? 나는 아마 사람들 만나고 술 먹고 놀고 있겠지. 너 만나기 전엔 그러고 놀았으니까. 넌 어때? 난 아마 일 욕심이 많아서 일에 치여 살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연말 보고서 시즌이니까,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였나 후회를 이만큼 하면서 아무에게나 원망을 쏟아놓고 있을 거 같아. 아, 결혼 왜 했지. 올해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 준비하고 결혼하고 우다다다 끝나버렸어.


그럼 우리 안 만났으면 지금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 우리 만난 것도 후회하는 거야? 아니 진지하게 말해봐. 그냥 진짜 궁금해서 그래. 너 안 만나면? 음... 그냥 그럭저럭 잘 살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아무렇게나 대답해버렸는데 남편의 표정에 약간 섭섭함이 지나간 것 같다. 아, 이거 아닌가? 수습해야 하나? 근데 이미 말은 해버렸고 남편도 내가 진담으로 그런 말 하는 거 알아버린 것 같다. 에이 수습할 필요가 뭐가 있어 그냥 질러버려.


"그럼 자긴 나 안 만나면 아주 못살았을 거 같아?" 이렇게 물어보니 남편의 눈이 데구루루 굴러간다. 맞잖아, 너도 나 없어도 그냥 잘 살았을 거 같잖아. 그러면서 한바탕 하하하하 웃어버렸다. 우리 각자 서로가 없어도 30년 인생 그냥 열심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살았잖아. 너 없었을 때도 나는 즐거웠고, 행복한 일도 있었고, 나름의 즐길 거리를 다 알아가며 살아왔다. 그런 일에 딱히 부족함을 느껴본 적도 없었고, 너를 만나지 않는 삶을 살았더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지금도 네가 출장을 가거나 며칠씩 떨어져 있는 날이 잦더라도 나는 내 일상을 살고 일상 속에서 즐거운 일들을 찾느라 바쁘다. 네가 없는 시간에도 나는 나의 일을 하느라 충분히 바쁠 수 있다. 너 또한 나와 비슷하고. 하지만 나는 너와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나의 여러 즐거운 추억들 중에 네 덕에 더 즐거워진 것들이 있다. 별로 관심 없던 일들도 네 덕에 꾸준히 하게 되고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 그런 일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네가 더 궁금해진다. 너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기쁜 일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이것도 너와 함께 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지는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너를 사랑해서 너와 함께 있고 싶기도 하고, 사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을 너에게 느끼는 점이 좋다. 네가 없어도 잘 사는 인생이었지만, 너와 함께 있으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와 사는 앞으로도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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