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전부터 죽고 싶었다. 잠이 오는 것, 잠을 자고 나면 눈이 떠지는 것, 숨을 쉬는 것 처럼 사는 것도 그저 그뿐이다. 그렇다고 죽자고 마음 먹기엔 죽음이 두렵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정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죽음으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꼽다 보면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내 몸을 가득 채우는 기분이다. 생각을 떨치려고 상상 속에서 소설을 써본다. 나처럼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지루한 상상을 반복하다 보면 꼭 악몽을 꾸곤 한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김없이 죽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일상적인 감각과는 달리 나는 꽤 성실한 편이다. 죽고 싶은 사람 치곤 열심히 산다. 거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잘 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쓴다. 그런 모습은 내 불안과 닿아 있다. 이걸 하지 않으면 내 삶이 지금보다 더 엉망진창이 될 거야. 지금보다 더 최악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일이 잘 안 되었을 때의 후폭풍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순간 나를 탓하곤 한다. 이런 삶 속에서 나는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왔을까. 그래도 삶을 놓치게 되면 아쉬움이 들기는 할까. 나는 무엇에서 위로를 얻고 무엇으로살아갈 수 있을까. 덕분에 그래도 오늘의 삶이 덜 괴로울 수 있을까. 사실 죽고 싶은 것을 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뭐든 도전하곤 한다.
내가 가장 빠르게 만족할 수 있는 건 역시 먹는 일이다. 간편하게 얻을 수 있는 인스턴트 기쁨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달콤한 게 가장 좋다. 과일은 계절의 향이 느껴져서 좋고, 디저트는 만든 사람이 온 정성을 쏟아 부은 게 느껴질 수록 사랑스럽다. 달콤한 향도 좋다. 막상 마셔보면 그저 물일 뿐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온갖 향이 다 들어있는 홍차도 좋아하고, 집의 묵은 내를 빼려고 가끔 쓰는 향초도 좋다.
주기적으로 하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거다. 나는 사람이 좋다. 이건 참 이상한 기분이다. 내 우울의 대부분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면서도 내가 우울에만 빠져들지 않도록 해주는 것도 사람이란 점이. 나를 지지하고 나의 존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굳이 별일을 하지 않아도 위로 받고 힘이 될 때가 있다. 때로는 나의 소심한 면이 불쑥 튀어나와서 '왜 나같은 걸 좋아하지?' 하며 궁상을 떨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이런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된다.
이런 두 가지 요소가 합쳐져 즐거운 순간이 있다.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호의로 해주는 일들을 다른 이에게 호의로 받은 순간을 좋아한다. 특히 나의 취향을 잘 기억해 뒀다가 "짠!" 하며 꺼내 주는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람들의 사랑을 집안 곳곳에 쟁여 놓는다. 냉동실에는 저번에 친구가 내가 맛있게 먹는게 생각나서 사왔다는 스콘이 잠들어 있다. 간식 창고에는 간식을 즐기지도 않는 남편이 날 위해 준비해 둔 간식들이 줄지어 있다. 홈바 한쪽에는 동생이 선물해준 차도 있다. 아무 일이 없어도 그곳을 어슬렁거리면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란 생각에 듬뿍 빠지게 된다. 그리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흠뻑 울며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먹고 나면 조금 살만 하다.
때로는 조용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이 큰 의미가 되곤 한다. 어릴 때 집에는 어린 애가 놀 만한 것들이 마땅치 않았지만 책장에 책은 늘 가득했다. 나는 그 책들을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곤 했다. 글을 읽고 있을 때 나와 글만 있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 있다 보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라 참 좋다. 읽는 것 만큼 쓰는 일도 좋아한다. 이것도 어릴 때부터 습관이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그때 담임선생님에게 받았던 빨간 펜의 기억이 참 좋았다. 일기를 보이는 건 부끄럽지만 내 글에 공감해주는 한 마디가 참 소중했다. 2년 전에는 반년 정도 토해내듯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러고 나면 내 안에 얹힌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곤 했다. 지금도 예전 글에 가끔 내 글에 공감하는 댓글을 달리면 나 혼자만 이 세상이 숨막히는 건 아니구나 싶어 위로 받기도 하고.
모두 소소한 일들이다. 소소한 일이라 더 좋다. 큰 기쁨은 그 순간에는 즐겁지만 그 기쁨이 빠져나간 자리엔 더 큰 구멍이 생기는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작은 기쁨들은 늘 내 가까이에 있고 내게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살다보면 조금 깊게 움푹 패일 만한 일들도 얕게 지나치는 날이 있고, 잠에 들면서 오늘 저녁은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다. 그렇게 작은 기쁨들을 잘 모을 수 있게 된 날엔 언젠간 살아있는게 좋다고 생각할 날도 오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