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의심의 모호한 경계에서
과연 우리는 진실과 의심을 구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메기>를 보며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해본 질문이었다. <메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수상하였고, 2019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나는 보통 영화를 보면서 움직이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시청하며 나는 종종 피식 웃기도 했으며 ‘허!’라는 헛웃음과 같은 의성어를 남발했다. 어느 부분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매일을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아주 깊숙하게 뒤엉켜 나를 찔러왔고, 무의식과 당연함 속에서 살아가던 나를 건드렸던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메기>는 천우희, 그러니까 메기의 내레이션과 함께 진행된다. 나는 영화 <써니>에서 천우희 배우의 목소리가 날카로우면서도 싸늘하다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메기>에서 그녀의 목소리에는 ‘귀찮음’이 묻어났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았고,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잠깐의 정적은 극을 늘어뜨리기는커녕 역동성과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가볍게 툭툭 내뱉지만 한 마디 한 마디 가벼운 말들은 없다.
사실이 온전하게 존재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대요.
사실은 언제나 사실과 연관된 사람들에 의해서
편집되고 만들어진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메기 (2019)>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분위기는 ‘나른함’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부터 톤, 표정, 행동까지 유독 나른함이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날카롭다 못해 베일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질적이고 낯설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느 영화보다 여운 깊은 공감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 묘한 순간들은 우리에게 불편하기보다는 유쾌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의 상황, 직업, 나이 어느 것 하나 나와 관련 없지만 엉뚱한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의심’이라는 감정의 흐름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었고, 누구든지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을 부분이었다.
싱크홀은 영화에서 자주 언급된다. 처음에는 그저 성원(구교환)의 직업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메기를 가져온 윤영(이주영)과 마주한 성원(구교환)은 윤영이 그동안 키워온 자신에 대한 의심을 직접 듣게 된다. '정말로 전 여자 친구를 때린 적이 있어?'라는 질문. 그에 성원은 때린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 순간 메기가 뛰어오르더니 성원이 서있던 자리에 큰 싱크홀이 생기고 만다. 그렇게 떨어진 성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장면을 목격하는 윤영의 시선을 끝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윤영의 첫 의심은 ‘전 여자 친구를 때렸나?'였다. 그리고 성원에게 그렇다는 진실의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그 진실에서 윤영의 의심은 또 시작되었다.
저 사람은 전 여자 친구를 때리는 나쁜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나도 때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사실 윤영은 성원이 그의 전 여자 친구를 때린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드러난 진실은 오직 성원이 전 여자 친구를 때렸다는 것뿐이다. 즉, 윤영은 의심을 드러내 진실을 알았지만 또 다른 의심을 만들어내어 가지처럼 뻗어 나갔던 것이다. 결국, 성원은 윤영의 계속되는 의심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의심과 진실의 경계 사이에서 복잡한 순간들을 매일 맞이하는 우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 <메기>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외면해왔던 것들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져 더욱더 강력해진 의심은 진실로 왜곡되는 상황,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졌을 때 느끼는 허무함과 창피함이라는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산되는 의심들까지 아주 구체적인 형상으로 보여주며 이 불편한 감정들을 정의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과연 진실일지 누군가의 의심일 뿐일지 또 한 번 의심하고 질문하게 한다. 아래의 대사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메기(2019)>
아트인사이트 정세영 에디터
원문 링크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