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한 정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서

by 젤리

“개천에서 용 난다.” 이 속담은 오늘날 흔히 쓰이는 말 중 하나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을 한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겉으로 보기엔 좋은 뜻을 지닌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매우 능력주의적인 말로 양날의 검을 지녔다. 용이 된 사람에게는 네가 잘나서 용이 된 것이라는 오만을 안겨주며, 미꾸라지가 된 사람에게는 너의 재능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 말하며 좌절감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린다.


2017년, 한국 입시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숙명여고 1학년이던 자매가 숙명여고 교무부장인 아버지가 빼돌린 답안을 보고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시험을 치른 이른바 ‘숙명여고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불법을 저질러 성적을 높일 만큼 명문대 입학이 가지는 권위와 영예는 어마어마하게 높아졌고, 사람들은 그 권위와 영예를 가지기 위해 극한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학은 능력주의적 열망에 피를 돌게 하는 심장”으로써 그 중심에 서있다. 한국에서는 학창 시절 19년의 삶이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결정된다.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성실하고 성공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것으로, 지방대나 전문대, 혹은 진학조차 하지 않은 학생들은 불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으로, 조금의 과장을 보태어 한국에서는 오직 ‘대학 간판’으로만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한다.

나 또한 그러한 판단을 일삼는 부류였다. 따라서 나는 학창 시절과 능력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재수를 했고, 편입을 했다. 편입을 준비할 때에는 인생의 마지막 도전인 것처럼 새벽 동이 트기 전 집에서 나왔고, 밤에는 학원에서 가장 마지막에 집 가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렇게 온 힘을 다했던 대학입시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그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나의 공부법이 잘못됐었는지, 남보다 머리가 많이 나쁜지, 혹은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다 생각했던 입시 기간이 노력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등, 실패의 원인을 모두 나에게로 돌렸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던 대입이라는 관문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그 후에 무엇을 하던 용기를 내기 힘들었고, 나의 방식이 옳은지 늘 눈치 보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바빴다. 반면에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한 주변 친구들은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 확신했다. 패배자의 입장이었던 나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들은 나보다 노력과 능력이 더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우리의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의 뼛속까지 스며든 능력주의적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정치 또한 이러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는 고학력자들에게 더 많은 정치의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고학력자들이 정치판을 차지하게 되었다. 정치가 고학력자들의 전유물이 되면서 정치인들은 노동계급의 사람들, 소위 하위계급을 대표할 대표성을 잃게 되었다. 그에 따라 명문대 학위 여부에 따른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기회의 문이었던 대학 학위는 오히려 기회의 문을 좁게 만들었으며, 저학력 구성원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겼고, 민주주의는 훼손되었다.

이 책은 능력주의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비추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며 오만에 빠지는,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자업자득으로 여기는, 그러한 사회를 비판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로부터 썩어 들어간 이 사회에 해답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이 사회는 공정해질 수 없다. 사람들은 각자의 배경과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고 이를 우리가 공정한 사회를 외치며 억압하는 것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대학 입시에서 능력주의적 사고로 인한 상처들을 치유할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제안한다. 4만 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일부만 솎아내고, 솎아낸 그들을 두고는 아무나 2,000명을 골라잡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이러한 제안에 능력주의 사회의 해답 열쇠가 있다. 바로 승자는 자신의 힘만으로 성공하지 않았다는 것을, 패배자는 오로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은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을 인용하여 공정한 사회를 외쳐왔다. 하지만 진정으로 옳은 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되었건, 미꾸라지가 되었건,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이다. 개천에서 난 용은 훌륭하다. 그런데 그 용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용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개천에서 난 미꾸라지는 노력하지 않은 걸까? 혹은 개천에서 난 미꾸라지는 패배자로서 자신을 자책하며 있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이 용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오직 용이 되기만을 바라면서 가혹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용이 되었건, 미꾸라지가 되었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위해선 용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업적이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행운, 배경 혹은 재능의 덕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또한 미꾸라지가 된 사람들은 오롯이 혼자만의 잘못이라 생각하며 자책의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운명에 대한 책임자”라는 능력주의적 사고로 인해 약해졌던 사회적 연대를 다시금 강화하며 우리의 공동선을 길러 나가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실패들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덕분에 나는 실패에 대해 보다 성숙하게 반응할 힘을 얻었고, 훗날 성공을 한 후에 오만에 빠질 위험을 덜 수 있었다.

마이클 샌델은 책 한 권에 걸쳐 능력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했다. 능력주의는 공정하지 않다고 가장 능력 좋은 사람이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누가 감히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가장 능력 좋은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 책의 저자가 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이렇게까지 학력주의의 적폐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었을까? 또한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주장하였다면, 이는 그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합리화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관점에서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덕 때문이 아니라 말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능력주의 폐단을 총대 매고 비판한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이클 샌델 이야말로 이 책을 씀으로써 능력주의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본보기를 보여준 이 시대의 진정한 엘리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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